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4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5서울대회’ 기자회견에서 최홍만이 격투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좌로부터 이면주, 최홍만, 레이 세포.

나는 여전히 ‘천하장사…’

지난 1월 24일 저녁 8시 30분이 넘은 시각, 최홍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 발신자 번호에 찍힌 그의 이름에는 ‘♥천하장사♥’라는 멘트가 덧붙여져 있었다.여전히 모래판을 잊지 못한 것일까. 이제 ‘이종격투기 선수’로 불려야 하는 그에게 ‘천하장사’라는 타이틀은 왠지 낯설어 보였다. “버릇이 무서운 건가봐요. 아직도 사인할 때는 ‘천하장사’라는 글을 꼭 쓰게 되더라구요. 이제 서서히 바꿔야죠. 하지만 K-1 무대에 서더라도 제가 천하장사였다는 사실은 잊지 않을 겁니다. 물론 변하지 않는 사실일테구요.”최홍만은 하지만 더 이상은 씨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씨름판에 있을 때보다 이종격투기 무대에 서는 자신에게 더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 참 묘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씨름 선수였던 당시에도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댄스와 넘치는 끼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했었다. 하지만 이종격투기 선수로 직업을 전향한 지금, 그에 대한 관심은 신문 1면을 장식할 정도다. “저 스스로도 놀라요. 하지만 최홍만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최홍만이 치고받는 싸움판에 뛰어든다는 사실이 더 큰 관심인 거겠죠. ‘요놈이 성공할 수 있을까’하고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이 정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운동 시작한 이래 처음인 것 같아요. 씨름에도 이런 관심을 진작에 보였더라면 좋았을텐데 너무 아쉽네요.”

불안감에 잠도 못잤다

그는 K-1 진출 발표 이후 상당한 마음고생을 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무너져가는 씨름판을 외면했다는 비난의 소리는 참기 힘들 정도였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네티즌들의 쓴소리 때문에 평소 즐겨 찾던 팬카페도 한동안은 개점휴업을 선언해야 했다고. “생소한 종목에 도전하는 심정이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솔직히 몇 대 맞고 그냥 뻗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겁나기도 했죠. 생각해보세요. 만약 제가 그렇게라도 된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씨름을 버리고 돈만 좇아가더니 결국 저 꼴 되는구나’ 하며 고소해할 것 아니에요. 언론에는 ‘자신있다’고 큰소리 쳤지만 사실 잠도 못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하루에도 수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렸을 정도였으니까요.”

최홍만은 갈등을 겪을 때마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사실 급작스레 K-1 진출을 결정하게 된 배경(본지 556호 보도)은 부모님 때문. 제주도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한 후 현재 아들만 바라보고 계시는 부모님 생각을 하면 그런 불안감도 사치라고 느껴졌다. 현재 최홍만은 일본 측으로부터 각종 CF와 방송 출연 제의를 받고 있다. K-1진출에 따른 계약금과 파이트머니만 해도 적지 않은 금액. 게다가 CF 개런티 등 부대수입은 대전료를 훨씬 상회할 것이 분명하다. “몇 십억씩 받는 프로야구, 프로축구 선수들도 있는데 저라고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프로로서 제 몸값을 높여서 반드시 부모님 호강시켜드릴 겁니다!”

승부수는 던져졌다

최홍만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체중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워낙 체격이 커서 잘 모르겠다고 농담을 던지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키가 줄지 않는 이상 아무도 자신의 변화를 몰라볼 것”이라고 재치있게 답했다. 그는 K-1진출을 발표하고 난 뒤 부산 모 체육관에서 한 달 동안 웨이트트레이닝에 전념했다. 스케줄을 오전 오후로 나눠 유산소 운동과 근육 강화 운동 등 기초체력 다지기에 온 힘을 다했다. 그 덕분(?)에 체중도 8kg 정도 뺐고 체지방도 7% 가량 줄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전문가의 트레이닝과 실전 스파링. 최홍만의 웨이트 트레이닝은 일본 프로야구 슬러거 기요하라 가즈히로(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지도한 트레이너가 담당하게 되고 최홍만의 몸 상태와 근력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용시킬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자신의 주무기로 ‘왼손 스트레이트’를 꼽았다. 누구보다 주먹이 크고 펀치 파워가 센 장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각오다.

키가 큰 최홍만에게 최대 약점은 바로 하체. 때문에 긴 팔을 이용, 상대와 최대한 거리를 두면서 펀치 위주의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 “비디오 분석을 통해 선수들의 장단점을 모두 파악했어요. 이제 맞붙는 것만 남았죠. 많은 사람들이 아케보노와의 결전을 기대하고 있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인의 명예를 걸고 싸워야죠. 흥행 때문에 너무 서둘러 데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맞아 죽더라도 이젠 링위에서 모든 것을 끝낼 겁니다!”모래판에서 테크노를 췄던 최홍만. K-1 링에서는 어떤 세리모니를 보여줄까. 이에 대해 최홍만은 “기대해도 좋다”며 특유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K-1은 선수들이 등장할 때 배경음악을 깔아 주거든요. 전 서태지 음악을 선택할 겁니다. 모래판에선 테크노댄스를 췄는데, 링 위에선 다른 것을 선보일 생각이에요. ‘헤비메틀’처럼 파워 넘치는 댄스 말이죠. 남자는 힘 아닙니까! 힘!!”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