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신입사원 공채 크게 줄어

내년부터 시행될 약가인하로 인해 일부 제약사들이 몸집 줄이기에 나섬에 따라 취업준비생들에게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내년에 제약산업 전체적으로 1조7000억 원의 매출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제약사들이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하소연하고 있지만 가뜩이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업준비생들에게는 큰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도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지만 실상은 그와 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제약업계의 신입사원 모집인원 줄이기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약업계 종사자들의 입장이다. 당장은 신입사원의 채용 규모를 줄이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매출 감소의 여파가 밀려올 경우 기존 직원들도 자리를 보존하기 힘들지 않겠느냐며 술렁이고 있다.
약가인하를 통해 경쟁력 있는 제약사를 키우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제약업계를 크게 흔들고 있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약사 중 상장된 곳의 지난 1년간 신규 채용 규모는 1000여 명에 달한다.

<약업닷컴>이 코스피 및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제약사들의 직원 현황을 파악한 결과 지난해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제약업계 종사자들은 994명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1000여 명의 수가 다른 산업에 비해 많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적은 수만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신입사원 채용 규모가 지난해에 비해 적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 종사자들 대부분의 생각이다. 어려운 여건으로 인해 신규 투자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인원을 늘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 인력들에 대한 관리 체계가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회사마다 다른 행보 보여

신규채용은 회사마다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상위권 제약사들도 미래 예측을 통해 예년과 비슷한 채용 규모를 유지하는 곳이 있는 반면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뽑지 않는 곳도 있다.

동아제약의 경우 지난해 9월과 올해 4월 대졸공채를 통해 각각 120명과 50명을 채용했다.
하지만 동아제약은 올해 9월에 하반기 공채를 실시하지 않았고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공채계획을 밝히고 있지 않아 올해는 별도의 공채를 진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기존 직원들을 대상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한 교육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약업계 상위업체 중 하나인 한미약품은 연구․개발․임상, 의사, 영업 분야의 신입 및 경력직원을 모집한다.

한미약품의 올해 3분기 매출은 지난해 1507억6500만 원에서 16.94% 감소한 1252억1900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다만 영업이익은 33억3300여만 원으로 -88억5800만 원이었던 지난해 동기 대비 흑자로 전환됐다.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선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매출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떨어진 매출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도 관건이 되고 있다.

상위권 업체인 한미약품의 매출이 줄어든 것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정부의 강한 압박으로 인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동아제약과 한미약품과 같이 시장에서 선두 그룹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들은 내년에 불어 닥칠 약가인하의 여파를 두고 좀 더 공격적인 경영을 펼칠 것이냐 아니며 보수적인 사업계획 속에서 안정을 유지할 것이냐를 두고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약가인하 후폭풍 본격 점화

정부가 펼치고 있는 고강도 규제와 함께 약가인하 정책에 따른 후폭풍은 지난 3분기 제약사 매출액에 그대로 반영됐다.

제약업계 1위인 동아제약의 경우 올해 3분기까지의 매출액은 6766억 원으로 지난해 6344억 원과 비교해 422억 원, 6.7% 상승했다. 뿐만 아니라 영업이익과 누적 순이익도 증가했다.

하지만 업계 2위인 녹십자는 지난해 3분기 누적매출액 6394억 원에서 올해는 9.9%가 감소한 5764억 원으로 집계됐다. 더욱 큰 타격은 1443억 원이던 영업이익이 775억 원으로 거의 반 토막 나며 적신호가 켜졌다.

종근당 또한 매출액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감소하며 정부 규제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상위 10개 제약사들 중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어난 곳이 많지 않은 것은 결국 약가인하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안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10대 제약사 중에서도 문 닫는 곳 생길 수 있어

본격적인 약가인하가 시행되기 전부터 이런 파급효과가 나타나자 제약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재선 위원장은 지난 11일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 약인가 독인가’라는 세미나를 열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약가인하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약가인하 정책은 무리한 시장개입에 따른 재량권 남용 등의 지적과 고용과 미래 R&D 투자위축 등 산업전반에 걸쳐 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의 인위적인 약가인하 정책으로 인해 제약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 세미나에서 한 회계법인이 국내 상위 10개 제약사 중 일부가 도산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분석 자료를 발표하자 장내는 일순간에 들썩였다. 단순한 추측이 아닌 전문가의 입에서 나온 발표이기에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에 몰고 올 파장이 결코 작지만은 아닐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바뀐 순간이었다.

대형 제약사들조차 약가인하 파도를 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나마 그들은 구조조정이나 마케팅 비용을 감축을 통해 근근이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소형 제약사들의 경우 제네릭의 매출비용이 높은 만큼 곧바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존폐 위기에 놓인 중소 제약사들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하는 R&D를 강화할 수는 없다. 결국 회사 문을 닫거나 아니면 업종 다변화를 통해 다른 분야에서 매출을 일으켜야만 한다.

글로벌 제약사 또한 ‘약가인하’ 반대

약가인하로 인해 국내 제약사들의 큰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글로벌 제약사도 아직까지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약가인하의 후폭풍을 피하기 위한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프랑스계 제약사인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는 최근 회사 내 공고를 통해 희망퇴직자를 받고 있다.

약가인하 정책으로 인해 특허가 만료되는 의약품은 만료 전 가격의 53.55%로 일괄 인하되기 때문에 특허만료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글로벌제약사들의 경우도 매출이 상당 부분 감소할 것으로 전망돼 미리부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도 매출이 감소하면서 국내 임상 투자가 어려워질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의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본과 매출규모에서 국내 제약사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마저도 약가인하 정책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정부당국은 이에 대해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은 채 내년 4월부터 약가인하를 단행할 태세다.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의 희망퇴직 권고에서 보듯이 문제는 내년 4월부터가 아니라 ‘지금’이라는 것이다.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가 희망퇴직자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노총 산하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화학노련)은 이를 정리해고로 보고 성명을 통해 “약가제도 개편 이후 제약협회와 사용자가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가 정리해고였다”며 “정부의 약가인하를 빌미로 정리해고를 획책하거나 리베이트 등 부도덕하고 방만한 경영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면 더 이상의 노사관계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약가인하가 노사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제약업계의 나약함도 문제

제약업계는 정부라는 절대 권력자 앞에 항상 낮은 자세로 임했던 것이 사실이다. 약값을 정부에서 관리하다보니 어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런 제약업계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곳은 제약협회 외에는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제약업계에서는 제약협회에서 정부와 대화를 통해 약가인하 및 각종 규제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요구했지만 제약협회는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약가인하에 반대한다고 성명을 내는 것이 거의 전부였던 제약협회가 이번에는 ‘전국 제약인 생존 투쟁 총궐기대회’를 개최한다. 지금까지의 소극적 자세에서 진보한 모습이긴 하지만 이에 거는 기대가 높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당장 직원들은 감원 폭풍을 맞게 돼 사활을 걸고 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한판 싸움을 벌일 태세를 갖추고 있지만 회사 측에서는 정부에 항의할 만큼 항의하다가 안 되면 인력을 감축하든 마케팅 비용을 줄이든 간에 시련의 계절을 버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종사자들 스스로도 ‘정부에 강력한 반기를 들었다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 당할지 몰라 너무 세게도 못하겠다’는 자조 섞인 말에서 보듯 강력한 전선을 구축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올해 신입사원을 모집하지 않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곧이어 대량 감원사태가 벌어질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정부 전체가 고용창출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약가인하로 인해 제약업계에서는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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