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초반 판세 분석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07~2008 시즌이 두 달째로 접어들었다. 팀들마다 5~6경기를 치른 결과  만년 중위권이었던 맨체스터 시티(4승2패ㆍ승점 2)가 2위에 포진해 눈길을 끄는 가운데, 이른바 ‘빅4’로 불리는 전통의 강호 아스널과 리버풀, 맨체스터 유아니티드, 첼시가 ‘톱5’에 포진해 있다. ‘빅4’가 모두 4강안에 들었다고 하지만 엄밀히 살펴보면 시즌 전 전문가들이 예상하던 구도와는 다른 양상이다. 올 시즌 초반 판도는 과거와 비교해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를까. 현재까지의 각 팀들의 순위를 살펴보고 초반 전력을 분석해봤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역시 아스날의 약진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첼시의 상대적 부진이다. 이 두 팀은 ‘빅4’ 중에서도 우승권에 더욱 근접한 팀으로 평가받았었다.

그러나 시즌이 열리자 두 팀은 중하위권 팀들에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아스날과 리버풀에 밀렸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맨유는 승점 14점으로 2위에 랭크되어 있으나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더비 라이벌 맨체스터 시
티에게 발목을 잡히고 포츠머스와 레딩과 무승부를 기록했다. 최근 3연승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만족할만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맨유는 골잡이들의 부진과 부상으로 인한 전력누수가 가장 큰 고민거리다. 시즌 초반 테베즈(24·아르헨티나)를 야심차게 영입했으나 그가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에이스 ‘웨인 루니’와 플레이스타일이 유사한데다 마땅한 ‘타겟맨’이 없는 가운데서 그의 플레이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본인도 자신의 플레이가 답답한듯 중앙과 좌우를 오가며 직접 볼을 받는 플레이를 펼치고 있지만 ‘골잡이’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골이 터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지난 9월 23일 첼시와의 경기에서 다이빙 헤딩으로 데뷔골을 터뜨리며 ‘골 갈증’을 해소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루이 사하가 그나마 ‘타겟맨’ 역할을 할 선수지만 복귀한 지 얼마지 않았기 때문에 그라운드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리몸’이라 불리는 그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부상’도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부상 선수들로 인한 전력누수도 알렉스 퍼거슨 감독으로서는 고민거리다. 주장 게리 네빌은 아직 복귀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이 잡히지 않았고 박지성은 내년 초에나 복귀가 가능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수비수 실베스트르는 부상으로 시즌을 접었다.

그나마 반가운 것은 오언 하그리브스가 조만간 복귀한다는 것과 루니가 부상을 털어버리고 돌아왔다는 점이다.


‘삼중고’ 첼시

맨유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 첼시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부진과 부상에다 감독교체까지 그야말로 ‘삼중고’다.

주축 선수인 미하엘 발락이 부상 중인데다 최근에는 람파드까지 부상을 당해 몇 경기에 나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세브첸코는 최근 로젠보리와의 챔피언스리그 1차전에서 골을 기록하기는 했으나 이것이 부진의 늪을 알리는 신호탄일지는 두고 봐야 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조세 무리뉴 감독의 사퇴다. 몇 년간 첼시를 잘 이끌어왔지만 결국 구단 경영진과의 마찰로 인해 중도사퇴했다. 아브람 그랜트가 후임 감독으로 선임됐지만 선수들의 동요가 만만치 않다.

영국의 대중일간지 선은 지난 9월 20일(한국시간) “드로그바가 이적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선은 “무리뉴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했고 드로그바는 슬픔에 잠겨있다”며 무리뉴 사임에 대한 선수들의 실망감을 나타냈다. 드로그바의 절친한 한 친구는 “그는 무리뉴를 정신적 지주로 여겨왔다. 다른 감독 밑에서 최고의 실력을 선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리뉴의 사임에 분개한 것은 드로그바만이 아니었다. 마이클 에시엔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출신이자 FC 포르투 시절 무리뉴 감독의 수제자였던 히카르두 카르발류와 파울로 페레이라도 불만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으며 이적을 고려하고 있다.

무리뉴 감독의 신임을 받던 프랭크 램파드 역시 이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무리뉴 감독의 이적설이 돌던 지난 시즌 말, 램퍼드는 무리뉴의 운명과 함께할 것이라 밝혀왔다.

이러한 휴유증은 그랜트 감독의 데뷔경기인 맨유와의 원정경기에서 나타났다. 경기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0:2 패배. 어둡기만 한 첼시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경기였다.


아스날의 에이스 ‘파브레가스’

반면 아스날은 그야말로 ‘욱일승천’의 기세다. 6경기를 치른 현재 5승 1무로 무패를 기록하고 있다. 시즌 전 아스날은 티에리 앙리의 이적으로 인해 부정적인 의견이 중평이었다. 특히 앙리를 대체할 만한 마땅한 골잡이가 없어 심각한 득점력 결핍에 시달릴 것이라 전망됐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우’였다. 15골을 기록해 우려했던 득점력 저하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스날의 새로운 에이스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중심으로 더 탄탄한 조직력과 공격력을 선보이고 있다. 파브레가스는 “앙리가 빠지자 조직력이 더 좋아졌다”는 극단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지난 5라운드 라이벌 토트넘의 홈구장 ‘화이트 하트레인’에서 열린 북런던 더비는 이런 아스날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경기였다. 토트넘의 베일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나 후반에만 3골을 몰아치며 화끈한 공격력을 뽑냈다.

시즌 전 토트넘과 더불어 가장 알차게 전력을 보강했던 팀으로 꼽혔던 리버풀도 아스날에게 승점 4점을 뒤진 4위를 달리고 있다. 2위 맨유보다는 한 경기를 덜 치렀다.

스페인 출신의 특급 골잡이 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하며 우승을 노리고 있는 리버풀은 토레스의 성공적 적응여부가 좋은 성적을 올리느냐의 관건이다. 토레스는 첼시와의 4라운드에서 멋진 개인기를 선보이며 데뷔골을 기록했지만 그 한 골이 전부다.

시간이 더 지나봐야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 ‘캡틴’ 스티븐 제라드가 중앙 미드필더로 복귀해 팀을 이끌고 있는 것은 리버풀의 가장 큰 강점. 전통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한 맨유와의 맞대결이 올시즌 승부령이 될 전망이다.

맨체스터 시티의 약진과 토트넘의 부진도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다. 맨시티는 태국의 탁신 전 총리가 인수하면서 에릭손 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을 영입하고 알짜배기 선수들도 영입했다. 시즌 초반 더비 라이벌 맨유를 물리치며 3연승 했으나 지금은 한 풀 꺽인 기세다. 현재까지는 승점 13점으로 3위를 달리고 있다.

이영표를 응원하는 토트넘 팬들은 그야말로 울상이다. 토트넘은 6경기를 치룬 현재 1승 2무 4패로 18위에 처져 있다. 시즌 전 대런 벤트, 가레스 베일 등을 영입하며 ‘빅4’ 진입을 노렸던 팀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성적이다. 지난 6라운드에서 아스날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것은 그야말로 치명타였다. 선제골을 넣고도 3골이나 내주는 허약한 수비력을 선보이며 완패했다. 래들리 킹의 결장이 뼈아팠다.

마틴 욜 감독이 새로 선보인 이영표-가레스 베일의 왼쪽 라인은 성공적 안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오른쪽 공격라인과 공격수들의 재치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다. 베르바토프, 로비 킨, 저메인 데포, 대런 벤트 등 공격수들의 면면만 놓고 본다면 프리미어리그 팀들 중에서 가장 화려하지만 이들을 어떤 조합으로 내세우느냐는 어려운 숙제다. 다만 아론 레넌이 조만간 복귀한다는 것이 희소식이다.

한편, 이동국의 미들스브러는 2승 2무 3패로 중위권에 처져 있다. 이동국은 주전 공격수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당분간 선발 공격수로 출전할 것으로 보인다. 리그 데뷔골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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