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똑’소리 나는 소녀였다.

2004 세계 인라인 스케이트 선수권 대회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주목을 끈 궉채이(17)는 17세 소녀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으로 기자를 놀라게 했다.밀려드는 인터뷰 공세에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조목조목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녀는 ‘요정’이라기보다 ‘프로’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예쁜 외모로 ‘얼짱’이라 불리며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궉채이’를 만나 ‘인라인 예찬론’을 들어봤다.

저… 뜬건가요?

최근 궉채이는 톱스타급의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각종 매체의 인터뷰와 사진 촬영, 행사 등의 일정이 수첩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것. 게다가 전국체전 준비까지 겹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러브콜이 그다지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너무 기분 좋죠. 저라는 사람을 기억해주시는 팬들에게도 감사해요. 인터뷰 요청 때문에 전화에 불이 날 지경이지만 그래도 요즘은 정말 행복하답니다.”세계주니어 선수권에서 금메달 2개를 목에 걸며 시선을 끌어 모은 궉채이는 예쁘장한 외모 때문에 단번에 ‘인라인 요정’으로 떠올랐다. 현재 인터넷 팬카페 회원수만 1만 4,000여명. 각종 포털사이트에선 인기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증명했다.

“방송이나 신문에 얼굴이 알려지고 나서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정말 신기했어요. 얼마 전에는 한 행사장에서 저를 알아보신 팬들이 사인을 요청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갑자기 제 주위로 모여드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웃음).”‘궉’이라는 특이한 성씨는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관심을 끌었다. ‘궉’씨는 국내에 248명뿐인 희성. 하지만 궉채이 덕분에 이젠 유명한 성이 됐다. 집안 어른들로부터 ‘가문의 영광’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고. “어릴 땐 ‘궉’이라는 특이한 성씨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초등학교 때 키가 160cm로 큰 편이었거든요. 아이들이 ‘꺽다리’ 대신 ‘궉다리’라며 놀리더라고요. 이젠 놀리지 않겠죠?(웃음)”

여전히 목마른 궉채이

그녀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당시 쇼트트랙 전이경 선수의 경기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하면서부터다. 처음엔 집안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탓에 큰 부상을 염려한 부모님이 극구 만류했던 것. 급기야 궉채이는 ‘007’을 능가하는 ‘비밀 작전’을 세워가며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전 인라인이 너무 좋은데, 집에서는 못하게 하니까 어쩌겠어요. ‘머리’를 좀 썼죠.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거짓말 하고 경기에 출전한 적도 있고, 아무렇지 않게 외출했다가 경기를 치르고 돌아온 적도 있었어요. 물론 돌아올 땐 메달을 선물로 드리면서요(웃음).”그렇게 ‘깜짝 외출’을 통해 얻은 메달이 상당수.

2001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 참가한 이후 4차례 대회에서 5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세계대회에서 이름을 떨치기까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사는 안양에는 마땅한 선수용 트랙이 없는 탓에 건물 지하주차장을 이용, 꿈을 키워왔던 것. “그린벨트 때문에 경기장을 지을 수 없다더군요. 결국 지하주차장에서 4년간 연습했어요. 자동차가 다녔던 길이라 노면도 거칠고 기름이 묻어있어 많이 넘어지곤 했었죠. 지금은 길들여놔서 적응이 됐죠.”세계 선수들과 만만찮은 몸싸움을 해야 했던 것도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지난 2002년 대회에서는 상대 선수가 머리채를 잡아당겨 경기에 심각한 지장을 받기도 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론 머리카락을 말아 올려 헬멧 속에 꽁꽁 숨겨두는 버릇이 생겼다고. “세계무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비록 메달을 따긴 했지만 이제 겨우 40%정도 왔다고 생각해요. 100% 실력발휘를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하루 6시간 씩 연습에 매진하며 경기 생각만 한다는 궉채이는 다음 달 청주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서 다시 한 번 인라인 열기에 불을 지필 각오다. 인라인에 대한 열정과 당찬 각오는 ‘프로급’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열일곱 사춘기 소녀. “남자친구요? 아직 없어요.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면 좋겠는데…. 어디 탤런트 조인성 오빠 같은 남자 없나요?(웃음).”

“경기 때 입는 속옷이 따로 있어요”

인라인 스타 궉채이가 자신만의 비밀을 살며시 털어놨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기 때만 챙겨 입는 속옷이 따로 있다는 것. 지난 2001년 세계대회 때 어머니가 사다주신 것으로, 보기엔 평범한 일반 속옷이지만 그녀에겐 징크스가 됐을 정도로 각별한 것이다.“선수들이 입는 스포츠 이너웨어예요. 지독하게도 인라인을 반대하시던 엄마가 큰맘 먹고 사주신 것이죠. 비싸거나 좋은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애착이 가더라고요. 세계대회 나갈 때 꼭 챙겨서 입고 가요.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걸 입으면 정말 경기가 잘 풀리더라고요. 아마 엄마의 사랑이 담겨서 그런거겠죠?”손톱에 봉숭아 물 들이는 것도 빼놓을 수없는 버릇 중 하나. 지난해 경기에서 은메달에 그친 것도 봉숭아물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단다.“우연의 일치겠지만, 봉숭아물을 들였을 땐 항상 금메달을 땄어요. 이번 경기에서도 봉숭아 물을 들였죠. 올해가 주니어 대회 마지막 출전이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컸거든요. 피곤해서 주무시고 계시는 엄마를 졸라 봉숭아물을 들였는데 우승한 거 있죠. 다음 대회에서도 이 징크스는 깨지지 않을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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