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인하 놓고 벌어지는 정부 vs 제약업계 한 판 승부는?

- 약가인하 정책, 제약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 매우 커
- 사상 최초로 정부에 제대로 된 목소리 낼 수 있을까

정부의 ‘8·12 약가인하정책’ 강행 방침에 따라 제약업계가 들끓고 있다. 한국제약협회(이하 협회)는 정부의 일괄 약가인하에 항의하기 위해 업계 역사상 최초로 대규모 ‘제약인 궐기대회’를 오는 25일 열기로 지난 9일 확정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따갑다. 협회가 그간 업계의 목소리를 정부 측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협회가 주도하고 있는 궐기대회에 대한 반응도 상당히 회의적이다. 협회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협회가 정부와 정책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온적으로 대응해 오히려 정부가 확신을 가지고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게 했다고 성토했다. 차라리 협회를 해산시키고 업계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유관 기관에 협회의 업무를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일요서울]이 업계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협회와 향후 약가인하를 두고 벌어질 정부와 업계의 한판 승부에 대해 집중 조명해 본다.

업계는 협회가 약가인하 정책 결정과정에서 시종일관 보건복지부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였으며, 확정발표 이후에도 협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협회는 오는 25일 궐기대회에 국내 토종 제약사 임직원들을 자발적으로 참여케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도매협회와 약사회 등 유관단체에 공문을 보내 ‘범의약계 궐기대회’로 확대시켜 목소리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협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어 어느 정도의 제약사들이 참여할지는 알 수 없다. 현재 협회는 최소 1만 명 정도의 인원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협회의 역량이 부족하고 집회를 주도한 경험이 전혀 없어 불신이 점차 커지고 있는 가운데 과연 협회를 믿고 따라갈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 약가인하 정책이 시행되면 제약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그 어느 정책보다 후폭풍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며 “다수의 제약사들은 내년에 적자, 매출감소 등을 우려해 인력 감원, R&D 투자 재검토 등의 긴축 경영에 이미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고 우려했다.

더욱이 최근 세계적 다국적 제약사가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새로운 약가정책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업계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이 더해졌다. 이 다국적 제약사 한국법인에 따르면 국내의 토종 제약사 가운데 10년 후에 살아남을 기업은 2곳에 불과했다.

이 법인 관계자에 따르면 “혈액제제와 백신 개발로 다른 제약사들과는 차별화된 녹십자와 상위 10대 제약사 중 한 곳”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는 자사의 내부 자료이므로 어느 제약사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세계적 기업에서조차 이번 약가인하 조치가 한국 제약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파괴적일뿐만 아니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신종플루 유행으로 전 국민들이 불안해할 때 백신을 개발해 안정적으로 공급했던 기반이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이 같은 시뮬레이션 결과라면 업계 주장처럼 제약 식민지화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필리핀 등 동남아국가들의 전철을 밟아 의약품 자급률이 10~30%대에 머물며 비싼 댓가를 치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제약인 궐기대회’ 성과는 “글쎄”

앞서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이하 화학노련) 산하 의약화장품분과(회장 박광호)는 지난 4일 오후 2시부터 국회 앞에서 분과 조합원 약 1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제약노동자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또한 화학노련은 한미FTA 반대, 약가인하저지, 제약노동자 생존권 사수 등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정부와 협회에도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박 회장은 대회사에서 “우리가 이렇게 궐기대회에 나선 것은 정부가 정당하게 제기한 우리의 요구를 몰살해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라고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박 회장은 이어 “지난 1일 약가인하 고시로 인한 적자위기가 제약노동자들에게만 전가돼 극심한 고용불안에 직면한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강압적인 약가인하 정책으로 제약 노동자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정부의 무리한 약가인하 정책을 성토했다. 또한 협회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도 덧붙였다.

박 회장은 “약가 대폭 인하로 국내 제약산업 붕괴와 고용노동의 불안이 야기되고 있는데도, 정부의 불법 부당한 약가인하에 안일하게 대응하는 제약협회에도 강력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투쟁을 계속 지속할 것이며 이 정권이 존속하는 한 연맹의 투쟁의지는 오늘 하루가 아닌 언제나 지속될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또한 이날 궐기대회에 참여한 추미애·정동영 민주당 의원도 “한미FTA가 발효되면 허가특허연계법으로 인해 국내 제약산업이 다 죽을 것”이라며 “결국에는 다국적 제약사의 횡포에 놀아나게 될 것”이라며 한미FTA 저지에 끝까지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협회가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에 맞서 업계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제약산업의 특상상, 강한 규제권을 가지고 있는 ‘슈퍼 갑’인 정부에 대해 강한 임팩트를 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궐기대회를 철저히 준비하고 있으며 협회는 약가인하 저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서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업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업계의 불신과 역할 무용론에도 불구하고 협회가 정부와 약가인하 정책을 놓고 한판 승부를 어떻게 끌어갈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진우 기자> voreo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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