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원심 뒤엎고 중형 선고된 내막

▲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현장검증 <뉴시스>

 1년 8개월간 검찰과 변호인의 치열한 항소심 공방 끝 유죄판결
항소심 “범행 동기, 역할 분담 등 범행 내용과 자백 상당부분 일치”

 2009년 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뒤 무죄를 선고받았던 부녀가 항소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광주고등법원 형사1부(이창한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존속살해와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백모(61)씨 부녀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백씨에게 무기징역을 딸(28)에게 징역 20년을 각각 선고했다. 2009년 9월에 기소돼 지난해 3월 1심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된 후 1년 8개월간 검찰과 변호인의 치열한 항소심 공방 끝에 유죄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백씨 부녀는 상고장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져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판결은 대법원에서 판가름 나게 됐다.

2009년 7월 전라남도 순천의 한 농촌마을 공공근로현장에서 청산가리가 들어있는 막걸리를 마시고 최모(59·여)씨 등 두 명이 숨지고 장모(76·여)씨 등 두 명이 중태에 빠졌다.

검찰은 숨진 최씨의 남편인 백씨와 딸을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넣어 아내와 이웃주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부녀가 자신들의 반인륜적인 관계가 최씨에게 들통 나자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봤다. 이번 사건은 피고인들의 자백이 결정적 증거로 제시돼, 피고인들 자백의 객관적 합리성 여부가 재판 쟁점이었다.

1심 재판부는 직접증거이자 핵심증거인 백씨 부녀의 검찰에서의 자백 진술이 객관적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고, 수사 진행에 따라 번복돼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부녀 간 범행 공모가 이뤄진 시기, 누가 최씨를 살해자고 제의했는지, 누가 청산가리와 막걸리를 이용한 살해방법을 제의했는지 등에 관해 피고인들 각각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하고, 피고인들 진술 내용에도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백씨 부녀의 진술 번복에 대해 범행을 은폐하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것으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백씨 부녀의 진술 중 청산가리 형태와 색깔, 보관방법, 막걸리 색깔 등에 관한 진술들을 미뤄볼 때 범행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고 본 것.

또 백씨 부녀의 역할분담내용, 백씨 부녀 간 반인륜적인 관계, 막걸리와 청산가리 구입 경위 등 백씨 부녀의 자백 진술 내용이 범행 동기, 역할 분담 등 범행 내용에서 상당부분 일치한다고 봤다.

범행동기로 밝혀진 ‘백씨 부녀의 반인륜적 관계’에 대해서도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백씨 부녀의 진술과 달리 백씨 부녀가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가져온 사실을 최씨가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딸과 최씨의 갈등이 살인 동기가 되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특히 1심 재판부는 백씨 부녀가 오랫동안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서로 마음을 털어놓을 정도로 유대감이 형성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범행을 공모한 사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누가 청산가리와 막걸리를 이용한 살해 방법을 제의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서로의 진술의 일관성이 부족하고, 피고인들 간 진술내용에도 불일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백씨 부녀의 성관계가 최씨에게 발각되어 부부 간의 불화가 심화됐고 모녀 사이에도 문란한 성생활과 게으른 태도 등을 문제 삼아 잦은 꾸지람과 반감이 팽배했다면 충분히 살인에 이를 수 있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백씨 딸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근거에 대해 “백씨의 딸이 이 사건 범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더라도 청산가리와 막걸리 구입경위에 대한 진술과 배모씨로부터 강간을 당했다고 구체적으로 고소사실을 진술했다가 진술 내용이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며 “백시의 딸이 허위진술을 하는 성향을 감안하면 백씨의 진술에 신빙성을 부여하기는 어려워보인다”고 밝혔다.  


반면 항소심은 자백을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로 백씨의 딸이 배씨를 강간 및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가 허위라고 무고범행이라고 인정하면서 “범행을 숨기고 경찰의 관심을 배씨에게 넘겨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허위로 고소했다”고 진술한 것을 들었다. 항소심은 “이 같은 행동은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다른 사람에게 혐의를 전가해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백씨는 범행 후 딸에게 “경찰에게 아무말 말라”며 입단속을 시켰는데 이는 공범에 대해 범행 은폐를 교사하는 행동으로 항소심은 판단했다. 항소심은 이 같은 정황 등을 미뤄봤을 때 백씨 부녀의 검찰 자백은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백씨 부녀에 대해 중형을 선고하며 “백씨 부녀가 검찰에서 한 자백 진술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있고, 다른 정황증거들과 저촉되지 않아 신빙성 있다”며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도 충분하다”고 중형에 대한 근거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백씨 부녀가 치밀한 계획을 세워 청산가리를 이용해 최씨를 살해한 점에서 죄질이 무겁고, 막걸리를 함께 마신 타인도 살해된 점 등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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