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전희철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용인 양지면에 위치한 SK농구단 체육관을 찾았다. 다음날 있을 울산 모비스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연습경기를 준비하고 있던 전희철은 기자의 방문에 “힘든 발걸음 하셨네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전희철은 최근 ‘부활’이라는 단어를 증명하듯 무척이나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마누라가 맛있는 걸 많이 해줘서 그런가? 요즘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 경기할 때 플레이도 기대만큼 따라줘서 기분이 좋네요.”전희철은 올 시즌 최근 5경기를 치르면서 총 76득점(10일 현재) 평균기록 15.2점, 최고기록 21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 7일 안양 SBS와의 경기에서 21득점을 기록, 팀을 파죽의 3연승으로 이끄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모든 언론에서도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지존이 부활했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을 정도. 올 시즌을 위해 특별한 훈련이라도 받은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희철은 “단지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실 지난 시즌 전희철은 언론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었다. KCC에 몸담으며 몸값에 어울리지 않는 플레이를 펼쳤다는 팬들의 비난을 받았던 것. 그는 당시의 경험을 인생 최고의 고비이자 슬럼프였다고 고백했다. “아마 농구를 시작하고 가장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러닝타임이 가장 적은 시즌이었고 그만큼 경기 성적도 저조했죠. 처음으로 농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방황도 많이 했어요. 시즌 중반에 SK로 옮기면서 제 스타일에 맞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게 돼 다행이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대학시절부터 ‘자존심’만큼은 누구 못지않았던 그가 나이어린 후배들로부터 격려와 충고를 들어야 했던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속사정을 모르면서 무작정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언론 역시 그의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사실 지난 시즌 몸 상태는 상당히 좋았었거든요. 다만 제 스타일과 다른 플레이를 신선우 감독님이 요구했기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죠. 몸이 묶여있는 상태가 계속되다 보니 제 맘대로 플레이가 되겠어요? 하지만 언론은 ‘왜 슛만 쏘느냐’ ‘몸싸움을 하기 싫어서 게으름 피우는 것이다’ 등등 계속 비난하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한 물 갔다’느니 별 소리를 다 하더군요. 선수는 경기 결과로 말하는 것이니까 변명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돌아보면 정말 삶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그는 사람들이 선수들의 단적인 면만 보고 평가해버리는 것이 싫고 또 두렵다고 했다.

그저 조금만 잘 하면 ‘최고의 선수’로 평가를 내려버리고, 성적이 저조하면 ‘퇴물’ 취급하는 상황이 조금은 진저리가 난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전희철은 그때의 경험이 오히려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음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아시겠지만 제가 원래 ‘한 성깔’하는 스타일이잖아요(웃음). 그런데 그 때 경험을 계기로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 경기가 잘 안 풀리면 사실 욕도 나오고 성질도 부리고 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참으려고 노력하죠. 물론 정말 화가 나면 가끔씩 욕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요…(웃음).” 전희철이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내고 지존으로 다시 부활하기까지 그의 아내와 딸 수완이가 큰 힘이 됐다. 그는 인터뷰를 하러 체육관에 내려오기 전에도 딸아이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몇 번이나 보고 왔노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인터뷰 내내 그를 대한 기자 역시 “성숙해졌다”고 느낄 만큼 그는 한 집안의 부끄럽지 않은 가장, 팀의 든든한 주장이 돼 있었다. 전희철은 경기 시작 전 신발 끈을 고쳐 매는 버릇이 있다. 다소 헐렁한 느낌이 들면 긴장도 늦춰질 것 같아서 매번 습관처럼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맨단다. 최근에 신발 끈이 없는 농구화가 출시됐다는데 한번 신어볼 생각 없느냐 물었더니 “공짜로 줘도 안 신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단순한 습관이지만 제겐 마음가짐까지 다잡을 수 있는 좋은 버릇이라고 생각해요. 슬럼프도 벗어던졌으니 ‘부활’이라는 단어에 어울릴 수 있도록 이젠 제 자신을 단단히 조여 맬 차례예요!”절망을 경험했던 바닥에서부터 지존으로 귀환하며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그에게서 올 시즌 팀의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전희철 ‘등번호 13이 좋은 이유’
“날씬한 1과 통통한 3의 결합”


전희철과의 인터뷰는 시종일관 즐거운 분위기로 이어졌다. 기자의 짖꿎은 질문에도 너털웃음을 보이며 너스레를 떨던 그와의 대화를 짧은 메모로 적어본다.

- “난 ‘13’이 좋아” ▲트레이드마크처럼 돼버린 전희철의 등번호 ‘13’. 다른 숫자로 바꿔볼 생각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절대 노우(NO)”란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11’은 왠지 빈약하며 말라보이고, 20번 대의 번호는 괜시리 몸이 무겁게 느껴져서란다. 하지만 자신의 등번호 ‘13’은 강약의 조화가 가장 잘 어우러진 번호라고 그는 주장했다. “늘씬한 숫자 1과, 통통한 숫자 3의 조화. 정말 완벽한 숫자 아닌가요? 저 처럼요. 하하”

- “이발소 헤어스타일은 내 트레이드마크”▲그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는 뒤로 반듯하게 빗어 넘긴, 일명 ‘이발소 머리’다. 주변의 원성(?)이 심해 나름의 변화를 주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워낙 곱슬머리 인데다가 특별히 어울리는 스타일이 없어 계속 고수하고 있단다. 이젠 단골 미용실에 가면 알아서 척척 해줄 정도. 하지만 미용실에 다녀온 날에도 자신의 살짝 바뀐(?) 스타일을 몰라주는 사람이 많아 섭섭할 때도 있다고.

- “성인 동영상?” ▲‘PC 즐기기’가 취미인 그에게 ‘성인 동영상’에 대한 질문을 빼놓을 없었다. 남자라면 한번쯤 접했을 법한 야한 사이트. 전희철은 딱 1번 유료 동영상을 관람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로인해 컴퓨터 바이러스가 감염된 이후로는 근처조차 안간다고. “어휴~ 괜히 한번 접속했다가 비싼 돈만 물고… 공연히 바이러스 걸려서 아주 혼났어요. 팝업창은 또 그리 많이 뜨던지. 사실 호기심만 자극할 뿐이지 뭐~ 볼 것도 없드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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