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레드삭스 박스 스코어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보스턴의 애니콜 잠수함 김병현은 지난 5일간 등판, 그것도 2이닝을 던지며 승리를 따냈다. 지난 4일 보스턴이 4대3으로 1점 차로 간신히 앞서고 있던 8회말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공격상황. 그레디 리틀 감독은 이미 4일간 혹사당한 김병현을 차마 8회부터 올릴 수 없었던 탓인지 대신 마이크 팀린을 내세웠다. 그러나 팀린은 올라가자마자 전날까지 6경기, 20타석에서 단 한 개의 안타도 없던 호세 발렌틴에게 동점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 4대4 동점인 9회.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빨간 양말 소방수국의 단골직원 김병현은 또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구위가 예전 같지 않았다. 김병현의 안정된 피칭은 갈길 바쁜 시삭스(시카고 삭스) 타자들의 발목을 잡기에는 충분했다.

선두 타자 카를로스 리를 삼진으로 돌려 세웠고 다음 타자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이어 리그 홈런 2위에 올라있고, 지난달 홈런 13방의 주인공 빅 허트. 김병현은 그 토마스를 유격수 땅볼로 낚는 듯했지만 백핸드로 잡으려던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글러브 밑으로 슬쩍 굴러가며 1사 1루가 됐다. 시삭스는 즉각 아론 로완드를 대주자로 기용하고 타석엔 매글리오 오됴네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같은 그의 눈, 매섭게 돌아가는 방망이. 공은 좌익 선상으로 빠르게 굴러갔다. 보스턴의 좌익수 매니 라미레즈는 잽싸게 내야로 뿌렸고, 가르시아 파라를 거친 공은 다시 홈플레이트의 지킴이 제이슨 베리텍에게 향해졌지만 주자와 극적으로 충돌했다. 애초부터 홈 쇄도는 무리였을까. 그들은 보스턴의 실수를 노렸지만, 보스턴의 중계 플레이는 그 반대로 너무 완벽한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사이에 오됴네스는 3루까지 도달했지만, 김병현은 윌리 해리스를 스탠딩 삼진으로 잡았다.

시삭스의 슈퍼스타 칼 에버렛은 이미 8회 때 수비 좋은 윌리스로 교체된 상태였다. 10회초, 이제는 보스턴의 차례이다. 8회 때 극적인 역전 투런포를 날렸던 데이빗 오티즈가 타석에 들어섰다. 시삭스 마무리 플래시 고든의 피칭은 운이 좋지 못했다. 타구는 그대로 좌중간 펜스 뒤에 박히며 연타석 홈런, 또 다시 역전했다.시즌 8승, 이 경기까지 지난 5일 간 그는 총 6이닝 동안 84개의 공을 던졌다. 선발 투수가 하루 던지고 4일을 쉰 것과 거의 같은 투구수, 그리고 피로도는 적어도 2배는 넘는다. 6안타를 맞았고 2실점에 최근 3경기에서 승리-세이브-승리의 훈장을 따냈다. 휴식일이 하루 끼여있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양키스와의 시리즈에서 김병현의 투입이 망설여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리한, 더 나아가 무모한 등판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제구 위주의 안정된 피칭으로 높은 공과 실투를 던지지 않았던 것이 무너지지 않은 유일한 이유였다.

앞선 이닝에서 양 팀은 1승이 절박한 팀인 만큼 전날에 이어 쫓고 쫓기는 열전을 계속했다. 보스턴이 1회 오티스의 안타로 1점을 선취하자 시삭스는 3회 리의 보스턴 중견수 저니 데이먼의 글러브를 튀기는 2루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5회 보스턴 수비진의 에러로 역전을 이루자 이번에는 보스턴이 7회 제이슨 베리텍의 홈런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보스턴은 이날 승리로 탬파베이의 무명 투수에게 완봉패 당한 시애틀과 와일드카드 공동 선두로 뛰어 올랐으며, 토론토에 패한 지구 선두 양키스와는 3경기 차로 좁혔다. 그러나 시삭스는 이날 또 패배를 당하며 1경기 차 지구 2위였던 미네소타에 공동 선두를 허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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