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왕, 타격왕, 안타왕, 다승왕, 삼진왕, 도루왕….팀웍을 중요시하는 구기스포츠에서 야구만큼 개인타이틀이 많은, 개개인의 능력이 중요시되는 종목도 없다. 시즌 후 각종 타이틀을 거머쥔 선수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부와 명예를 거머쥔다.그러나 홈런을 치기 위해서는 홈런을 맞아야 하는 선수들도 있고 삼진을 잡은 투수에게는 제물이 되어야 할 타자들도 있다. 화려한 기록들의 이면에는 삼진, 병살, 실책 등 ‘안 좋은 추억’도 따라다니는 것이다.그렇다면 공수 각 부문에서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은 누구일까. 놀랍게도 각종 타이틀 상위권에 올라있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각 팀의 스타 플레이어들이다. 팀의 간판 선수들은 타 선수에 비해 출장 횟수도 많고, 경기중에도 자신의 기량을 믿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기 때문에 자연히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울 기회도 많아진다.

거포들, 공격부문 불명예 기록 상위권에

올해 삼진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는 타자를 보면 ‘삼진왕=홈런타자’ 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현재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의 서튼(25개), 2위인 현대의 송지만(20개), 공동 4위인 삼성의 심정수(19개)는 홈런타이틀뿐만이 아니라 삼진왕 레이스에서도 경합을 벌이고 있다.현재 삼진왕은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심정수. 그는 87번의 삼진을 당해 삼진 부문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홈런랭킹 4위에 머무르며 체면을 구긴만큼 앞으로도 그의 스윙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심정수는 지난 시즌에 이어 삼진왕 2연패도 유력시되고 있다.

심정수의 뒤를 따르고 있는 선수는 서튼과 송지만. 서튼은 78번, 송지만은 77번을 삼진으로 아웃되며 이 부문 2, 3위에 나란히 올라 있다.홈런타자들이 삼진을 많이 당하는 이유는 공을 맞히는 정교한 타격보다는 헛스윙을 하더라도 큰 타구를 만들어내기 위한 스윙 때문이다. 각 팀의 감독들도 홈런타자들에게는 큰 타구를 때리라 말라 특별한 작전을 걸지 않는 등 배려를 해주기 때문에 삼진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심정수, 서튼을 비롯 각 팀의 거포들은 한결같이 삼진왕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홈런왕 타이틀은 놓칠 수 없다는 태세여서 앞으로도 거포들의 삼진은 늘 전망이다.그러나 삼진왕을 겨루는 선수들에게도 위안이 되는 선수가 있다.

바로 ‘병살타’ 부문 1위인 한화의 김태균이다. ‘혼자 죽는’ 삼진보다 팀동료까지 희생시키는 병살타가 ‘더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55타점을 기록하며 타점 팀내 1위이자 리그 3위로 한화 타선을 이끌고 있는 김태균은 병살타 17개를 기록, 고비마다 팀 공격에 찬물을 끼얹으며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됐다. 이에 누상에 주자가 나가면 김인식 감독은 잔뜩 긴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믿음’을 중요시하는 김인식 감독은 김태균에게 자신있는 스윙을 주문하며 좀처럼 번트지시를 내리지 않기 때문에 김태균의 병살타 수도 늘어난 것.

김태균을 뒤따르는 병살타 잘 치는 선수들도 각 팀의 중심타자들이다. 기아의 홍세완은 15개, 최다안타 1위인 삼성의 박한이와 두산 홍성흔은 13개, 삼성과 기아의 4번타자인 양준혁과 마해영은 12개 등 병살타 랭킹 상위권은 각 팀의 중심 타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처럼 중심타자들이 병살타를 잘치는 이유는 감독들의 ‘믿음’ 때문. 각 팀의 감독들은 중심 타자이기에 찬스에서 번트보다는 강공을 택한 경우가 많았고, 이에 병살타를 때릴 찬스(?)도 다른 선수들보다 더 많았던 것이다.

에이스는 홈런 공장장

타자들뿐만 아니라 각 구단의 주전급 투수들도 불명예 기록에서 자유롭지 않다. 등판 횟수가 잦고 투구 이닝 수도 길어지다보니 그만큼 ‘얻어맞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 특히 에이스들은 도망가는 피칭보다는 힘과 스피드로 공격적인 피칭을 펼쳐 ‘기교파’ 투수들보다 상대적으로 난타당하는 횟수도 많다.가장 눈에 띄는 투수는 두산의 특급용병 리오스다. 최근 기아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 된 리오스는 최다패배(11패), 피안타(152개), 피홈런(18개), 실점(76점), 자책점(69점)의 5개 부문에서 1위에 올라있어 에이스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먼저 홈런부문에서는 두산의 리오스와 현대의 에이스 김수경이 각각 18개와 16개의 홈런을 헌납해 ‘홈런 공장장’ 이란 꼬리표가 붙었고, SK의 김원형, 채병룡도 각각 피홈런 15개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볼넷 부문 역시 각 팀의 에이스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다승 3위인 두산의 박명환은 52개로 가장 많은 볼넷을 내주며 제구력이 제일 불안한 투수로 낙인이 찍혔고, 기아의 김진우와 삼성의 바르가스가 각각 50개, 49개의 볼넷을 내줬다.

타자들에게 ‘공포’ 의 대상인 데드볼은 SK의 고효준과 롯데 염종석이 쌍벽을 이루고 있다. 데드볼 16개로 1위를 달리고 있는 고효준은 데드볼의 ‘양’ 못지않게 ‘질’ 에서도 단연 1위다. 고효준은 투구이닝이 겨우 47과 3분의 2이닝밖에 되지 않는다. 9이닝 평균으로 환산하면 2.64개에 이르니 타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 이다.2위인 롯데 염종석 역시 15개의 데드볼을 던져 상대팀 타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염종석은 방어율 5위(3.40)로 좋은 투구 내용을 선보였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고작 3승7패에 그치고 있어 상대팀 타자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셈이다. 그가 16게임에 등판했으니 경기당 한 명씩은 맞히고 있다. 다패왕도 에이스들의 각축장이다. 현재 두산의 리오스가 11패로 선두를 달리고 있고 롯데의 이용훈이 9패로 그 뒤를 추격하고 있다.리오스의 경우 기아시절 좋은 투구내용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의 빈약한 지원으로 인해 패전투수의 멍에를 뒤집어 쓴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후 패전을 추가하는 일이 드물어져 다패왕 판도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수비 부문의 불명예 기록인 실책은 고스란히 야수들의 몫이다. 특히 내야수들은 수비부담이 많고 까다로운 타구들이 많이 날아와 실책이 집중됐다. 포지션별로는 수비수의 꽃인 유격수들의 실책이 가장 많았다. 차세대 내야수로 주목받고 있는 현대의 채종국은 15개로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박진만의 공백을 메워 줄 선수로 평가됐던 채종국은 잦은 실책탓에 2루수로 ‘강등’ 되기도 했다.롯데의 박기혁도 실책 14개로 바짝 뒤를 쫓고 있다. 팀 동료인 서한규와 LG의 한규식도 12개로 채종국의 뒤를 따르고 있다.

불명예 타이틀, 붙박이 주전 의미하기도

이처럼 개인은 물론 팀에 해를 끼치는 불명예기록은 선수들에게 반가운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불명예스러운 기록 역시 주전으로서 꾸준히 경기에 출전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기량미달이나 팀웍을 해치는 플레이 정도로 인식하는데 비해 야구계에서는 불명예 기록왕들에 대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결코 명예스러운 타이틀은 아니지만 최소한 1군에서 매경기 선발로 뛰는 타자와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전 투수라는 보증수표로 인식되는 것이다.타자가 삼진이 많다는 것은 볼 카운트를 의식하며 맞히는데 급급하지 않고 자기 스윙을 고집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투수가 타자를 자주 맞히는 것은 그만큼 과감한 몸쪽 승부를 많이 펼쳤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의식해 타자가 자기스윙을 하지 못하거나 투수가 과감하게 공을 뿌리지 못할 수도 있어 각 팀의 코칭스태프들은 과감한 플레이를 주문한다. 코칭스태프들이 “삼진을 당해도 좋으니까 마음껏 스윙하라”거나 “홈런을 맞더라도 눈 질끈 감고 가운데로 던져넣으라”고 주문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팀 동료들도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피하기 위해 도망가는 선수들보다 공격적인 선수들을 선호한다. 대기 타석에 선 타자들은 타격 밸런스와 리듬감 때문에 앞선 타선의 선수가 이것저것 재지 않고 빨리 배트를 휘둘러 주기를 원하고 있고, 수비수들도 요리조리 도망다니며 맞혀잡는 투수보다 차라리 홈런 한 방 내주는 투수를 더 선호한다. 그라운드에서 투수의 손끝을 주시하며 잔뜩 긴장한 채 허리를 숙였지만 타자를 허무하게 걸려 내보내는 것 보다 차라리 홈런이 속 편하다는 것이다.시즌 막바지로 접어든 프로야구. 종착지에 다가갈수록 치열하게 ‘탈(脫) 1위’ 를 위해 안간힘을 쓸 스타 플레이어들과 이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야구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전망이다.

# 코리언 특급 박찬호 제 2 전성기 열리나

코리언 특급 박찬호가 지난 7월 30일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로 전격 트레이드됐다. 그동안 루머로만 돌던 트레이드가 현실화됐다는 점과 빛을 못보던 텍사스를 떠나 선수 생활에 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번 트레이드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중요한 것은 이번 트레이드가 박찬호에게 있어서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훨씬 많은 트레이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실보다는 득이 많은 이유는 첫째, 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언제나 많은 한국팬들이 야구장을 찾아 박찬호를 응원했던 LA 다저스 시절과 달리, 텍사스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응원을 받아 박찬호는 외로움을 느껴왔다.

이미 다저스 시절에 많은 한국인들을 겪어본 박찬호에게는 오히려 이들이 더욱 힘이 될 것이다.둘째, 박찬호에게 유리한 홈구장이다. 아메리칸리그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타자 친화적인 아메리퀘스트필드와는 달리 펫코 파크는 전형적인 투수 친화적인 야구장이다. 특히 엄청나게 넓은 우중간은 좌타자가 홈런을 뽑아내기 힘든 구조라 박찬호로서는 심리적으로 많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펫코 파크는 투심 패스트볼을 이용해 땅볼을 유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넓기 때문에 박찬호로서는 컨디션에 따라서 다양한 구질을 부담없이 구사할 수 있다는 이점도 갖게 되었다.셋째, 상대적으로 편한 타자를 상대한다는 점이다.

일단 투수가 타석에 들어선다는 점에서 좀더 승부하기가 편해졌고, 전체적으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 비해서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소속팀의 타력이 약한 편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박찬호를 두들겼던 ‘천적’ LA 에인절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고무적이다.넷째, 텍사스에 비해 훨씬 강화된 불펜을 만나게 되었다. 현재 샌디에이고는 리그 최고의 마무리 중 한 명인 트레버 호프먼을 비롯, 2점대 방어율을 기록 중인 셋업맨 아키노리 오츠카, 루디 시에네즈 등의 수준급 구원투수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텍사스의 구원투수진보다 박찬호의 승리를 확실히 지켜줄 수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박찬호로서는 부담을 한층 덜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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