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아테네올림픽을 빛낸 영웅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각종 언론사와 방송사의 러브콜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숙소와 훈련장만을 오가던 발걸음은 방송국을 향하게 됐고, 땀으로 얼룩졌던 운동복은 근사한 정장으로 변했다. ‘신화의 땅’ 아테네의 성화는 꺼졌지만 영웅들의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바쁘다 바빠!

현재 캐스팅 0순위를 자랑하는 올림픽 영웅은 탁구 금메달리스트인 유승민(22·삼성카드). 88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을 선사한 영웅답게 들을 이야기도, 또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그의 소속팀 삼성카드 측에 따르면 하루 평균 30여건 이상의 섭외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상황. 인터뷰와 방송 출연을 모두 소화하려면 9월 중순까지는 꼼짝도 할 수 없다. 특히 유승민은 몇몇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치있고 톡톡 튀는 입담을 선보이면서 인기가 더욱 치솟고 있다. 각 방송사들은 그의 이야기를 특집으로 엮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갔고, 오락프로그램에서 조차 그를 모시기 위해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을 정도다.

삼성카드 탁구 선수단의 홍보팀 김영건 과장은 “섭외 요청 때문에 다른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라며 “선수 시절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굉장히 기뻐하는 눈치다. 앞으로도 탁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라면 어디든 출연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유도 이원희(23·마사회)도 바쁘기는 마찬가지. 손가락 수술을 위해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귀국한 그는 현재까지 40개가 넘는 매체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각종 환영식과 방송출연까지 포함하면 잠잘 시간도 부족한 실정.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인기가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이원희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며 “인터뷰와 방송국에서의 촬영이 끝나면 하루가 다 지나간다. 매니저를 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정지현(21·한체대) 역시 하루의 절반 이상은 인터뷰로 시간을 보낸다. 얼마 전에는 가수 MC몽의 제안에 따라 깜짝 만남을 갖고 SBS TV의 연예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특히 귀여운 미소로 소녀 팬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그는 집까지 찾아오는 극성팬들 때문에 밤늦도록 집에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정지현의 어머니 서명숙씨는 “내 아들이 연예인이 된 것 같다”며 “너무나 조용하던 성격이었는데 방송에 출연해 말이나 제대로 할 지 그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행복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 그들만의 축제?

‘영웅’에게 주어지는 포상금은 그들을 향한 관심만큼이나 최고수준을 자랑한다. 유승민은 대한탁구협회가 내건 금메달 포상금 5,000만원을 비롯해 소속사인 삼성생명 측으로부터 1억원 정도의 포상금을 받을 예정이다. 이원희도 총 1억 9,500만원의 포상금 및 연금을 받게 된다. 이원희가 받게 될 1억 9,500만원은 기존 대회 입상을 통해 얻어놓은 연금평가점수를 토대로, 월 100만원의 연금 및 1,500만원의 일시금을 비롯 마사회, 대한올림픽위원회, 대한유도회,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별도 지급하는 1억8,000만원 등을 합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돈은 올림픽위원회가 내놓은 보너스일 뿐이다. 경기 단체와 기업들이 내놓을 두툼한 후원금까지 계산한다면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수억원을 챙길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뿐만 아니라 소속기관, 단체, 기업 등에서 받게 되는 인센티브는 별도로 지급 받게 되며, 국가대표팀 코치나 감독으로 선임되어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될 가능성까지 포함하면 명예만큼 큰 보상도 따른다. 하지만 이런 융숭한 대접은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다. 은·동메달을 딴 선수들은 금메달리스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월 45만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격려금도 금메달은 약 2,400만원이지만, 은메달과 동메달은 각각 1,200만원, 720만원에 불과하다. 은메달을 수십 개 따도 금메달 한 개의 가치에 못 미치는 셈이다. 비인기 종목이나 소속팀이 없는 경우 상황은 더욱 비참하다.탁구(삼성), 유도(마사회), 양궁(현대) 등 탄탄한 후원자를 등에 업고 있을 경우엔 거액의 포상금으로 돈방석에 앉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한다. 연장전 접전 끝에 아쉽게 은메달을 획득한 여자핸드볼 팀은 협회에서 준비한 5,000만원을 제외하면 손에 쥐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자핸드볼팀의 임영철 감독은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에서 국가별 순위를 매기지 않지만 언론이나 각국은 금메달로 순위를 따진다. 그래서 금메달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게 마련”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올림픽 위원회의 한 관계자 역시 “모든 관심이 금메달리스트에게만 쏠리고 있어 아쉽다”며 “외국 선수들은 동메달만 따더라도 펄쩍펄쩍 뛰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금메달에 집착한다. 똑같은 메달이지만 색깔 때문에 누군가는 웃지만, 또 누군가는 울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올림픽은 금메달리스트들만을 위한 잔치가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