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족했던 PGA 우승조건, 비로소 채우다


‘골프 신동’, ‘골프 천재’, 혹은 ‘필드의 말썽꾼’, ‘성난 맷돼지’로 불려온 골프 선수 나상욱(케빈 나·29)이 데뷔 7년 만에 PGA 투어에서 우승했다. 211번째 도전 끝에 이뤄낸 홀가분하면서도 감동적인 승리였다. 나상욱은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서머린TPC에서 열린 저스틴 팀버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에서 최종합계 23언더파 261타를 기록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은 PGA 투어 ‘가을 시리즈’의 첫 대회였다. 나상욱의 우승으로 대중들은 최경주, 양용은의 뒤를 잇는 코리안 골프스타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게 됐다. 재미교포 나상욱은 부모님의 교육 아래 한국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고 한국어에도 능숙했다.

PGA 대회에서 세 차례 준우승을 차지했던 나상욱은 이번 오픈에서의 중반 선전으로 우승의 기대를 품었다. 과거 나상욱이 준우승을 차지한 대회는 2005년 ‘FBR오픈’과 ‘크라이슬러클래식’, 2010년 ‘아널드파머 인비테이셔널’이다.

나상욱은 지난 2일 저스틴 팀버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 3라운드에서 5타를 줄이며 17언더파 196타로 공동 선두를 질주했다. 나상욱은 2라운드 때도 8개의 버디 기록하는 등의 활약으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초반 1, 2, 4번 홀에서는 3개의 버디를 잡는 호조를 보였고 후반에는 15, 16, 17번 연속 버디를 낚았다.

몇 차례 우승 기회를 문턱에서 날려버린 아픔이 되살아날 법도 하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지난 3일 4라운드에서 마지막까지 경쟁을 벌였던 닉 와트니(미국·30)를 2타차로 꺾었다.

한때 닉 와트니에게 단독선두를 허용하기도 했지만 15번 홀에서 기세를 되찾은 나상욱은 16, 17번 홀에서 버디퍼팅을 성공시켜 상금 79만2000달러의 주인공이 됐다.

이날 우승으로 나상욱은 2013년까지 PGA 투어 출전권을 확보했고 상금순위를 55위에서 33위로 끌어올렸다.


‘준비된 우승후보’, 7년 만에 결실

7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나상욱의 감격은 대단했다.

“첫 우승이어서 매우 흥분된다”고 소감을 밝힌 나상욱은 “내 뒤를 추격하는 닉 와트니를 이기기 위해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또한 나상욱은 “17번 홀에서 13m의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때 우승컵을 가져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며 기뻐했다.

우승을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도 우승을 놓칠 것이라는 불안감도 엄습해왔다.

나상욱은 “4라운드를 앞두고 2위로 경기를 마치는 악몽을 꿨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와 항상 언제 우승할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믿어줬기에 우승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나상욱은 1라운드 때 미미한 활약으로 28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버디를 꾸준히 잡는 것에 따라 우승까지 넘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집중했다.

나상욱은 211번의 도전 끝에서야 비로소 우승을 차지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골프 신동’, ‘골프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여질 정도로 주목받았다.

여덟살 때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살게 된 나상욱은 아홉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했고 스무살이 되기까지 수많은 미국 아마추어 무대를 휩쓸었다.

2000년에는 나비스코 주니어챔피언십, 핑피닉스 챔피언십, 스콧로버트슨챔피언십, 오렌지볼 국제챔피언십 등 각종 대회를 석권해 미국 주니어무대 최고스타로 떠올랐다.

2001년에는 PGA투어 뷰익오픈 최연소 출전 기록(18세)을 세웠고, 세계적인 스윙 코치 부치 하먼의 지도를 받았다.

2002년에는 아시아프로골프(APGA) 투어 볼보 마스터스에서 우승해 APGA 투어 신인왕에 올랐다. 2003년 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 공동 21위를 기록함으로써 PGA투어 멤버가 됐고 2004년부터 PGA 정규 투어를 참가했다.


‘우승’ 스트레스로 인성 문제 지적 받아

하지만 PGA 우승은 쉽지 않았다. 주위의 큰 기대와 시선을 받는 것 역시 부담으로 작용했다.

2006년에는 손가락이 차 문에 끼는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부상 회복 후 우승을 목표로 다시 시작해 준우승까지 올랐지만 올 시즌에는 불행히도 아버지가 백혈병으로 병상에 누웠다.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나상욱은 오히려 아버지를 위해 경기에 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챔피언이 될 만한 배짱을 키우는 데 노력했다. 그의 준우승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우승 트로피는 실력이상의 ‘강심장’이 있는 선수들만이 차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상욱은 2005년 크라이슬러 클래식과 2010년 아놀드 파머 클래식에서의 좌절로 이와 같은 사실을 인지했다.

나상욱과 우승을 다퉜던 필 미켈슨(미국), 제프 오길비(호주), 어니 엘스(남아공) 등은 세계 최고의 골퍼들로 냉철한 머리와 타고난 배짱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일부 언론과 골프팬 사이에서는 나상욱 선수의 부정적인 면도 존재했다.

나상욱은 필드에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불같은 성격을 비췄고 종종 화를 폭발시켜 골프클럽을 내던지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잦은 이혼과 알코올 중독으로 유명한 존 댈리 선수에 빗대어 ‘리틀 존 댈리’라는 별명이 따라다닐 정도.

그러나 그는 달라졌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더라도 조바심을 내거나 화에 휩싸여 리듬을 잃지 않았고 오로지 기다리고 인내했다.

이번 우승을 계기로 나상욱은 올해 안으로 생애 2번째 PGA 우승을 바라고 있다. 나상욱은 “어릴 때 이민을 갔지만 한문도 배우고 사자성어도 외웠다”면서 “끝까지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순간이 온다는 ‘고진감래’란 말을 아버지가 자주 해주셨다”고 전했다. 나상욱의 아버지 또한 PGA 우승에 대해 “장하고 대견하다”는 말로 큰 기쁨을 표현했다.

[이창환 기자]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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