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차로 이겨도 졸전이라 불릴 판에… 2-1로 압도당했네

아시아에서 맹위 떨치는 K-리그 선수들을 자국 대표팀 감독이 외면해서야
역대 위기 중에서도 최악…?, 조 감독 ‘포지션 파괴자’ ‘조직력 붕괴자’로 불려

<뉴시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이 비겨도 ‘욕먹을 경기’를 완벽하게 져 뭇매를 맞고 있다. 선수기용과 전술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았던 조광래 감독이 비난의 선봉에 서 있다. 축구대표팀은 지난 15일 레바논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전에서 2:1로 패했다. 경기내용, 점유율 면으로 접근해도 딱히 우세하지 않았던 졸전 중에 졸전이었다. FIFA에서도 놀랄 정도. 대부분 축구 팬들은 레바논이 B조 약체임을 감안, 경기 전만 해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팬들은 다만 경기를 통해 풀백 라인의 견고함, 골 결정력, 대표팀 특유의 압박이 살아나고 있느냐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경기 후 비난여론이 이렇게 들끓는 것은 곧 조광래호에 느끼는 배신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가 된다. 일본전 3:0 완패에 이어 국가대표팀은 A매치 굴욕의 역사를 또다시 새겨 넣었다. 네티즌은 조광래 감독 경질, 사퇴를 촉구하고 있고 축구 전문가들은 ‘전술을 바닥부터 갈아 엎어야한다’고 보고 있다.

약 두 달 전만해도 6-0으로 이겼던 팀을, 역대 전적 6승1무로 한 번의 패배도 허락하지 않았던 팀에게 2-1로 졌다는 사실은 경악 자체였다. 대다수 언론들은 이번 패배를 ‘베이루트 참사’라고 표현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다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최종예선은커녕 3차 예선도 긴장해야 될 것 같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가시밭길을 자초한 조광래호 때문에 축구 팬들을 비롯한 국민들은 당연시 여겼던 월드컵 본선 진출(7회 연속)을 쉽지 않은 목표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만에 대단한 변화다. 
축구대표팀의 지난 15일 레바논과의 경기에서 칭찬할 수 있는 요소를 전혀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중동원정에서 이 악물고 필사적으로 뛴 선수들의 노력은 높게 사야 하지만 내용과 결과가 너무 좋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선수들의 체력과 정신무장도 과거와 비교해 취약해졌다고 보고 있다. 
반면 레바논은 1차전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우리 대표팀이 총체적으로 취약점을 드러내자 레바논의 조직력과 공격력은 상대적으로 더 돋보였다.
경고 누적으로 박주영을 내보내지 못한 조광래 감독은 그 자리에 이근호를 투입했다. 원톱 이근호를 뒷받침하는 공격 2선은 이승기, 손흥민, 서정진으로 결정됐다. 이승기, 손흥민 조합은 A매치 최초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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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경기 흐름은 전반 4분 이미 엿볼 수 있었다. 레바논이 오른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 세트피스를 살려 선제골을 터트린 것. 레바논의 패싱 게임에 대표팀 수비수들은 우왕자왕 했고 알 사디 선수가 오른발 슛을 터트릴 때까지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 
대표팀은 곧바로 공세 모드로 전환해 전반 20분 패널티킥으로 균형을 맞췄지만 불과 10분 만에 구차철의 반칙으로 패널티킥을 내줬고 2-1 스코어 수모를 당했다.
후반에는 최근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지동원이 손흥민 대신 투입됐지만 분위기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다급해진 대표팀은 수비수 홍정호를 빼고 공격수 윤빛가람을 넣었지만 골은 고사하고 팀플레이 양상조차도 레바논만 못했다.
레바논은 이날 대표팀보다 11개적은 파울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효슈팅과 프리킥에서 각각 2개, 14개 앞섰다. 경기 후 중동 심판의 편파판정 시비가 거론됐지만 축구 팬들의 관심은 판정의 문제점, 또는 레바논 홈 관중들의 ‘레이저 빔’ 테러 따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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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참사’로 3승1무1패(승점 10)가 된 대표팀은 최종예선 진출 확정을 내년 2월 쿠웨이트 전으로 미루게 됐다.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5개 조 중, 최종예선 확정국이 나오지 않은 조는 우리가 속한 B조가 유일하다. 다른 조의 강팀의 경우 이변의 재물이 되지 않았지만 우리 대표팀은 그러지 못했다.
대한민국과 혈전을 벌여야 하는 쿠웨이트는 아랍에미리트(UAE 5패)와의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면서 승점 8점을 획득 했다. 만일 UAE가 쿠웨이트에 승리했거나 비겼다면 우리의 최종예선 진출이 확정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쿠웨이트 역시 월드컵 본선행을 위해 전력으로 경기에 임할 것이 예상돼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 1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조 감독은 남은 예선에 대해 ‘기성용, 이청용, 박주영 등 해외파 총출동’을 다짐했다. 그러나 축구 전문가들과 네티즌은 조 감독의 많은 문제점 중 하나를 해외파 선수들의 지나친 의존도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조 감독은 스타팅 멤버를 거의 유럽파 중심으로 꾸려 나갔다. 박지성, 이영표가 은퇴한 뒤에도 기성용, 이청용, 박주영 등을 수시로 소속팀에서 차출했다. 이를 두고 “전략이 주효했던 게 아니라 해외파들의 능력치로 가까스로 이겼다” 라는 비판이 매번 고개를 들었었다.
이날 경기만 봤을 때, 주력 해외파를 제외한 선수들의 조직력은 신생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삐걱댔다. 패스미스는 기본, 동선이 서로 겹쳐 공격 찬스를 답답하게 날려버리기도 했다. 월드컵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차선’의 조합으로도 최선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그에 대한 발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축구 전문가들과 팬들이 조 감독의 ‘선수 보는 눈’과 ‘전술 이해도’에 회의를 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수의 경고 누적과 부상 등에 따른 ‘플랜B’ 구상은 감독의 기본 조건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결과로 조 감독이 해외파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을 것이다”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은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예를 들어 손흥민 수준의 공격수는 K-리그에도 어느 정도 있다. 유럽 리그에서 꾸준히 경기를 갖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레바논전 후 인터뷰에 응하는 조광래 감독 <뉴시스>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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