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 여중생 살인사건에 묻힌 독도발언 진실공방

요미우리 신문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 하다. 강간살인 등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길태(33)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전국 주요 언론이 앞 다퉈 김씨의 사건을 메인뉴스로 보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논란의 중심에 있어야 할 문제가 묻히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이다. KBS, MBC, SBS 등 주요 방송사와 언론이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 반면 이들 언론은 김씨에 대한 기사를 지나칠 정도로 부각해 보도하고 있다. 사건의 본질과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 기사화 되고 있다. 김씨가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한 발언이나 담배를 피웠다는 등 MB의 독도발언을 눌렀다. 네티즌 사이에서 떠들썩한 MB의 독도발언과 관련 언론매체들의 보도행태를 파헤쳐 봤다.

지난 9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는 서울 중앙지법에 서면 답변서를 제출했다. 우리나라 시민소송단 1886명이 요미우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때문이다. 요미우리는 지난 2008년 7월 15일자 신문에서 충격적인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MB의 독도관련 발언이다.

요미우리는 당시 “한일정상회담이 열린 직후 이 대통령은 후크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교과서에 다케시마라고 쓸 수 밖에 없다’고 말하자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시민소송단은 “요미우리 신문의 악의적 허위보도로 한국인의 자존심을 침해했다”며 4억원의 손해배상과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요미우리는 서면 답변서를 통해 이런 시민소송단의 주장에 대해 “해당보도는 허위 사실이 아니다”라며 MB의 독도관련 기사가 오보가 아님을 밝혔다.

요미우리의 이 같은 입장을 국민일보가 지난 9일 첫 보도를 하자 파문이 예상됐다. 하지만 대다수의 언론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같은 비보도 행태는 KBS, MBC, SBS 등 방송3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독도 관련 보도 이후 KBS는 16일 인터넷 판을 통해 ‘요미우리 보도 오보 확인된 사안’ 이라는 제목으로 단 1건만 보도했다. 메인 뉴스에는 1건도 다뤄지지 않았다.

MBC 역시 지난 16일 저녁뉴스를 통해 “민주당, ‘이 대통령 독도 발언' 공세 강화”라는 제목으로 23초 짜리 단신으로만 보도했다. SBS는 관련 보도가 전무하다 시피 했다. 이마저도 네티즌들이 자사 게시판에 ‘독도 보도를 하라’는 성토가 이어지자 등 떠밀리다 시피 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김길태 보도만 쏟아져

하지만 방송 3사 메인뉴스에서 김씨와 관련된 보도는 넘쳐났다.

KBS가 앞장섰다. KBS는 김씨가 검거된 지난 10일부터 17일까지 관련 보도를 52건이나 쏟아 냈다. MBC와 SBS는 각각 46, 41건 씩 보도 했다. 사건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 기사화 되기 일쑤였다.

김씨가 경찰에 자장면을 시켜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메인 뉴스로 다뤄졌다. 담배 3~4개를 피웠다는 내용 역시 ‘대서특필’ 됐다. MBC는 11일 뉴스에서 “경찰에게 자장면 등 수시로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요구하는가 하면 심지어 담배를 요구해 피우기도 했다”, “김길태가 화장실을 갈 때면 경찰 5~6명이 함께 움직인다”라며 김길태가 경찰 조사과정에서 보여줬던 사소한 행동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다. SBS도 다르지 않았다. SBS는 12일 김에 대한 보도에서 전날 MBC가 보도한 내용과 거의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김씨가 자장면을 먹고 담배를 피운 것이 현직 대통령이 한 독도 관련 발언 보다 비중이 더 큰 것이 된 셈이다. 이쯤 되면 이상하다. 김씨 사건이 방송 등 언론을 통해 유난히 부각 되고 있다. 김씨 사건의 경우 통상 언론의 사건보도 프로세스를 적용하면 실종사건 발생-공개수사 전환-시신 발견-용의자 검거-영장 신청 및 발부-검찰송치 보도 선에서 끝나야 한다. 흥미위주의 지나친 보도는 유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사건의 경중만을 따져봐도 김씨는 단순한 강간 살인범에 불과하다. 부녀자 10명이 살해된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의 강호순과 ‘안양초등생 살해사건' 정성연과 비교 대상이 아니다.

네티즌들도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방송3사 뉴스 시청자 게시판에는 네티즌들이 각 방송사에 MB의 독도관련 발언 진상파악을 촉구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아이디 ‘ruth99’는 MBC 뉴스시청자 게시판에 ‘MBC에서 조차 독도 뉴스를 볼수가 없습니다’ 제목의 글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에 대한 뉴스를 전혀 볼수가 없습니다. 김길태 사건만 계속해서 나오고 말이죠”라고 글을 남겼다. KBS 시창자 게시판에도 독도 관련 보도를 요청하는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이디 ‘misun0415'는 “요미우리 신문의 이대통령 독도발언이 나오고 있는데요, 전혀 뉴스에서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라며 “사실인지, 진행사항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방송해 주세요”라며 MB의 독도관련 방송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네트즌 항의에 ‘생색내기’용 보도

네티즌들의 요구가 잇따르자 일부 방송사에서 이 문제를 보도했다. 하지만 ‘생색내기’ 용 단신에 그쳤다. MBC는 17일 ‘이 대통령 독도 발언 첫 공판’ 이라는 기사를 30초 분량 단신으로 처리했다.

같은날 KBS도 ‘日 요미우리 독도보도 논란 靑 사실무근’ 이라는 기사를 통해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지만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하는 선에서 그쳤다.

방송은 왜 그동안 MB의 독도발언 관련 보도에 침묵했을까. 이 같은 방송의 보도행태에 대해 민주당 측이 의혹을 제기했다. 청와대에서 언론의 MB 독도 발언 보도를 사전에 차단했다는 것이다.

시민소송단의 소송대리인 겸 민주당 부대변인인 이재명 변호사는 “작년 1월 말 헤럴드 트리뷴이 AP통신 보도를 인용해 이명박 대통령이 같은 해 1월10일 한일정상회담에서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향후 사과 요구를 하지 않기로 서약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었다”면서 “민주당 측에서도 관련 논평을 냈는데 청와대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각 언론사에 보도를 내리게 한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청와대가 각 언론사에 전화로 기사를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이 대통령의 독도 발언도 이런 차원에서 보도통제를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부대변인은 이 문제가 방송 경영진 교체와도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와관련, 이 부대변인은 “(방송사 경영진 교체가) 직접적 관계가 있지는 않다”며 “하지만 정부의 언론장악에 대한 의욕이 대단하지 않느냐. 언론장악하려는 것은 보도통제를 하려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순 없다”고 말했다.

한편, MB의 독도발언 관련 소송 첫 공판은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고, 내달 7일 1심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전성무 기자] bukethead@nate.com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