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대표팀은 지난달 26일 2006년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0-2로 패했다. 대표팀은 사우디아라비아에 기량과 전술 모두에서 밀리며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다. 패배 뒤에는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본프레레 감독은 27일 귀국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정신력이 문제였다. 우리 팀 선수들의 의지는 예전보다 약해졌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상대적으로 밀렸다”고 변명했다. 아울러 “코칭스태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해 전술훈련을 시켰다. 선수들의 정신력이 부족해서 졌다”고 강변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모두 선수들에게 전가하는, 지휘관으로서 가장 못난 모습을 보였다.이후 본프레레 감독은 퇴진압력까지 받는 등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본프레레 감독은 30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 3차전에서 2-1로 이겨 경질 위기에서는 일단 벗어났다. 또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집중력과 정신력이 좋았다”라며 의례적인 말로 선수들과 여론을 향해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그러나 들끓는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본프레레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난 뒤 “전술의 변화를 준 것이 성공해 골이 터졌다”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 취재진이 작전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자 “말해주기 싫다. 선수들은 잘 안다”며 입을 닫았다. 이 경기에서 특별한 전술 변화를 읽지 못했던 전문가들은 “설명할 작전이 없었던 것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본프레레 감독은 그릇된 언행으로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다. 본프레레 감독의 부진과 실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히딩크 감독에게 향수를 느끼는 팬들이 많아졌다. 커뮤니케이션에 서툴렀던 코엘류 감독과 본프레레 감독의 공통점을 꼬집는 사람들도 있다. 히딩크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까지 올려놓으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히딩크 감독은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한국 축구의 잠을 깨우며 빠르고 역동적인 축구를 구현했다.

선수 선발도 철저히 실력 위주로 했다. 스타플레이어들의 기득권을 무시했고, 김남일 박지성 송종국 이영표 등 무명 선수들에게 길을 터줬다.기술 외적인 부분에서 히딩크의 최대 강점은 천부적인 커뮤니케이션 감각이다. 그는 “선수들끼리 형이라는 호칭을 쓰지 마라” “킬러본능을 가진 선수가 필요하다” “현재 대표팀의 16강 진출 확률은 50%이다. 매일 1%씩 가능성을 높여 100%를 만들겠다”는 둥 시의적절한 말로 선수들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또 언론을 통해 좋지 않은 여론을 견제하기도 했다.멋진 수사를 즐겨 쓰던 히딩크는 대표팀이 16강전에서 승리하자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라는 명언을 토해냈다. 한때 퇴진 압력을 받기도 했던 그는 월드컵 개막 직전, 성공을 예감한 듯 “제대로 하기 위해 어려운 길을 돌아왔다.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결국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자찬하기도 했다.

또 히딩크 감독은 한국인 코치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물론 최종 판단은 그가 했지만, 언로는 항상 뚫려 있었다. 히딩크의 커뮤니케이션 감각은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이뤄내는 데 큰 역할을 했고, 그 실적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히딩크 뒤를 이은 코엘류 감독은 1년간 대표팀을 맡아 우왕좌왕한 끝에 지난해 4월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사퇴했다. 후임자인 본프레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감독은 2002년 월드컵 때의 대표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변화와 발전을 마다하고 히딩크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무엇인가를 덧칠하려고만 한다. 선수들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코엘류 감독과 본프레레 감독의 문제점은 대화의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코엘류 감독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억지만 썼다. 때문에 퇴임 시점까지 한국 선수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엘류 감독은 히딩크 감독과 비교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히딩크와 나를 비교하지 말라” “내 잘못 50%, 선수 잘못 50%” “경기장을 바꿔야겠다. 여기서는 도저히 못 이길 것 같다”는 둥 엉뚱하고 자신감 없는 말들을 쏟아내느라 바빴다. 본프레레 감독도 코엘류 감독의 전철을 밟고 있다. 지난해 11월 허정무 코치(현 전남 드래곤즈 감독)가 갑작스럽게 사임하자, 4개월 동안 빈 자리를 그대로 두고 있다. 옆에서 잔소리하는 사람이 싫은 모양이다.본프레레 감독은 특별한 색깔 없이 팀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동국을 스트라이커로 발탁한 것 외에는 이전과 달라진 점이 없고 ‘히딩크 그늘’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책임을 회피하려는 발언을 했고, 그 파문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본프레레 감독은 성적도 신통치 않은 데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고전하고 있다.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데, 그의 빚은 눈덩이처럼 커지고만 있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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