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잃은 손 대표... 통합 묘수 내놔야

▲ 지난 23일 민주당 중앙위원회에서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뉴시스>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통합이 당의 분열로 가서는 안 된다”

‘통합’을 두고 민주당의 명운이 짙게 깔리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자칫 당이 혼란과 분란에 휩싸이면서 분열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런 눈빛을 보내고 있다.

지난 23일 민주당 중앙위원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는 당초 야권통합에 대한 최고위 추인을 묻는 자리였으나 상당수 중앙위원들이 통합전대에 반대하면서 손학규 지도부의 성토장으로 변했다. 급기야 ‘독자전대파’와 ‘통합전대파’가 맞서면서 온갖 욕설과 야유 그리고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구상은 일그러졌고 묵묵히 고개를 떨궈야만 했다.

민주당 통합문제 놓고 갈등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60년 전통의 역사를 지닌 민주당이 통합문제를 둘러싸고 뿌리 채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통합으로 인한 극심한 갈등과 내홍은 이미 한계점에 다다른 듯 보인다. 당내에서는 이른바 ‘독자전대파’와 ‘통합전대파’가 나뉘면서 갈등관계의 봉합이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10.26 서울시장보선에서 제1야당 민주당은 후보조차 내지 못한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당 지도부는 박원순 당시 무소속 후보를 전면 지원하며 사태를 애써 갈무리 하려 했지만 내홍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김부겸 의원은 “당이 선거대행업체냐”며 당 지도부에 직격탄을 날렸고,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지도부의 통합론에 반대하며 민주당 독자전대를 주장했다.

진보정당 등의 불참으로 통합은 당초 계획했던 범야권대통합에서 ‘중통합’으로 선회하면서 민주당과 ‘혁통’ 중심의 통합으로 귀결됐다.

당내 일각에서는 열린우리당 세력이 ‘혁통’에 대거 포진돼 있는 점을 지적하며 복당형식의 통합을 주장했다. 여기에 통합이 지분나누기로 비치면서 당내 반대기류가 심해졌고, 당헌당규에 위배되는 절차상의 문제까지 제기됐다.

‘손 대표가 당을 말아먹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지만 손 대표는 이러한 목소리를 외면한 채 통합의 당위성만을 강조했다. 결국 당원들 사이에는 “손 대표가 대권만을 생각하고 당의 중요한 철학이나 역사를 저버렸다”는 비난이 일었고, 지역원외위원장은 지도부의 전면사퇴와 비상대책위 체제전환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중앙위, 손 대표의 성토장 되다

지도부는 지난 23일 중앙위원회의를 소집하고 통합문제를 최고위에 전권 위임하는 내용의 추인을 묻기로 했다.

“FTA날치기 사태로 통합에 힘이 실린 것 같다. 분위기가 좋다”던 민주당 핵심관계자의 말과는 달리 민주당 영등포당사에 모인 당원들은 “목숨 걸고 지킨 당을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놓을 수가 있냐”며 지도부의 통합방식에 강력히 반발했다.

특히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하려하자 일부 중앙위원들은 “무엇이 두려워 비공개로 하느냐. 한나라당처럼 통합안을 날치기 하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또 다른 중앙위원은 “한미FTA 날치기도 막지 못한 주제에 무슨 통합이냐”며 “손학규는 사퇴하고 물러나라. 한나라당으로 돌아라가”라는 조롱 섞인 야유까지 이어졌다.

지도부에 대한 본격적인 포문은 당권주자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열었다.

박 전 원내대표는 “통합에 대해 누가 반대하나. 그런데도 언제 한번 진지하게 토론을 해봤나. 어떤 노력도 없이 ‘나를 따르라’는 식의 리더십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절차상의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신설합당이나 흡수합당만이 신설정당이 가능하다”며 “세력이나 개인은 입당이나 복당 대상인 만큼 정당법에 따라 합당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끼리를 해체해 개구리 먹이로 줄 순 없다”고 지적했다.

유선호 의원은 “지도부가 통합을 추진하다가 당이 오히려 분열되고 와해되고 있다. 독자전대를 먼저 갖고 이후 통합전대를 여는 차선책이 당의 분열보다 낫다”고 주장했으며, 부산시장에 출마했던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서울시장 후보도 못 내고, 한미FTA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했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도 욕하고 있다”고 공세를 폈다.

한 치 양보 없는 ‘통합논쟁’... 난항예상

민주당과 ‘혁통’ 간의 통합문제는 당과 세력(또는 당)의 연합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과거 민주당에서 쪼개져 나온 열린우리당 세력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혁통’과의 통합에서 구 민주당계와 호남중심 의원들은 이들의 ‘원죄’를 상기하며 복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당도 아닌 세력과의 통합은 불가하며 더욱이 그 상대가 ‘혁통’이라면 더더욱 복당형태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현재 정치적 역학관계가 다양하게 얽히면서 이에 따른 이해관계도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연스레 ‘민주계=독자전대’ ‘열우당계=통합전대’의 등식이 성립됐으며, 전대방식을 놓고 당내 혁신파와 온건파가 나뉘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여기에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면서 지분, 공천, 기득권, 세 확장, 대의, 정권탈환 등 다양한 입장이 상충하면서 서로 간 신경이 곤두서있다. 그렇다보니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한 치의 양보가 없는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중앙위원회 결과는 예상됐던바”라며 “내년 총선에 있을 공천권 싸움과 대선에서의 입지강화를 위한 밥그릇 싸움이 결국 이 같은 결과를 불러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학규 대표도 여기서 멈출 수 없고, 사퇴도 힘들 것”이라며 “당이 당장 분열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분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민주당 중앙위원회가 있던 다음날 ‘혁통’은 성명을 통해 “중앙위 결과에 실망했다. 국민의 요구를 받아 안지 못하는 민주당의 현실에 개탄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가칭 ‘시민통합당’을 결성, 12월 중순 창당을 목표로 중앙선관위에 창당준비위원회를 등록했다.

혁통은 지금까지 창당준비위를 구성해 민주당과 합당하는 방식을 검토해왔지만, 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라 합당의 법적 요건을 갖추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통합을 둘러싼 민주당내 갈등이 상당한 만큼 혁통과의 통합은 앞으로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중앙위원회의 이후 힘을 잃은 손학규 대표가 통합의 돌파구를 제시해야 함에도 이렇다 할 제안 없이 통합의 당위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혁통’을 비롯한 당내 ‘통합전대파’들은 통합의 시계바늘을 바라보며 손 대표의 묘수를 기다리고 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