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직 사퇴 시 비대위 체제전환… 한명숙 전 총리 전면배치 가능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12월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의 방법을 두고 당내 기 싸움이 팽팽한 가운데 손학규 대표가 범야권통합의 방안으로 연내에 통합전당대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나섰다. 그러나 당내 비주류의원들과 호남의원들 중심으로 ‘선(先) 당내개혁, 후(後) 야권통합’을 강조하고 있어, 향후 통합전당대회를 개최하는 데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더욱이 “당 지도부가 대선에 출마하고자 할 때는 선거일로부터 1년 전까지 사퇴해야 한다”는 민주당 당헌규정에 따라 대선출마를 염두하고 있는 손 대표가 오는 12월 18일 이전에 대표직을 사임할 것을 전제로 당내 정치적 역학관계가 얽히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손학규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른바 ‘조건부 대선 불출마론’이 제기되면서 민주당 단독의 전당대회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사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이용섭 대변인은 “통합전대를 치르기 전, 민주당 단독전대는 없다”고 못 박았다.

손학규, ‘연내 통합전대’ 선언
야권통합정당 구상발표


지난 3일 손학규 대표와 당 최고위원들은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12월 말까지 민주진보 진영을 통합하는 내용의 ‘연내 통합방안’을 추진할 것을 선언, 야권통합정당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손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주진보 진영의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의 대통합을 논의하기 위해 제 정당·정파의 대표자 회의를 제안한다”며, “대표자 연석회의를 통해 야권통합의 원칙, 범위, 추진일정 등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자”고 말했다.

아울러 “이러한 합의 위에서 민주진보 통합정당을 추진할 ‘민주진보통합정당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오는 11월 말까지 민주진보통합정당추진기구의 구성을 완료하며, 12월 말까지 통합을 완료해 민주진보통합정당을 결성하자”는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이에 앞서 우상호 대변인이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내 486세대 정치인 모임인 ‘진보행동’도 야권통합과 관련, “12월 중 통합전대를 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우상호 진보행동 운영위원장은 지난 2일 국회브리핑을 통해 “새로운 지도부가 통합을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협상기구를 만들고, ‘혁신과 통합’ 등 바깥세력도 협상기구를 만들어 구성한 후 통합전당대회로 가자”고 말했다.

이어, “통합전대에서 공동지도부를 세우면 된다”고 언급한 뒤 “민주당은 통합을 위해서 대승적으로 양보해야 한다. 통합의 일정과 방식 가지고 더 이상 당에서 싸우지 말자”고 강조했다.

손 대표가 제안한 야권통합정당은 과거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2007년 8월에 창당한 통합신당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탈당파,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일부세력과 시민사회세력을 주축으로 17대 대선을 치르기 위해 창당된 중도개혁정당이다.

참여정부 말기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좋지 못한 탓에 노무현 정권을 승계 받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낀 민주 정치세력들이 통합정당을 만들게 되었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흡수통합하면서 세를 키웠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야권통합정당과 관련해 “과거 대통합민주신당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며 “과거에 모두 다 해봤기에 어렵지 않게 통합정당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민주당 안팎의 거센 반발
“꼼수정치 부리지 마라”

당 지도부의 ‘연내 통합방안 구상’을 접한 민주당 의원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으며, 원외에서는 “꼼수정치를 펴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지난 3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현 지도부는 통합을 추진할 자격이 없다”며 “의원들 모두가 반대하고 있다. 통합의 문제는 단순히 지도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다른 의원은 “통합전대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매우 당황했다. 현재 당내 의원들의 반발이 상당하다”며 “통합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민주당이 비춰서는 안 된다. 통합을 하는 것은 좋지만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에서 연대는 가능하나 통합에는 참여할 수 없다고 한 만큼 민주당이 무조건적으로 통합만을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민주당 내 비주류 모임인 ‘민주희망 2012’(옛 쇄신연대)는 성명에서 “지분 나누기식, 선거대비 꼼수통합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 지도부는 그 동안의 통합논의과정과 내용을 당원과 국민들에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우제창 의원은 손 대표가 ‘연내 통합전대 로드맵’을 제시하면서도 자신의 사퇴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점을 꼬집으며, “12월 18일까지 임기가 예견된 지도부가 연말까지 야권통합에 대한 권한을 갖겠다는 것은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지 않겠다든지 혹은 차기 지도부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원외지역위원장들의 반발도 상당하다. 지난 2일 이들은 국회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민주당 전당대회와 통합전당대회가 투 트랙으로 가야한다”며 “야권통합 협상이나 통합전대는 현 지도부가 아닌 비대위에서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는 만큼 지도부는 10·26 재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비대위로 전환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수도권 지역의 한 지역원외위원장은 [일요서울]과 만난자리에서 “손학규 대표가 발표한 통합전대 내용을 보면 손 대표가 꼼수를 부리자는 것”이라며 “말도 안 된다.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박지원·김부겸 등 차기 당권주자 ‘손 대표 거취’ 압박

민주당의 차기 당권을 노리는 의원들은 손 대표를 직접 겨냥하며 사퇴를 압박했다.

박지원 의원은 손 대표가 ‘연내 통합방안’을 발표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합과 전당대회를 투 트랙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며 “통합을 추진하는 동시에 전당대회를 통해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명한 국민과 당원들의 뜻에 따라 야권통합이 순리적으로 풀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지원 의원의 최측근은 “모든 것은 민주당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만약, 지역에서 시민후보가 추대될 경우 그 지역에서 몇 년간을 열심히 뛰어온 분들이 공천을 못 받고 이에 따른 지역반발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부겸 의원은 손 대표의 ‘연내 통합방안’과 관련해 “전당대회를 비롯한 민주당의 혁신 프로그램은 어디에도 없었다”며 “당원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지도부에 분노를 느낀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지도부의 ‘연내 통합방안’은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거부하고 당이 문 닫을 때까지 자신들이 주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며 “통합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열정을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예상 가능한 정치일정과 자신들의 거취문제를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손 대표 사퇴 시 비대위 구성 한명숙 전 총리 당권도전 가능

이런 가운데 손 대표가 당초 예정대로 다음달 18일 이전에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홍영표 원내대변인은 지난 3일 의원총회가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손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당권과 대권의 분리는 국민 앞에서 약속한 것인데, 임기 내 사퇴는 당연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한 손 대표는 ‘공천권 행사를 위해 사퇴시기를 늦추는 것 아니냐’는 일부 비판에 대해 “나에 대한 인격모독”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손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것이면 당권에서 물러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물러날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대표가 대표직에서 사퇴할 경우 곧바로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가 꾸려지면 민주당 지도부를 새롭게 선출하는 작업은 물론 향후 진행되는 통합에 대한 논의까지 이끌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당 안팎으로 한명숙 전 총리가 민주당 전당대회의 대표주자로 전면 배치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 전 총리 스스로도 자신의 정치자금법위반혐의에 대한 무죄판결 이후 검찰개혁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며 향후 정치행보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손 대표의 최측근 의원은 지난 2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만약 손 대표가 사퇴하게 되면 비대위가 꾸려지고, 대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렇게 되면 당권의 대표주자로서 한명숙 전 총리가 전면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한 전 총리 스스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기는 하지만 한 전 총리는 민주당으로써도 꼭 필요한 분”이라고 언급한 뒤 “경력이 풍부하고 내외적으로 이미지도 좋은 만큼 당권의 대표주자로서 손색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한 전 총리가 나온다면 다른 후보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지도부가 전면에 나서 지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도 “비대위가 구성되고 당 지도부가 새롭게 짜여 진다면 한 전 총리를 중심으로 당이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며 “당 분위기도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은 손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났을 때 가능하다고 전제했다.

한편, 손 대표가 대표직 사퇴까지 거론하며 통합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여전히 당 지도부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상당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민주당 모 의원은 “손 대표의 뜻을 도대체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결론이 날지도 모르겠다”며 “여러 측면에서 봤을 때 의구심이 들고 분위기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향후 전개될 전당대회의 양상과 통합의 방법에 따라 차기대권주자로 손꼽히는 손학규 대표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만큼 손 대표는 통합전대에 모든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손 대표를 불신하는 당 안팎의 기류가 적지 않은 만큼 민주당의 내홍과 갈등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