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포상금 명목’ 후원금으로 직원 몸보신?!

베이징올림픽 당시 연예인 응원단 응원모습.

마케팅 수익 중 3억6000여 만원 빼내 ‘직원 잔치’

한국 체육계의 ‘맏형’ 격인 대한체육회가 지난달 20일 열린 국정감사 현장에서 뭇매를 맞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화려한 도심 퍼레이드를 기획했던 기세와는 딴판이다. 올림픽 당시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마케팅비 일부를 체육회 직원들의 쌈짓돈으로 썼다는 의혹과 함께 강병규, 현영 등 인기 연예인들이 대표팀 응원을 펼친다는 명목 아래 2억원이 넘는 국민 혈세를 ‘호화판 외유’로 낭비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수장인 이연택 회장에게는 “이명박 대통령을 찬양하는 모양새가 낯 뜨거울 정도”라며 그의 정치적 색깔을 꼬집는 일갈도 터져 나왔다. 국감 과정에서 진땀을 뺀 대한체육회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수십억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체육회의 회계가 지나치게 허술하다는 점이었다. 또 선수와 지도자에게 돌아가야 할 포상금 가운데 상당액이 체육회 직원들의 보너스로 돌아간 사실도 드러났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대한체육회가 대기업으로부터 마케팅비 명목으로 받은 수익 가운데 일부를 전용한 의혹이 있다며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요구했다. 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출한 지출 내역을 분석한 결과 1억원이 넘는 돈이 증발했다는 것이다.


수십억원 수익은 이 회장 쌈짓돈?

최 의원에 따르면 체육회는 당초 삼성전자·SKT·현대자동차·맥도날드 등 4개 기업으로부터 베이징 코리아 하우스 공식후원과 광고 노출 등의 대가로 25억원을 받았다. 그리고 이 가운데 16억 600만원을 대표선수 경려 및 포상금으로 썼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화체육부 국제체육과가 제출한 포상금 지급 현황에 따르면 체육회는 모두 46억9800만원을 지출했고 이 가운데 32억2200만원은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했다. 체육회가 지출한 포상금은 정부지원금을 뺀 차액 14억7600만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체육회가 당초 제출한 포상금 지출 내역에서 무려 1억3000만원이 증발한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최 의원 측이 이 같은 의문을 제기하자 적극 해명에 나섰다. 사라진 1억3000여만원을 포함해 마케팅 수입 중 3억6600만원을 ‘올림픽대회 지원요원 격려금’으로 썼다고 밝힌 것.

체육회 측은 “이연택 회장의 지시로 54개 소속 단체 직원, 시·도체육회지회 직원, 태릉용역개발 소속 직원 등 모두 925명에게 직급과 관계없이 1인당 30만원씩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당초 모든 포상금이 선수와 지도자에게 돌아간 것처럼 내역을 작성해 공개했지만 사실은 적잖은 금액이 대한체육회 ‘직원 잔치’에 쓰였다는 얘기다.

이해할 수 없는 구멍은 또 있었다. 국내 굴지의 기업과 10억원에 달하는 계약을 체결하고도 체육회는 흔한 계약서 한 장 작성하지 않은 것이다. 명목상에 존재하지 않는 수익금은 용처가 불분명한 ‘괴자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 의원에 따르면 대한체육회는 삼성전자와 마케팅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액은 10억원으로 지난 9월 12일 모두 입금됐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대한체육회 사이에 존재하는 계약서는 찾을 길이 없다. SKT와 현대자동차, 맥도널드 등과는 모두 서면 계약서를 작성해 국감을 앞두고 사본을 보내왔지만 유독 삼성전자만 빠진 것이다.

이에 대해 체육회는 “삼성전자와는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고 후원금을 받았다. 해당회사는 그동안 체육회를 계속 도와왔고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공식후원사다. 이런 이유로 따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대한체육회와 관련된 국감에서 가장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것은 야구선수 출신 방송인 강병규 BU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주축이 돼 조직된 ‘연예인 올림픽 응원단’의 혈세 낭비 논란이다. 최 의원에 따르면 이들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직권으로 2억여원을 지원받았다.


‘연예인 응원단’ 현지 가서 뭐했나?

그러나 이들은 베이징시내 5성급 호텔에 머물며 숙박비에만 지원금의 절반이 넘는 1억1603만원을 써버렸다. 더구나 경기 입장권조차 구하지 못해 일부 경기는 음식점에서 TV를 보며 응원하고 지원금으로 호텔 스파까지 즐겨 ‘혈세 낭비’ 논란에 휩싸였다.

최 의원에 따르면 강씨를 단장으로 한 ‘연예인 응원단’은 양궁, 핸드볼, 유도, 농구, 야구, 하키, 레슬링 등의 종목을 직접 관전하며 응원전을 펼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직접 응원한 경기는 모든 종목을 통틀어 단 8경기뿐이었다.

유도와 수영 등 인기 종목은 입장권을 구하지 못해 식당에서 TV 중계를 보며 응원했고 야구와 농구 경기는 810만원의 웃돈을 주고 ‘암표’를 구해 들어가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이들은 또 연예인 신분이라는 것을 의식해 1인당 수행인(매니저·코디)을 대동했고 이들 수행원의 현지 체류 비용도 모두 문광부가 지원했다.

특히 채연, 에바포피엘, 김용만, 강병규 등은 각각 2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갔고 단장인 강씨는 2명의 수행원 외에 4명의 스탭을 더 동원했다. 이밖에 BU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당초 응원단에 속했던 탤런트 조여정은 베이징으로 출발했다 개인 사정으로 급히 귀국했지만 동행한 수행인은 그대로 중국에 체류하는 등 ‘연예인 응원단’의 운영은 비정상적이었다.

‘연예인 응원단’에 이름을 올린 연예인은 강병규, 김나영, 임성훈, 미나, 조여정, 최성조, 진보라, 김용만, 윤정수, 왕배, SIC, 채연, 에바포피엘, 주영훈, 이윤미, 박준형, 김지혜, 남승민, 한성주, 안선영, 현영 등 모두 21명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 일반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음에도 강씨를 비롯한 당사자들은 변명으로 일관해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한 소속사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린 단장인 강병규씨가 초청해서 갔을 뿐이다. 국감 내용에 대해 대답할 위치가 아니다”며 입을 다물었다. 일부 관계자들은 “나라를 위해 출연료도 받지 않고 숙식만 제공받았을 뿐”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반응은 불붙은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네티즌들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하러 간 사람들이 출연료 운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해당 연예인의 미니홈피는 이 같은 행태를 꼬집는 비판글로 폐쇄되기도 했다.


부상 선수에 목발 짚고 참석 종용?

이번 국감에서는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이 올림픽 성과를 정권 홍보에 활용하는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정치적 공세도 이어졌다. 최 의원은 “이연택 회장의 ‘이비어천가(李飛御天歌)’는 참으로 낯 뜨거웠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지난 8월 25일 선수단 입국식을 보다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 회장은 국민성원을 먼저 언급했어야할 자리에서 ‘대통령님’이란 단어를 넣고 ‘촛불시위’를 언급하는 등 정치적인 수사들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또 “다음날 청와대 초청행사 때도 유인촌 장관이 문대성 IOC 선수위원에게 ‘대통령이 만들어 주신거야’라고 말한 것도 모자라 이 회장은 ‘대통령님’을 연발했다”고 꼬집었다.

올림픽 선수단 환영행사와 퍼레이드도 문제가 됐다. 대회 중 부상을 입어 당장 병원 치료가 필요한 선수들을 환영행사에 참석시키기 위해 체육회 측이 ‘무리수’를 뒀다는 얘기다.

최 의원은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황경선 선수는 왼쪽 무릎인대를 다쳐 바로 병원에 옮겨졌어야 했는데 힘겹게 퍼레이드에 참석했고 다음날 청와대 만찬에도 자리를 지켰다”며 누구의 지시로 결정된 것이냐고 따졌다.

최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왼손 골절상을 입은 복싱의 김정주와 갈비뼈가 부러진 유도의 왕기춘 등은 기자회견부터 퍼레이드, 오찬 등 모든 행사에 참석했다. 왼발목 인대를 다친 역도선수 이배영도 마찬가지였다.

최 의원은 또 도심 퍼레이드 행사 자체가 치밀하게 기획된 정권을 향한 아부성 행사에 불과했다며 후원사와 주관 방송사 선정이 올림픽 이전부터 결정됐었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이 회장이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7월 31일 STX그룹 강덕수 회장을 만나 ‘올림픽 성적이 좋으면 선수단 환영 대축제를 할 예정인데 이 행사를 후원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STX는 이 같은 요청을 받은 지 하루 만에 지원계획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관방송사는 중국 현지에서 이 회장과 자주 만남을 가졌던 KBS 스포츠기획사업팀 박모(국장급)씨가 주선했다는 게 최 의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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