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준이에요, 에릭으로 대하지 마요”

지난 1월 29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0-201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올스타전 1년차팀과 2년차팀의 경기에 앞서 귀화선수인 문태영, 이승준, 전태풍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이승준(33·삼성썬더스)선수가 플레이오프를 잔뜩 벼르고 있다. 이승준은 지난달 농구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항명 파동의 상처를 플레이오프에서 활약으로 씻겠다는 각오다.

지난달 3일 울산 모비스전 경기 도중 이승준은 코칭스태프에게 개인적인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에 삼성은 그에게 무제한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 결국 그는 3일 뒤 안준호 삼성 감독에게 사과를 했고 다음날 경기를 뛸 수 있었다.

각 구단마다 팀 내부 문제로 인해 출전을 못하는 선수는 부지기다. 특히 이승준과 같은 귀화혼혈선수들은 팀 적응을 위해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항명사태는 이런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승준은 한국에서 농구를 하기 위해 귀화한 혼혈선수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해 귀화시험을 통과, 삼성에 입단했다.


귀화선수 이중 잣대에 상처

하지만 이승준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용병과 국내 선수들의 중간에 서 있는 느낌이다. 한국인이라지만 잣대는 용병에 맞춰있으니 위치도 애매하다.

사고방식은 용병과 다를 게 없지만, 국내선수들과 똑같은 룰을 지키면서 행동해야 하니 어렵다. 이동준을 비롯한 이승준, 전태풍, 문태영, 문태종, 등 귀화혼혈선수들이 느끼는 부분이다.

일반 드래프트에 참가해 발탁된 이동준은 논외 대상이지만 귀화혼혈 드래프트를 통해 선택된 선두들은 3년 마다 팀을 옮겨야해 FA 선수가 되는 것은 그들에게는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또한 파울 콜에 대해서도 귀화혼혈선수들에게 유독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실제 올 시즌 테크니컬 파울 개수에 있어 대부분의 귀화선수들이 상위권에 올라 있다.

한국프로농구(이하 KBL) 제도적 장치도 국내선수가 아닌 용병선수 기준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완전한’ 한국인이다. 국내선수인데 외국선수 제도 적용을 받고 있는 부분도 역차별적인 대우라는 여지가 남아있다.

2009년 KBL은 귀화혼혈선수 제도를 도입했다. 국제경쟁력 확보와 용병 출전이 2명에서 1명으로 축소되면서 떨어지는 흥미를 되살리기 위한 제도였다. 그리고 프로농구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개인플레이는 용납 못해

KBL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귀환혼혈선수들의 용병선수 같은 자기 위주 플레이도 논란이다.

이승준의 항명 파동에는 이런 점도 간접적으로나마 연관돼있다. 안준호 삼성 감독은 “(이동준이) 대부분의 용병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위주의 플레이를 해달라는 뜻을 비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귀화혼혈선수들은 한국식 세부적인 테크닉과 팀 디펜스 이해도가 떨어지고, 자신의 성향과 잘 맞지 않는 골밑공격에 집중해야하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게다가 상대의 집중견제도 이뤄진다. 그러다보니 불만이 표출하게 된다.

특히 이승준은 공격성이 짙은 선수다. 공·수비를 막론하고 화려한 플레이를 하고 싶어 하는 선수다. 동생 이동준(31·대구오리온스)도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형은 팀 내에서 궂은일을 혼자 도맡고 있다. 리바운드도 하면서 외국 선수들까지 막고, 팀을 위해서 희생을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형도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여 최선을 다한다”며 “하지만 수비는 물론 공격에서도 기여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감독의 지시한 작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개인 플레이를 하는 경우 코치스태프들과의 갈등이 커진다. 설령 경기가 본인의 뜻대로 풀리지 않고, 감독의 작전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걸러지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안 감독은 “코트에선 최선을 다해야 하고, 동료를 위한 희생적인 플레이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욕심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 만큼 조직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는 것이 국내 프로농구이다.


의사소통의 중요성

무엇보다도 문화적 차이가 가장 크다. 일단 언어 차이에 따른 감독과의 자유로운 소통이 쉽지 않고, 숙소생활의 규율적응문제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서로 오해가 생기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귀화선수들은 경기와 사생활을 구분하려는 성향이 뚜렷하다. 하지만 여전히 프로구단은 숙소생활을 한다. 이런 사소한 차이들에 의한 갈등과 경기 중 부조화가 겹쳐진다.

쌍방향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승준은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이 귀화혼혈선수라 아직 우리말이 서투르고, 의사표현에 실수가 있었다며 항명 파문에 대해 ‘간접 사과’를 했다. 자신도 “한국어를 100% 이해하고 구사할 수 없어 답답하다”며 “오해가 있었고 지금 반성하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삼성은 귀화시험에 붙어 한국인이 된 이승준에게 따로 통역을 붙여주지 않고 있다. 시즌 전 한국어 교육을 받게 했고, 시즌 중엔 선수 스스로 말을 배우는 노력을 더 하라고 주문했다. 이승준은 우리말을 잘 알아듣는 편이긴 해도 표현력은 떨어진다.

사실 이승준의 의사소통에서 불거진 문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2008시즌 이승준이 아닌 미국명 ‘에릭 산드린’이란 이름으로 모비스에서 대체 외국선수로 뛰었을 당시, 이승준은 ‘철심 파문’에 휘말리며 졸지에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힌 경험이 있다. 부상을 숨기고 구단에 입단했다는 것. 결국 철심 파문은 구단과 선수 간 의사소통에 있어서 오해로 드러났지만 그 파장은 오래갔다.

안 감독도 이승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음을 제일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승준은 아직 외국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튀는 행동을 좋아한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대표하는 경기에도 참여를 한 선수다. 앞으로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해야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이승준 사건은 해결됐지만 귀화혼혈선수에 관한 문제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귀화혼혈선수 문제에 접근하려는 KBL 및 구단, 그리고 귀화혼혈 선수 스스로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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