침체일로를 걷던 국내축구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축구인 출신 석학들이 모여 ‘축구발전연구소’를 발족한 것. ‘축구발전연구소’는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지냈던 이용수 세종대 교수를 비롯해 신문선 SBS 축구해설위원 등 현역 축구선수 출신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10여명이 모여 한국축구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그동안 비난의 뭇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국내 축구계가 ‘축발연’의 발족으로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 지난 11월 26일 세종대학교 내에 마련된 이용수 교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나 한국축구의 문제점과 ‘축발연’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축구발전연구소(이하 축발연)를 발족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축구를 통해 도움을 받은 사람들(나를 포함해서)이 다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연구소를 만들게 됐다. 오래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던 일이었는데, 신문선 위원과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올 해를 넘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보자고 의견을 모으게 됐다.

- ‘축발연’이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 달라.▲연구 내용은 대표팀 경기력 향상과 축구 발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방향 등이다. 경기력 향상과 관련해서는 현 대표팀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스포츠 과학, 심리학, 마케팅 측면 등 각자의 전공에 맞춰 분석할 예정이다. 축구 지도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번역서 등도 계획하고 있다. 연구소라는 것이 잘못하면 문자화된 보고서가 될 수 있는데, 그것보다 보고서의 내용이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것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 ▲본인을 포함해 신문선(SBS축구해설위원), 김종환(중앙대 교수), 최만희(부산팀 기술고문), 오일영(남서울대 교수), 최철순(광운대 교수), 채재성(서원대 교수), 윤영길(서울대 박사학위) 등 학계와 방송계,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축구전문가들이다. 50~60명의 자문위원도 구성된다. 전·현직 프로축구팀 감독과 프로구단 사장, 단장, 지도자, 축구평론가와 언론인 등이 대상이다. 운영 경비는 자문위원의 회비로 충당할 예정이다.

- 현집행부에 비판적 시각을 유지해온 두 사람을 중심으로 축구인들이 힘을 모으고 있기 때문에 ‘축발연’ 발족은 축구협회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축구협회 측에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축구협회에서 해야 할 일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단체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협회는 무엇보다 선수와 코칭스태프, 감독 등을 잘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현집행부는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협회 집행부의 운영 방식에 축구인들의 불만이 높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누군가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축구발전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들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다만 우리(축발연)는 축구발전을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 가능한 아이디어들을 내놓을 뿐, 협회가 그 안을 활용하든 안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을 작정이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면 지금 협회에서 활용하지 않더라도 다음 협회 회장이나 임원들이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대한축구협회의 법인화 문제, 현축구협회장 선거 방식(각 지방축구협회장이 대의원으로 회장 선출)의 문제점 등 민감한 이슈도 연구 발표할 예정인가. ▲물론이다. 사실 현재 축구협회는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임원이라는 자리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봉사하는 자리다. 그런데 일부는 마치 자기 능력이 뛰어나 선택받은 양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절대 그건 아니다. 현축구협회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를 화합시켜주고 조언할 수 있는, 즉 중심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협회의 제도적 문제점 등 많은 부분들을 분석하고 또 발표할 예정이다.

- 과거 히딩크 시절, 기술위원장을 맡았던 경험을 토대로 현축구협회에 특별히 바라는 바가 있는가. ▲대표팀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체계화돼서 그 과정이 언론에 제대로 보도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표팀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에 추측과 비난이 난무하는 것이다. 심지어 축구전문가들도 축구팀에서 어떤 일들이 이뤄지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과거 히딩크 시절 북중미 골든컵 당시 시합준비보다 웨이트트레이닝에 더 힘쓰는 것을 보고 비난의 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그땐 골든컵이 목표가 아니었다.

2002년 6월에 있을 경기가 더욱 중요했기 때문에 웨이트트레이닝에 힘을 기울였어야 했던 것이다. 히딩크는 스포츠 생리학을 철저히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철저히 이행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대표팀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비난했던 것이다. 만약 그때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었다면 ‘우린 이런 이런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해가고 있다’는 내용을 팬들과 언론에 알렸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팬들로부터 좀더 이해와 협조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시콜콜은 아니더라도 대표팀 내에서 일어나는 훈련의 큰 중심들, 큰 목표와 추진과정 등을 적어도 팬들에게는 웹사이트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 극도의 부진에 빠져있는 국내축구계가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뭐라고 생각하나.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국내 축구 부진의 원인은 우선 잦은 감독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수들의 기량과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감독이 교체돼버리는 현실은 곧 축구부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본프레레 감독 역시 지금까지도 우리선수들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프레레는 실력 있는 감독이 분명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선수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1월 동계훈련과 전지훈련부터는 자신의 색깔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조금은 지켜봤던 시기인 것 같다. 같이 한 선수들, 코칭스태프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 작업 기간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 협회나 연맹 측의 제도적 개선점으로 지적할 만한 사항은 무엇인가.▲대표 팀 선수들이 프로리그에도 모습을 드러내면서 대표 대회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일정 조정에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프로리그와 대표팀 모두를 살리는 방법이다. 일정만 조정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임에도 협회와 연맹 측의 원만한 사전계획이 없어 프로리그는 침체를 면치 못하는 것 아닌가. 지금과 같은 주먹구구식 행정이 계속된다면 축구발전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축구발전연구소‘가 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다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해 축구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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