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가 재판과정에서 또 한번 바뀌게 돼 주목을 끌고 있다. 3월 7일로 예정된 항소심을 심리중인 서울고법 형사5부의 이홍권 부장판사(51·사법연수원 9기)가 13일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재판일정에 또 한번 차질이 예상되는 것이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중요사건 항소심을 앞두고 담당 판사가 돌연 사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간 갖은 우여곡절을 겪어온 에버랜드 사건의 사공이 다시 바뀌는 것을 두고 삼성 영입설 등 루머가 난무하는 가운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담당 판사 사직, 항소심 차질 불가피

이홍권 부장판사의 사직으로 에버랜드 사건 공판은 또 한번 난항을 겪게 됐다. 통상적으로 볼때 새로운 재판장이 부임해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재판 일정을 다시 잡기까지는 최소 2~3개월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사건과 관련, 재판장이 변경되고 수차례 공판 연기가 반복된 전례를 의식한 듯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공’이 또 다시 바뀌는 것에 대한 외부시선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눈치다. 이 사건은 재판부터 1심 판결까지 ‘삼성 봐주기 수사’ 및 ‘눈치보기’의혹에 끊임없이 시달렸던 터라 더욱 그러하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1심선고는 사건에 대한 시민단체의 고발이 있은지 5년 3개월, 검찰에 의해 기소된지 1년 10개월만에 내려진 것으로, ‘삼성 건드리기’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특히 이번 이 판사의 사임은 1심에서 전현직 사장에 대한 유죄판결 후 검찰이 오너일가에까지 수사망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터라, 그 배경을 둘러싸고 미묘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기소 1년 10개월만에 1심서 유죄

당시 1심 재판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형사 25부(당시 이현승 부장판사)는 지난해 2월 모든 변론을 마친 상태에서 두 차례나 선고를 연기, 삼성 고위급 인사를 상대로 한 판결에 대한 부담을 느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재판부가 사안의 민감함을 지나치게 의식, 판결에 대한 부담을 다음 재판부로 떠넘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좀 더 자세한 자료 검토가 필요하다’는 재판부의 의견에 대해 참여연대는 “1년 2개월의 심리기간이 부족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의혹을 나타내기도 했다.이 와중에 같은 달 재판장이 교체되고 새로 부임한 이혜광 부장판사는 변론을 재개, 6번의 재판을 더 거친 후인 지난해 10월에야 허 전사장과 박 사장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검찰 기소 1년 10개월 만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계속했다. 곽노현 방통대 교수 등은 2000년 6월 이건희 삼성 회장과 주주, 감사 등 3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했으나 검찰은 주임검사가 6번이나 바뀔 동안 수사를 미뤄오다가 3년 5개월 만인 2003년 12월 허씨와 박씨 두 사람만 기소했다. 이는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에 이뤄진 일이라는 점에서 강한 의혹을 자아냈다. 에버랜드 항소심이 유보된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이 판사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항소심을 앞두고 사임한 배경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재계 안팎에서는 이 판사를 끌어들이기 위한 삼성측의 물밑작전 및 삼성영입 루머도 나돌고 있다. 이는 그간 삼성이 추진해온 법조인 영입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2000년 이후 삼성이 영입한 퇴직 판검사만도 무려 15명으로, 법조계 안팎에서는 잘나가는 판검사들의 종착지는 삼성이라는 말도 나돌았던 것이 사실.2004년 7월 구조본부 법무팀을 법무실로 승격한 삼성은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출신의 이종왕 변호사를 사장급 실장으로 영입한데 이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출신인 서우정 검사를 영입, 로펌수준의 막강 진용을 구축했다.

지난해 2월 정기인사 때 퇴직, 삼성전자로 이직한 김상균, 안덕호, 성열우씨 역시 삼성 법무실의 파워를 구축하는데 일조했다는 후문이다.한편 작년 10월 민노당 노회찬 의원은 법조인들이 퇴직전 3년간 담당했던 사건과 관련된 기업체에는 퇴직 후 2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법률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노의원은 “삼성에 취업한 검사들 중에는 과거 삼성 관련 주요 사건을 맡은 경우가 상당수”라고 지적했다. “이들을 그룹차원의 핵심 소송에 변호인으로 활용한 삼성은, 이들이 현직에서 취득한 수사기밀이나 정보를 이용해 자신들을 방어하게끔 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같은 사례로 노 의원은 지난 2002년 대검 검사(파견 광주지검 부부장 검사)로 있으면서 김대중 전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씨 비리 수사팀에 속해 있었던 김모 전검사(현 삼성 구조본부 법률팀 상무)를 꼽았다.

당시 수사팀은 홍업씨가 삼성그룹으로부터 5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대가성 없음’을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또 지난 2003년 서울지검 특수1부와 3부 부장검사로 재직한 바 있던 서모 삼성법무실장 역시 서울지검 재직 당시 특수2부에서 이재용씨와 관련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사건을 수사중이었다고 꼬집었다. 노 의원은 이어 “5년 넘게 끌다가 1심 선고가 난 삼성 에버랜드 사건 재판의 담당 변호인이 바로 삼성으로 영입된 이모, 김모 전검사였다”며 “삼성은 과거에 자신들을 수사했던 특수부 출신 검사를 영입, 그 사람들을 보호막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이러한 배경하에서 나오고 있는 삼성영입 루머에 대해 정작 이 판사 본인은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에버랜드건의 그간 재판 전례로 볼때 또 한번 재판장이 바뀌게 된 건을 바라보는 의혹의 시선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 이홍권 판사 “삼성 영입설 근거없다”

삼성 에버랜드 항소심을 담당할 예정이던 형사5부 이홍권 부장판사는 19일 전화통화에서 ‘돌연사직’이 아님을 강조했다. 특히 이 판사는 항간에 나돌고 있는 삼성 유입설에 대해 단호하게 부인했다.

- 13일 사직서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 다음 달 정기인사를 앞두고 대법원측은 법관들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았다. 나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사임하게 됐다.

- 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 항소심을 앞두고 돌연 사직한게 의외다.
▲ ‘돌연 사직’이라 하면 곤란하다. 갑작스런 사직이 아니다. 정기인사를 앞두고 며칠간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판사신분이기 때문에 굳이 떠들썩하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 에버랜드건 후임자는 결정됐나.
▲ 2월 중순에나 결정될 것이다.

- 혹시 삼성 에버랜드 공판선고에 대한 부담때문은 아닌가.
▲ 에버랜드 사건과는 무관하다. 이미 1심이 진행된 상태에서 부담을 느낄 이유가 없다.

- 진로는 정해졌나. 그간 삼성의 법조인 영입전례로 볼 때 일각에서는 이판사도 조만간 삼성에 유입될거라는 루머가 있는데.
▲ 정해진 바 없다. 로펌으로 간다는 것도 추측보도다. 삼성으로 갈 생각도 해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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