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버리고 이회창 끌어 안는다”

6·2지방선거에서 정치권과 언론의 예상과는 달리 민심은 집권 여당 견제론을 선택했다. 한나라당은 서울과 경기 수성에 성공했지만 충청권 전패에다 전통적인 텃밭인 강원과 경남을 야권에게 넘겨줌으로써 정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됐다. 당초 지방선거 승리를 전제로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사업, 개헌 등을 힘입게 출발하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개헌, 세종시 수정안 등은 국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현안이라는 점에서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여당내 야당인 친박 인사들에 대한 단도리할 필요성이 더 높아졌다. 또한 당밖 또 다른 보수정당인 이회창 대표가 있는 자유선진당에게 ‘러브콜’을 보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무엇보다 친이 강경파 진영에서는 차기 유력한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개헌 카드’는 국면전환용이라는 비판속에서도 강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집권 3년차를 맞이해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었다.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북풍이 한반도 전역을 휩쓸었지만 민심은 야권의 MB 정권의 견제 주장에 힘을 보탰다. 특히 친이 진영에선 지방선거이후 MB 정권 국정 핵심 정책인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사업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면 개헌 카드는 차기 대권 구도 및 정계개편과 맞물려 있어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또한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셈법이 복잡하다.


개헌 발의 146명, 개헌통과 194석 확보해야

일단 집권 여당내 주류인 친이 진영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다. 대통령에 지나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누는 형태다. 하지만 여당내 야당인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친박 진영에서는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어 의견통일이 쉽지 않다. 한발 더 나아가 친박 진영에서는 친이 진영의 개헌 카드를 ‘박근혜 죽이기’로 인식해 거센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 한나라당 의석수는 169석이고 민주당은 84석이다. 친박 성향의 인사들이 50~60명에 합당을 선언한 미래희망연대 8석을 합치면 더 불어난다. 친이 진영에서 독자적으로 개헌을 추진하기위해선 ‘국회의원 재적과반수(146명)’을 채우기도 벅찬 현실이다. 통상 여권발 정계개편은 여소야대인 정치지형에서 일어났다. 한나라당은 169석으로 여대야소인 정치적 상황이지만 친박 성향의 의원들을 제외하면 내용상으로는 여소야대인 셈이다.

아울러 개헌안 통과를 위해선 ‘재적의원 3분의2(194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게 친이 진영의 현실이다. 이는 곧 당내 친박 인사들을 비롯해 범보수 진영인 구 친박연대 8석과 자유선진당 16석, 그리고 무소속 5석 모두를 동원해야 198석으로 개헌이 가능하다.

따라서 친이 진영에서 원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을 위해선 당내 친박 의원들을 포함해 당밖 보수진영이 힘을 모아야 한다. 일단 청와대 및 친이 진영에서는 당내 50여명에 해당되는 친박 인사들의 결집도가 높다는 점에서 이회창 대표가 있는 자유선진당에 ‘러브콜’을 보내겠다는 복안이다. 이 대표 역시 4년 중임제보다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차기 권력구도에서 친이-대통령, 자선당-총리로 권력 분점을 꾀하겠다는 복안이다.

청와대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세종시 수정안으로 인해 충청권 민심이 현 정권에서 돌아섰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그나마 자유선진당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이 대표와 연정을 하더라도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오는 7~8월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할 때 자유선진당 인사를 개각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갈 수 있느냐는 의구심을 표출했다. 그는 “이미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함께할 시점을 놓친 상황이다”며 “친이 강경파에서는 박 전 대표를 제외하고 친박 성향의 수족 인사들을 대상으로 회유와 압박 등 양동작전을 구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존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친이 진영이 개헌카드를 박근혜 vs 반박근혜 전선으로 몰고 갈 경우 박 전 대표의 운신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박 전 대표가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민주당과 손을 잡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체성과 이념을 차치하고라도 이는 곧 박 전 대표가 탈당이라는 카드를 염두에 둘 경우 가능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박 전 대표의 탈당은 친이 주류측에서 원하는 바로 선택하기 쉽지 않다. 박 전 대표로선 이래저래 당안팎에서 개헌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수록 당론 채택을 두고 탈당 등 극단적인 선택을 요구받을 공산이 높다.


개헌, 博-昌 연대에 박근혜-민주당 짝짓기?

집권 여당의 경우 친이 주류측이 주도적으로 정계개편에 앞장서고 있다면 반대로 야권은 외부로부터 통합을 종용받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국민참여당 유시민 경기도지사로 후보 단일화를 이뤘고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를 통해선 민주노동당 후보와 선거연합에 성공했다. 물론 두 인사 모두 아깝게 석패했지만 야권 연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다는 것을 실감한 결과였다.

한편 이광재, 안희정 두 후보가 각각 강원도지사와 충남도지사에 당선돼 파란을 일으켰지만 무소속 야권연대 단일화 후보인 김두관 후보가 한나라당 텃밭인 경남지사에 당선된 것은 이변이었다. 이는 곧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향후 있을 7·28재보선과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선거 연대가 불가피함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반MB 연대 전선은 선거 때마다 나타날 전망이다.

한편 야권 통합에는 국민참여당보다 민주당이 더 적극적이다. 유시민 후보와 단일화를 하는데 산파역할을 한 손학규 전 대표는 “이제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우리 민주당은 또한 변해야 한다”면서 “모든 개혁 진보진영이 이제 힘을 합치면 기적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시대정신, 정치세력을 구상해야 한다”고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은 ‘DNA가 다르다’며 아직은 당대당 통합에 대해선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반면 2012년 대선전까지 선거 연합과 후보 단일화에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와관련 민주당 출신 한 인사는 “진보 진영이 후보 단일화를 통해 지방선거에서 선전했다”며 “하지만 당장 통합이나 합당은 없을 공산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19대 총선이 있는 2012년 4월까지 야권 연대의 필요성은 높아지지만 각개 약진을 통해 지분 챙기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라며 “이후 치러지는 대선에선 이번 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야흐로 지방선거 패배이후 개헌을 통해 정치권은 이합집산으로 홍역을 치를 공산이 높아지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박근혜의 굴욕

달성군수, “박근혜 바람 옛날같지 않았다”

한나라당 당 지도부와 광역단체장 후보가 선거가 본격화되자 ‘박근혜 역할론’을 기대할 즈음 박 전 대표는 고향인 대구로 내려갔다. 박 전 대표가 선거기간에 자기의 지역구인 대구로 간 것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지만 달성군수 선거때문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인 박모씨가 박 전 대표의 후광을 업고 공천 전횡으로 인해 한나라당 후보가 고전한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다.

실제로 박 전 대표의 측근으로 알려진 박모씨가 공천한 한나라당 이석원 후보에 반발해 대구 MBC 보도국장 출신인 김문오씨가 무소속으로 달성군수에 출마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자신의 텃밭인 대구 달성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패할 경우 ‘선거의 여왕’이라는 위상이 크게 실추될 것을 우려한 대구행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김 후보의 승리였다. 16년동안 계속된 한나라당 출신 군수들에 대한 염증과 무소속 후보 연대에 성공한 김 후보가 박 전 대표가 적극 지지한 이 후보를 2000 이상의 표차로 승리했다. 김 당선자는 본지와 지난 6월3일 전화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가 한번은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큰 정치를 할 사람이고 군수가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선거 기간 내내 적극적으로 지원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면서 “박근혜 바람이 옛날 같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또한 김 당선자는 “박 전 대표가 경로당, 유세 지원 등 30분 단위로 움직였다”며 “가는 곳마다 박 전 대표가 ‘이석원 후보를 군수로 뽑아야 군이 발전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승리요인에 대해 김 당선자는 “박 전 대표의 측근인 박모씨가 현직군수인 이종진씨를 팽시키고 대타로 이석원 후보를 내세운게 잘못이다”며 “자질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이 후보가 어거지로 공천되면서 16년간 장기 집권한 한나라당 후보를 바꿔보자는 민심이 한몫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입당 여부를 묻는 질문에 김 후보는 “입당 여부를 밝히기에는 적절한 시기는 아니다”면서 “무소속 인사도 군정을 잘 이끌 수 있다”고 당분간 무소속으로 잔류할 것임을 내비쳤다. <철>


##정계개편의 역사

정계개편을 부르는 여소야대
87년이후 분당, 합당, 선거연합 정계개편 신호탄

한나라당은 169석으로 여대야소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친박 성향의 의원들이 50여명에 이른다는 점에서 신여소야대 정국이다. 여소야대 정국은 예외없이 분당과 합당, 선거연합과 같은 정계개편을 불렀다. 특히 1987년 이후 한국의 정치지형은 여소야대였다. 87년 대선에서 승리한 ‘노태우의 민정당’은 88년 총선에서 125석을 얻어 과반 확보에 실팼지만 90년 YS, JP과 3당 합당으로 218석의 거대 여당(민자당)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민자당은 92년 총선에서 과반에 1석 모자라는 149석에 그쳤고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해 치른 96년 총선에서 139석에 그쳐 다시 여소야대로 회귀했다. 97년 DJP 연합은 대선 판도를 바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2년 후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133석으로 제1당이 됐고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은 115석, 공동정권을 파기한 자민련은 19석을 얻는 데 그쳤다. 노무현 정권 탄생 후 집권 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 때 탄핵 바람으로 152석의 의석을 확보했으나 2005년 4·30재보선에서 참패, 146석으로 주저앉았다. 이에 7월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지지세력으로부터 거센 비판에 직면 하면서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했다. 신여소야대 정국에서 오는 7월 친박, 친이가 맞붙을 전당대회, 그리고 개헌 카드로 이어지는 여권발 정계개편은 대한민국 정치를 다시 한번 요동치게 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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