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준위 방사능 물질 처리 대책 없이 ‘지지부진’

방사능 아스팔트 처리 문제를 놓고 노원구와 중앙정부가 심한 갈등에 빠졌다.
노원구에서는 자신들은 방사능 폐기물 발생자가 아닌 발견자라는 입장으로 폐기물 처리에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에서는 노원구 관내에서 발견된 것이기 때문에 노원구에서 처리하라고 맞서고 있다.
처리비용도 문제지만 이번 방사능 아스팔트와 같은 저준위 방사능 물질에 대한 처리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주민들과 지자체 간 불신의 골이 깊어질 뿐만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와 중앙정부와의 갈등은 전국 어디에서도 일어날 가망성이 높다.
이 때문에 노원구와 정부의 갈등에 국민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방사능 아스팔트 처리를 주장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노원구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노원구 월계동 ‘우이천로2-나’의 방사선 수치가 주변보다 높다는 신고에 따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원자력기술원)이 해당 도로의 26개 지점을 조사한 결과 대기 중의 평균 방사능 수치(140nSv․나노시버트)보다 10배가량 높은 수치가 나왔다.

 

이에 대해 원자력기술원은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며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원자력기술원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자체 측정 결과 그 수치가 최대 2500nSv까지 나왔다며 체르노빌 방사선 관리기준을 들어 강제이주 조치를 취해야 할 수치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고 결국 노원구는 해당 구역의 아스팔트를 파헤치기로 결정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폐기된 아스팔트 이리저리로 옮겨 다녀


노원구는 파헤친 아스팔트를 우선 관내 폐수영장으로 옮겼다. 하지만 주변 주민들이 반발하자 지난 18일 구청 후문 건너편 공영주차장으로 옮긴 후 방수포를 덮어 쌓아뒀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공영주차장이 위치한 상계10동 주민들이 다른 동네에서 파헤쳐진 방사능 물질을 자신들의 주거지역으로 옮겨온 것을 두고 구에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노원구청 옆에 천막을 치고 하루 빨리 방사능 아스팔트를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관태 ‘노원구 방사능 폐기물 이전 촉구 대책위원회’ 간사는 “근처에 있는 여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방사능 피해자인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다”며 “구청에서는 잠깐 동안만 적재한다고 하지만 잠깐은 없다. 상계동이 봉인가?”라고 분개했다.

 

김 간사는 “처리 계획도 마련하지 못하고 무조건 뜯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라고 되물으며 “돈이 없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지역에서 치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원구에서도 주민들의 반발에 대해 그 이유를 모르는 바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처리 계획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 아스팔트를 뜯어야만 했느냐는 주민들의 항변에 노원구청 관계자는 “관계 법령에는 방사능 물질이 발견되면 철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일에 대해서 면피하거나 발을 뺄 의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방사능 물질 폐기에 대한 지침만 제대로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구 예산을 마련해 방사능 아스팔트를 처리할 수 있지만 당장은 예산이 부족한 부분과 함께 이번 같은 경우가 전국에서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사실 노원구와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정부에서도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어떤 규정도 찾을 수가 없다.

 

실제로 일반병원 X선과에서 사용되는 의료품에 대해서도 방사능 물질 폐기 규정이 갖춰져 있지만 아스팔트에 대해서는 폐기 규정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노원구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방사능 물질이 검출된 아스팔트를 파헤치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규정에 따라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도록 도로를 덧씌우는 것도 불가능했다.


발생자 누구로 볼 것인가가 관건


이번 노원구 방사능 아스팔트 처리와 관련된 갈등의 주요 내용은 바로 비용을 누가 집행하느냐로 귀결된다. 방사능 물질을 발생시킨 측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으로  방사능 아스팔트가 깔려 있던 노원구가 발생자라며 폐기비용을 부담하라는 자세다.

 

하지만 노원구는 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노원구 관계자는 “만약 방사능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과자를 사서 나눠먹어 생긴 피해에 대해 과자를 산 사람이 발생자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과자를 만든 회사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방사능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재료를 납품한 업체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만약 도로를 시공함에 있어 방사능 검출 여부를 측정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중앙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사태가 발생한 직후 외국 출장을 취소하고 돌아와 빠르면 일주일 길어도 한 달 이내에 방사능 아스팔트를 처리하겠다며 주민들을 설득시켰다. 그러나 주민들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재 경주에 건설 중인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은 내년 말에나 완공되지만 당장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저장할 수는 있어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결국 처리 비용에 대한 노원구와 중앙정부가 타협을 할 경우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타협의 시간이 길어질 경우 노원구는 현재 적재된 방사능 아스팔트를 한전중앙연수원에 임시로 적재하거나 원자력 기관들만 알고 있는 장소에 보관할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관계기관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방사능 폐기물 처리 규정 만들어야


노원구는 구청장, 지역 국회의원, 구의원, 주민대표로 구성된 비상대책위를 결성해 정부에 방사능 아스팔트 처리를 촉구하는 동시에 방사능 폐기물 처리에 대해 원자력위원회,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등에도 협조요청을 병행할 예정이다.

 

이번 문제를 두고 전문가 및 시민사회에서는 방사능 아스팔트 처리 문제는 노원구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속히 방사능 폐기물 처리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스팔트 타설 전 원자재에 대한 방사능 검출 여부를 측정한다든지, 현재 타설된 아스팔트에 대해서는 전수조사 진행과 함께 그 책임 소재에 대한 규정을 지금이라도 만들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노원구와 비슷한 시기에 타설된 아스팔트에서 추가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기초단체와 중앙정부가 처리비용 문제로 갈등을 벌이기보다는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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