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민심 모르쇠, 의도적 여론조작 ‘의혹’


“차라리 ‘사이비 점쟁이’가 낫겠다.”

6·2 지방선거 개표 결과가 나온 직후 여당 후보 진영에서 터져 나온 탄식이다. 특히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광역단체장에서 여야 후보가 초박빙 승부를 벌이거나 결과가 뒤집힌 것에 여권 내부는 충격을 넘어 ‘패닉’에 빠졌다. 당초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15% 포인트 안팎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일 것으로 점쳐졌으며 인천에서도,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 직전 실시된 조사에서 안상수 후보가 12% 포인트로 여유 있게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전통적으로 여론조사가 민심을 읽지 못하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해도 너무 한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상당수 여권 후보들이 1회 조사비용만 최소 수백 만 원에서 수천 만 원을 웃도는 ‘희망고문’에 당했다는 얘기다.

출마자들이 여론조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각 당 공천심사위에 제출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공천당락을 좌우하면서 이른바 ‘여론조사 필승론’이 대두됐다. 후보로 확정된 이후에도 여론조사는 선거 전략을 구상하는 기준점이 된다. 어떤 부류의 유권자들이 절대 지지층인지, 표심을 얻기 위한 필살 공약은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까닭이다.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선거가 다가올수록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후보자들의 궁금증은 커지기 마련”이라며 “선거 전략을 짜기 위해 후보들이 직접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엉터리 여론조사 배경은

문제는 엄청난 돈과 인력을 들여 실시하는 여론조사가 민심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시작부터 헛다리를 짚은 탓에 후보자들과 유권자들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결과가 틀리는 이유로 크게 표본추출과 조사발표 시기, 응답자의 ‘거짓말’ 등을 꼽는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전화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여당 성향이 강한 고령자들이 대부분”이라며 “젊은 층은 집전화로 걸려오는 여론조사에 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은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여론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15년 만에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는 특히 젊은층, 부동층의 표심이 당락을 갈랐다. 처음부터 이들을 조사 표본에 넣지 못한 여론조사가 제대로 된 결과를 도출했을리 만무하다.

선거 6일 전부터 투표가 끝날 때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할 수 없는 공직선거법 108조도 헛다리 여론조사를 부르는 복병으로 꼽힌다. 선거 직전 특정 세력에 대한 표심 집결이나 민감한 이슈가 터질 경우 이전 여론조사에는 이런 변수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응답자들의 ‘거짓말’이 엉뚱한 여론조사 결과를 부추긴다. 이런 성향은 출구조사에서도 종종 드러나는데 응답자가 실제 찍은 후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표를 줬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다. 흔히 야당 성향 유권자들이 여당 지지자들에 비해 자신의 표심을 숨긴다. 일례로 여당 지지층이 많은 부산에서 민주당 김정길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보다 실제 10% 가량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의도적 여론조작 시도 논란

계속된 여론조사 결과 오류에 일각에서는 조작설과 음모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일례로 유명 여론조사업체인 A기관은 모 일간지의 의뢰를 받아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여당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견했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대표이사 B씨가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 출신인 것과 정권 실세와 죽마고우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 조작’ 의혹에 휘말린 것이다.

지난 2월 울산에서는 현직 구청장이 지역일간지에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돈을 건네는 등 여론조작 시도가 발각되기도 했다. 선거를 앞두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지난 2월 울산지역 현직 구청장 3명과 시·구의원 4명이 지역 일간지의 여론조사를 앞두고 각각 500만 원씩을 건넸다 덜미가 잡혔다. 울산지방법원은 이들에게 각각 공직선거법상 벌금 최고형인 500만 원을 선고했다. 여론조사에 지나치게 ‘올인’한 출마자들의 ‘나쁜 예’였다.

전통적으로 여당의 텃밭인 경남 거창, 함양군에서도 지역 언론사별 군수 선호도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조사기관에 따라 최고 23% 포인트까지 격차가 벌어진 탓이다. 부산, 안양에서도 결과의 신빙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일각에서는 여론조사와 결과 발표가 ‘밴드왜건’(Band Wagon) 또는 ‘언더도그’(Under Dog) 효과를 불러와 여론조작을 야기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밴드왜건 효과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의 의사결정을 말하며 선거에서 강세 후보에게 표가 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반면 언더도그 효과는 약세 후보가 동정을 받아 지지도가 상승하는 것을 뜻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승리를 거둔 배경에 이 같은 효과가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pot.co.kr


#똑 소리 나는 ‘출구조사’ 체면 살렸다

중구난방이었던 여론조사와 달리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는 이변이 없었다. 특히 경기도지사 출구조사 예측은 99.9%의 정확도를 보이며 선전했다.

조사결과 김문수 한나라당 후보는 52.1%, 유시민 민주당 후보는 47.9%를 얻을 것으로 예측됐다. 개표결과는 출구조사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출구조사 결과 경합지라고 밝힌 서울, 경남, 충북, 충남, 경남 지역의 경우 1,2위 순위가 그대로 모두 적중해 상당한 정확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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