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독제독(以毒制毒) “독으로써 독을 제거한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군사정권을 만든 장본인이다. 또한 막대한 비자금 조성으로 인해 문민 정부하에선 사이좋게(?) 감옥까지 함께 갔다왔다. 그런데 5공 정권을 탄생시킨 주역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적이 있다.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6공 탄생 이후 형식적이던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맡아 국정에 개입할려고 시도하면서부터다.

당연히 노태우 정권에서 달가울리 없는 사안이다. 이에 노 정권은 전두환의 형 전기환, 동생 전경환 등을 비리 및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시키면서 압박한다. 일본에 머물렀던 전 전 대통령은 국내에 바로 귀국 모든 공직과 권한을 포기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전두환·이순자 두 부부를 백담사에 2년간 유폐시키고 임기말에서야 사면을 해줬다. 문제는 전두환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두 형제의 비리를 어떻게 노 정권이 빼낼 수 있었느냐는 의문이다. 여기에 당시 6공의 황태자로 알려진 박철언 전 장관의 역할론이 나온다. 박 전 장관은 정경환씨의 최측근이자 ‘꼬봉’ 역할을 했던 김용균 전 체육청소년장관을 포섭한다.

경남 합천 출신의 김 전 장관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국회 사무처장,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을 지낸 인물이다. 또한 정씨가 새마을본부 중앙회장을 맡아서 할 당시 김 전 장관이 회계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박 전 장관은 잘 알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전씨는 70여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7년에 20여억원의 벌금을 받게 된다.

YS 정권 시절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했던 박 전 장관은 김 전 장관과 서울대 법대 동기로 당시 친분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박철언씨가 장관 시절 김용균씨는 차관으로 함께 지냈다. 또한 박 전 장관이 1995년 자민련 부총재로 있을 당시 김 전 차관이 자민련으로 입당하는 등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박 전 장관의 친분으로 김 전 차관은 승승장구한 셈이고 주군이었던 전경환씨는 최측근으로 인해 이독제독을 당한 셈이다.


박철언·전경환 측근 김용균 포섭 활용

하지만 박 전 장관 역시 김 전 차관을 활용한 것처럼 그가 영입한 인사로부터 배신을 당하면서 전두환, 전경환씨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는 점에서 역사는 돌고 돈다.

6공 노태우 정권의 황태자 박 전 장관은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검사 강재섭을 비서실에 발탁한다. 그때 강재섭의 나이 39세. 나아가 박 전 장관은 강재섭 전 의원을 민정당 전국구로 밀어넣는 등 후견인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박 전 장관은 강 전 의원의 경복고, 서울대 법대, 그리고 사시 선배다. 게다가 박 전 장관이 경북 성주이고 강 전 의원이 의성으로 같은 TK 사단이다. 이런 연은 결국 박 전 장관이 노태우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위해 만든 월계수 모임에 수장으로 강 전 의원을 추대하면서 둘 사이의 친분은 선후배 이상의 끈끈한 인연을 발휘한다.

하지만 둘의 사이는 1992년 박 전 장관이 3당 통합 당시 YS가 약속한 내각제 합의를 파기하면서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는 곧 반YS연대에 선봉에 서게된다. 대선 직전인 1992년 10월 반YS 인사였던 박철언, 김용환, 김복동 의원이 동반 탈당을 하면서 YS의 대권 프로그램은 위기를 맞이했다. 박 전 장관의 한 측근은 “당시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 회장과 강영훈 총리도 함께 해 92년 대선을 위한 당을 마련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약속했던 강재섭 전 의원이 당에 잔류하면서 유야무야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박 전 장관은 이미 1987년 중반 월계수회를 통해 전국적으로 200만명의 사조직을 갖고 있었고 민자당내 월계수 회원들만 탈당해도 됐는데 강 전 의원의 배신으로 물거품이 됐다”고 덧붙였다.


YS, 박철언 측근 강재섭 포섭해 정치 보복

하지만 박 전 장관으로 인해 승승장구하던 강재섭 전 의원은 잔류를 선언한다. 이로인해 YS는 92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고 그 대가로 강 전 의원은 총재 비서실장에 올랐다.

강 전 의원이 이대로 끝났다면 자신의 배신의 역사에 오점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 전 의원은 YS 정권의 정치보복 특히 반YS연대에 앞장섰던 박 전 장관에 대해 정치보복성 수사에 협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것이 바로 YS 정권 초기 슬롯머신 사건이다. 이로 인해 박 전 장관은 500여일간 옥살이를 하게 된다. 배후로 강 전 의원이 있었다는 게 야사로 전해온다. 물론 출세를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후 YS는 5·18특별법을 만들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냈다.

이독제독을 한 박 전 장관이다. 전두환·전경환 두 형제를 최측근을 통해 각각 백담사에 유폐시키고 감옥에 보냈다. 하지만 박 전 장관 역시 그의 최측근이었던 강 전 의원의 배신으로 인해 1992년 대선에서 민정계가 무너지는 계기가 됐고 이후에는 본인뿐만 아니라 주군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옥살이를 하게 됐다. 이독제독으로 정치 보복을 했지만 그 역시 같은 똑같은 방식으로 정치보복을 당한 셈이다.

하지만 박 전 장관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런 일에 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 전 의원의 ‘당잔류’에 따른 민정계의 몰락에 대해선 다소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당시 강재섭의 심경을 이해한다.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YS이고 그의 측근인 김윤환 등이 박태준, 강영훈 총리 등을 찾아 YS 지지를 회유·협박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며 “그런 살벌한 때에 강재섭 역시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서슬이 시퍼렀던 전두환·노태우 두 정권에서 권력을 향유한 박 전 장관이지만 자신의 측근 관리 실패로 정치적 운명이 기울기 시작한 셈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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