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날레 뒤에 가려진 ‘운영 소홀’, 근성 부족’

한국육상대표팀 선수들이 31일 오전 대구 동구 율하동 선수촌 인근 박주영축구장에서 훈련을 갖고 있다. [뉴시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관중몰이와 흥행 성과에도 불구하고 반쪽짜리 대회가 됐다. 대회운영 미숙과 한국 선수들의 미비한 존재감 때문이다. 이번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역대 최대 규모와 시설, 대구 시민들의 지원으로 일각의 실패 우려를 깨트렸다. 하지만 대회운영과 한국선수단의 수준은 거론하기 민망할 정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중들은 “육상 불모지에서 대회를 개최한 것 자체가 대단하다”며 옹호하고 있지만 시설 수준에 걸맞은 운영과 목표 성적의 달성 또한 중요한 과제였다. 폐막 후 몇 가지 문제를 던진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짚어봤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지난 4일 남자 400m 계주를 끝으로 9일간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하지만 개최국 한국은 단 1개의 메달도 따내지 못한 채 들러리가 되는 아쉬움을 겪었다.

대회를 앞두고 목표했던 ‘10-10’(10개 종목 10위권 진입)프로젝트는 단 2명만이 달성하는데 그쳤는데 2명 모두 경보 선수들이었다. 몇 개 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지만 결선 진출 실패와 세계 수준과의 큰 격차 때문에 빛이 바랬다.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굴욕을 만회하겠다”는 선수단의 발표는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비록 남자경보의 김현섭(20㎞), 박칠성(50㎞)선수가 각각 6위와 7위를 기록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1개의 메달도 획득하지 못한 3번째 개최국이 됐다.

먼저 기대를 모았던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최윤희(25)는 지난 6월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4m40)과 타이를 이루는데 만족했다. 남자 100m의 김국영(20)과 남자 110m 허들의 박태경(31)도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2007년 대회에서 톱10 진입에 성공한 적이 있는 김덕현(26)은 남자 멀리뛰기 결승을 앞두고 세단뛰기 예선에서 발목을 다쳐 필드를 밟지도 못했다.

그 와중에서도 한국기록은 5개나 나왔지만 이는 우리나라와 외국의 발전 속도를 보여주는 일례가 될 뿐이었다.

중국과 일본은 나름 선전했다. 중국은 육상 강국 틈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목에 걸었고 일본도 금메달 1개를 땄다.


유망주들과 잠정 스타들의 부진

2009년 베를린대회까지 중국은 통산 금메달 9개, 은메달 8개, 동메달 10개를 따내 통산 17위에 올라있다. 일본은 금메달 3개, 은메달 6개, 동메달 11개로 35위다.

전문가들은 한국 육상이 향후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국체전’만 바라보는 선수들의 의식 변화와 정부와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대회 운영 미숙은 더 잘할 가능성이 충분했다는 점에서 큰 오점으로 기록됐다.

대구시의 노력과 과감한 투자 덕분에 경기장 시설 자체는 매우 훌륭했다. 몬도 트랙을 비롯해 초대형 전광판, 최고급 음향시설과 조명 등은 나무랄 데 없었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모래를 고르는 작업까지 기계로 소화하는 등의 기술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대회 조직위원회는 2005년부터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를 치러낸 노하우를 보여주지 못했다.

먼저 효율적이지 못한 셔틀버스 운행은 관중들은 물론 국내외 취재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무료 셔틀버스는 특정 시간 이외에는 운영되지 않아 시간을 다투는 취재진들은 이를 이용하지 못했고 관중들도 자리가 없어 몇 시간씩 기다렸다가 셔틀버스를 탔다.

관광버스를 급하게 빌려 만든 버스에는 한글로만 표식이 돼 있어 외국인들이 불편함을 겪었다.

관중도 동원된 이들이 꽤 있었다. 주로 초중고 학생들이 현장체험 명목으로 동원됐는데 더운 날씨와 경기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선수들과 호흡하는 관중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조직위원회의 “만원 관중이 들어차 대회가 성공적이다”라는 말을 곧이듣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조직위원회는 관중이 비어있는 자리를 가리기 위해 2층 일부구역을 모두 대형 현수막으로 가렸다.


홍보보다 중요한 것이 봉사

경기 진행 중 드러난 부족한 점도 많았다.

이번 대회 초반 종목이었던 여자 마라톤에서는 출발신호 오류로 선수들이 세 차례나 출발을 해야 했다. 완주 후 탈진한 선수를 막무가내로 내쫓는가 하면, 운영요원이 방송화면을 방해하며 유유히 지나가기도 했다.

선수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 였다.

여자 1만m 경기에 출전한 기누카와 메구미가 완주한 뒤 탈진해 쓰러졌지만 한참 뒤에야 응급요원이 나타났고, 김덕현이 세단뛰기 예선을 치르던 도중 왼발 부상을 당했을 때도 후속 조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대회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관계자들과 ‘2014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차후 대회 운영을 참고하기 위해 대거 방문했다.

하지만 이번 운영은 배울 점보다 피해야할 점이 많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취재진들은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사소한 일을 놓고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노출했다”면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이번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해낸 문화적, 경제적 성과는 높게 사야한다.

대회 자체도 우사인 볼트 등 세계 최고 스타들의 참가, 후반으로 갈수록 높아진 경기수준 등 박진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했다.

조직위원회는 “이번 대회 전체 입장권 판매량이 46만4381장이며 외국인도 3만여 장을 샀다”고 밝혔다.

이는 ‘2007 오사카대회’의 25만4000여장, ‘2009 베를린대회’의 39만7000여장을 크게 앞선다.

이번에 지적받은 사항들은 빠른 시일 내에 고쳐지고 발전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선수들의 기량 향상은 다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수행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