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막장드라마?

현직 여검사가 내연 관계를 맺고 있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로부터 사건 청탁의 대가로 고급 승용차와 수백만 원 대의 명품 가방을 받았다는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검·경 수사권을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이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터진 ‘벤츠 여검사’ 사건은 검찰에 치명타를 입힐 전망이다. 또 법적인 도움이 필요하던 여의사에게 접근해 거액을 뜯어내고 사기결혼까지 한 전직 경찰서장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총경 출신이란 이력을 내세운 사기행각으로 철창신세를 지게된 것. 경찰은 이번 사건으로 재판부가 “공권력과 사법절차에 불신을 초래한 것”라고 지적했듯 경찰의 덕목인 도덕성에 큰 흠집을 입게 됐다. 



사건청탁 대가로 벤츠 승용차·샤넬백 등 ‘후원’ 받은 의혹

“경찰의 꽃인 총경 출신” 수차례에 걸쳐 수억 원 뜯어내



검찰과 경찰이 각각 ‘벤츠 여검사 사건’과 ‘총경 출신 사기사건’으로 도덕성에 대한 지탄을 받게 됐다. 특히 검찰은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에 이어 1년 만에 터진 이번 악재로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내연에 청탁의혹까지 일파만파


부적절한 남녀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 ‘벤츠 여검사 사건’은 현직 검사장급 인사 등도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형법조비리 사건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스폰서 검사’ 파문이 재연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처한 상황이다.


수도권 검찰청에 근무하다 최근 사표를 쓴 이모(36·여)검사는 2007년 부산지부에서 근무했던 최모(46) 변호사를 만나 내연관계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검사는 최 변호사로부터 로펌 소속 벤츠 차량과 법인 카드를 제공받아 사용했는데, 이 법인 카드로 한 달에 수백만 원씩 쓴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 같은 ‘후원’은 최 변호사의 청탁에 응해준 대가로 이 검사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 난 뒤에도 지속됐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이 검사는 지난해 11월 말께 540만 원 상당의 샤넬 가방을 구입한 뒤 최 변호사가 사준 휴대전화로 “백 값 보내도 268-00-000000 신한 540만” 이란 자신의 계좌로 대금지급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5일에는 최 변호사가 서울 강남 한 백화점에서 최씨 법인 카드로 539만 원을 결제했다. 이 밖에도 사건 청탁 등과 관련한 문자메시지를 수시로 주고 받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최 변호사가 또 다른 내연녀로 알려진 대학강사 이모(39)씨와 만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최 변호사가 지난 6월 이 검사에게 “헤어지자”고 통보한 뒤 내용증명까지 보내 벤츠를 돌려받으면서 파국을 맞이했다.


이 검사와 최 변호사의 관계는 최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했던 이 강사의 진정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이 검사와 최 변호사 간 문자메시지도 이 강사가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진정서에 벤츠 승용차 부분이 언급돼 있었지만 검찰은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비위 의혹을 받자 이 검사는 지난달 일신상 사유로 사표를 제출해 아무런 문제없이 수리됐다.


이 강사의 진정에는 최 변호사가 이 강사의 고소 사건을 무마시키기 위해 로비를 했다는 내용도 담겨져 있다. 이 강사는 최 변호사가 부산 지역 법원에 근무하는 부장판사(50)에게 고급 와인과 상품권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이에 최 변호사가 법원·검찰에 광범위한 유착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다.


이 같은 ‘벤츠 여검사 사건’에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비난이 일자 검찰은 사상 두 번째 특임 검사팀을 투입했다. 사건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특임검사가 지난 1일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함에 따라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기의 달인’ 총경 출신 K씨


경찰 역시 총경 출신이란 이력을 내세워 여의사와 사기 결혼하고 수억 원을 뜯어낸 전직 총경 출신이 철창신세를 지게 돼 체면을 구기게 됐다.


전남의 한 경찰서 서장을 지낸 K씨는 2002년 말 지인의 소개로 성형외과 원장인 여의사 A씨를 만났다. 당시 A씨는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 측에서 고소를 당한 상태로 법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A씨가 고소와 관련해 서울 강동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안 K씨는 “당신은 운이 너무 좋다. 사건을 맡은 동부지방검찰청장과 아주 막역한 사이다”라며 접근했다.


K씨는 자신에 대해 “나는 경찰의 꽃인 총경 출신으로, 여의도에 정보라인을 가동하는 사무실이 있고 아침마다 대통령을 독대하는 장관을 모시고 있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당시 K씨는 영화제작업체의 회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을 뿐 사건을 해결해 줄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K씨는 또 “청장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청와대에서 힘을 써줘야 한다”며 “내가 돈을 전달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2억5000만 원을 마련해 달라”며 돈을 요구했다. K씨는 A씨가 2002년 12월 불구속 기소된 뒤였는데도 총 9차례에 걸쳐 7억4000만 원을 뜯어냈다.

이후에도 K씨의 사기 행각은 멈출 줄 몰랐다. 2005년 12월 세무서직원 두 명이 A씨 병원으로 세무조사를 나오자, K씨는 “경찰청 정보과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당신의 병원이 국세청 세무조사 타깃이 됐다. 빨리 손을 서야하니 돈을 준비해 달라”고 말해 5000만 원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급기야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하게 됐다. K씨는 결혼 후에도 2008년 7월 A씨 몰래 A씨 명의로 벤츠 승용차 리스 계약을 한 다음 벤츠를 타고 다녔다. 자신이 사기 당한 사실을 결혼한 뒤에야 눈치챈 A씨는 K씨와 이혼하고 검찰에 고소했으며 현재 재산분할청구소송이 진행 중이다.


재판부는 “A씨가 법률문외한이란 사실을 이용해 장기간에 걸쳐 거액을 편취했다”며 “공권력과 사법절차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고 K씨의 사기행각으로 A씨의 재산적·정신적 고통이 극심하다”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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