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행 끝, 7월 MB와 유혈충돌 초읽기


지방선거 후폭풍이 한나라당을 집어삼켰다. 6·2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정몽준 대표와 최고위원 전원이 물러나면서 당이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로 전환됐다. 비대위가 가동된 것은 2003년 대선자금 수사와 직결된 일명 ‘차떼기 파문’ 이후 7년 만이다. MB정권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시 당대표로 천막당사라는 승부수를 띄워 한나라당을 구한 만큼 이번에도 ‘여왕의 묘수’가 빛을 발할 것이란 기대심리 탓이다.

여당 내에서는 국정쇄신론이 탄력을 받으며 벌써부터 친이·친박 간 전운이 감돌고 있다. 당장 이달 말로 예정된 차기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설 경우 한나라당 내 역학구도가 완전히 뒤집힐 가능성이 적지 않다.

친박의 역습이 시작됐다. 지난 3일 정몽준 대표와 정병국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면서 친이 주류를 향한 친박의 날 선 비판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여당발(發) 국정쇄신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얘기다.


‘달성군수 사태’ 朴, 속내 따로 있나,

이날 친박계 구상찬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사업’ 등 정권 핵심 사업에 대해 대놓고 전면 백지화를 주장했다.

구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사업’과 같은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사업을 전면 중지 또는 백지화해야 한다”며 “청와대 참모진 교체와 전면 개각”을 요구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 주류를 향해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상당수 언론은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전폭적으로 지원한 달성군수 후보가 낙선한 것에 그의 영향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반증이라고 분석했다.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평도 상당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철저히 지역구 내에서만 움직인 박 전 대표의 행보가 그의 역할론에 다시 불을 붙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 전 대표의 지지를 얻은 이석원 후보는 김문오 당선자에게 3% 차로 졌다.

그러나 이 후보의 지지율이 당초 20% 가량이나 뒤져 있었던 것을 감안했을 때 불과 13일 만에 격차를 3% 차로 급격히 줄인 것은 ‘박근혜 파워’가 여전하다는 반증이다. 여당 참패 속에 박 전 대표가 ‘조용한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도 이 때문이다.

여당 지도부는 이번 기회에 전국 차원의 선거 지원에서 빠진 박 전 대표의 입지를 줄이고 친박계를 제압하려 했다. 선거 전 친이계 내부에서 “이기면 박근혜 없이도 당을 이끌 수 있다는 여론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말도 돌았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선거 참패로 정몽준 대표와 정병국, 정두언 의원 등 친이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했고 야권 공세에 힘을 실어주게 된 것이다. 박 전 대표를 배제한 선거 결과가 ‘참패’라는 여론에 밀려 ‘박근혜 대세론’에 무게가 더해지고 있다.


친박 허태열·홍사덕 등 물망 올라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빛을 발할 시기는 이달 말로 예정된 전당대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 사퇴 이후 비대위 체제로 전환된 당내 살림은 김무성 원내대표가 맡게 됐지만 고작 ‘30일 천하’에 불과하다.

조해진 대변인은 “정 대표가 비대위 설치 문제를 김 원내대표에게 위임했다”면서 “상식적으로 김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제외한 중진 의원 5명 정도로 구성될 비대위는 차기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구성될 때까지 당을 운영하게 된다.

문제는 전당대회가 열리는 시점이다. 현재까지는 이달 말로 개최시기가 잠정 결정됐지만 일부 친이, 친이재오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7·28 재보선 이후인 8월로 개최를 미뤄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갈등이 고조되면 재보선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친이재오계 측은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재보선 당선과 전대 출마를 염두에 두고 친박계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 위원장 본인은 “권익위 일을 하기도 바쁘다”며 당권 도전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상황을 예단하긴 이르다.

반면 친박계를 비롯해 당 안팎에서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서라도 예정대로 6월 말 전당대회를 여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현재까지 당권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인사는 주류 측 홍준표, 안상수 전 원내대표, 친박계에서는 허태열 최고위원, 홍사덕 의원 정도가 거론되고 있다.

중립으로 분류되는 남경필, 권영세 의원 등도 당권 도전 가능성이 점쳐지며 지난달 30일 임기를 마친 김형오 전 국회의장도 유력 주자로 등장했다. 다만 박근혜 전 대표는 직접 출마보다는 자신의 직계를 세워 대리전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당내 주된 여론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당이 초상집 분위기라 곧바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1~2주 정도 지나 충격이 잦아들면 박 전 대표가 활발한 대외 활동에 나서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pot.co.kr


“김문수, 박근혜 잡을 대항마”

김문수 경기지사 당선자가 차기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겨룰 대항마로 급부상했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지난 4일 경기도지사 재선에 성공한 김문수 지사에 대해 “친이계 직계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어 박근혜 전 대표에 겨룰 수 있는 대항마로 급부상했다”고 평가했다.

고 박사는 이날 SBS라디오에 출연해 “지방선거 최대 승리를 이뤄 김문수의 힘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이같이 말했다.

반면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서는 “후보로서 굉장히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줬다”며 “이번 지방선거로 정치활동을 마감하는 게 좋다”고 꼬집어 대조를 이뤘다. 그는 또 경기지사 선거에 패배한 유시민 전 장관에 대해서는 “낙선했지만 가능성과 위력을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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