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희(38)가 변했다. 헐렁한 농구 유니폼을 입고 종횡무진 코트를 제압하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반듯한 정장에 조금은 답답해 보이는 넥타이를 꼭 잡아맨 채 벤치를 지키고 앉아 있는 모습. ‘코트의 마술사’로 불리며 한국프로농구를 주름잡던 그가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이제 지도자로 새롭게 농구 인생을 시작했다. 지난달 31일 창원 실내체육관. 원주TG와의 홈 개막 경기를 앞두고 강동희 코치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이날은 정규시즌 첫 홈 개막경기와 함께 강동희의 은퇴식이 마련된 자리.

지난 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물러난 그에게 변변한 대접을 해주지 못한 구단 측이 공로패 전달과 함께 은퇴식을 준비한 것이다. 개막 경기에 앞서 강동희의 은퇴 및 코치 취임을 알리는 장내 아나운서의 우렁찬 메시지가 퍼지자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일제히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곧이어 장내 전광판에는 강동희의 선수시절 활약상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다.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서 코트를 누비던 강동희의 모습이 펼쳐지자 관객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영상물을 바라보던 강동희 역시 간간이 고개를 숙이고는 과거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기분이요? 뭐라 설명할 수 있나요. 그냥 코끝이 찡한 것이… 언제 또 저렇게 코트에서 미친 듯 뛰어보나 하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고 그렇죠 뭐….”지난 5월 14일 돌연 은퇴를 선언, 28년 동안의 선수시절을 접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강동희는 아직 모든 게 낯선 듯 보였다.

‘코치님’이라는 호칭도, 플레이를 지도해야 하는 입장에 서는 것도 아직은 어색하게만 느껴진다는 그는 “모든 것이 맘처럼 쉽지 않다”며 힘든 속내를 내비쳤다. “선수들 각자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냉철하게 경기를 지켜봐야 하는데 그게 잘 안돼요.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코치의 입장에서 경기가 상황대로 안 풀릴 땐 정말 답답하죠. 어떨 땐 나 스스로가 경기에 너무 빠져서 직접 코트에 달려들고 싶을 때도 있다니까요.” 강동희는 지난달 29일 정규시즌 개막이래 두 차례(1일 현재)의 경기를 통해 ‘신임 코치’로서의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전주 KCC와의 경기, 그리고 창원 홈에서 열린 원주 TG와의 경기마저 연 2패를 기록한 것.

그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면서도 그간 성적표에 대해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선수시절, 한 마디로 ‘날렸던’ 그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걸 본인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도자는 지금까지 운동만 해온 것 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한 위치라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더 배우고 노력하는 것만이 길이겠죠.” 새내기 코치로서 그가 겪는 막중한 부담감과 책임감. 하지만 그에게도 웃음을 주는 ‘엔돌핀’은 있다. 이제 한 달반이 겨우 지난 아들 ‘성욱’이. “아들(성욱이)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나와요. 늦은 나이에 얻은 녀석이라 그런지 더 예쁘고…(웃음). 요즘엔 아들 사진이 담겨 있는 핸드폰을 수시로 열어보는 버릇까지 생겼다니까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손발이 크고 팔다리가 길었는데 나중에 크면 농구를 시키려구요. 본인도 좋아할까요?(웃음)”강동희는 아들 얘기로 ‘과묵한 코치님’에서 어느새 ‘초보아빠’가 돼있었다. 성욱이의 칭얼거림이 벌써부터 아빠를 찾는 소리로 들린다는 그에게선 스트레스나 고민 따윈 이미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매일 아침 생식을 준비해준다는 아내 이광선(31)씨와의 알콩달콩한 결혼생활도 그에겐 큰 힘이 된다.

강동희는 올 시즌 자신이 이끄는 창원 LG를 4강까지 올려놓는 게 목표다. 선수로서 보냈던 지난해 마지막 시즌, 우승을 거두지 못한 아쉬움을 그렇게라도 달래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강동희는 덧붙인다. 바로 ‘양복과 친해지기.’ 사실 운동선수 생활을 오래 해온 그에게 양복은 다소 어색한 의상 중 하나다. 큰 행사나 결혼식 등의 자리가 아니면 특별히 입을 일이 없었던 것.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선수시절 유니폼을 입었던 횟수만큼 양복을 즐겨 입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도자의 상황에 놓이니까 의상도 신경 쓰이네요. 결혼하고 아내가 처음으로 사준 실버 컬러의 넥타이는 정말 중요한 자리에 꼭 착용하고 나가요. 앞으론 경기 때 꼭 하고 나가려구요. 괜히 우승할 것 같은 기대감도 들거든요.(웃음)”이젠 양복 입은 모습이 제법 폼 난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며 “그래도 여전히 어색하다”고 겸손을 늘어놓는다. “아직 어색한 게 사실이에요. 꼭 남의 옷 입은 것 같은 기분인걸요. 하지만 곧 익숙해지겠죠. 양복이 익숙해지는 날이 바로 지도자로서 벤치에 앉아 있을 자격을 갖췄다는 뜻일테니까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웃음).”

‘선수 강동희’ 은퇴식 너무 조촐

지난달 31일 창원 실내체육관에서 있었던 강동희의 은퇴식. 하지만 사실상 그 행사는 ‘선수 강동희’의 은퇴식이라기보다 그의 창원LG 코치 취임 기념식이었다.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그의 파란만장했던 시절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되긴 했지만, 실제 행사는 기념패와 공로패 전달, 기념사진 촬영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던 것. 약 5분여 만에 ‘코트의 마술사’를 떠나보낸 것이다. 구단 측에서는 강 코치 측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고사했다는 입장. 구단 측 관계자는 “은퇴식을 마련하려고 했으나 강 코치가 거절했다”면서 “강 코치가 허재 선수처럼 농구코트를 완전히 떠나는 것도 아닌데다 곧바로 창원LG 코치로 취임이 결정된 상황이어서 은퇴식 대신 조촐하게나마 공로패 수여식을 가진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28년 동안 코트에서 ‘선수’로 살았던 그의 입장에서는 서운한 것이 당연한 일. 강동희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내심 섭섭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는 “지도자로 빨리 적응하기 위해 거창한 행사는 생략해도 좋을 것 같았다”면서 애써 서운함을 외면하려 했지만 결국 “많이 아쉽다”며 속마음을 드러냈다. 강 코치는 “선수생활을 너무 급하게 정리한 것 같아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면서 “보통 선수들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은퇴식을 원한다. 허재 선수 같은 경우에도 후배 선수들이 참여한 은퇴경기를 통해서 화려하고 멋지게 퇴장했다. 물론 내 상황이 그렇다보니 이해는 하지만, 조금 초라한 자리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라고 토로했다. ‘농구 천재’ 허재와 ‘코트의 마술사’ 강동희 두 인물을 한국프로농구 최고의 선수로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떼밀리듯 급작스레 은퇴를 선언하고 코트를 떠난 허재, 5분 만에 끝나버린 강동희의 은퇴식 겸 취임 기념식…. 이들을 떠나보내는 마지막은 분명 쓸쓸하고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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