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쉬 록 명반의 재림~ 2007년 이후 새롭게 울리는 록의 성가!

극 독백처럼 그려내는 가사내용은 숱한 메모 결과, 시 쓰듯 꾹꾹 담아냈다 뱉어

새앨범, 만장일치 호평…‘경외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밴드적 싱어송라이터의 걸작’

사진: 플럭서스 뮤직

뮤지션 이승열(42)이 4년 만에 정규 3집 ‘Why We Fail’(우리는 왜 실패하는가)로 돌아왔다. 한 달 소극장 콘서트, 앵콜 콘서트, 지방 콘서트, 연말 록 페스티벌까지 활동 반경도 넓다. 3집에 쏟은 정성을 내년 봄까지 보여준다고 하니 열성팬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다. 아직까지 이승열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그를 설명하자면 뮤지션겸 방송인 윤종신의 말을 빌리는 것이 좋겠다. 케이블 채널 ‘비틀즈코드’의 MC 윤종신은 지난 9월 ‘이승열, 씨스타’ 편 방송에서 이승열을 “가수들이 사모하는 가수, 부러운 목소리의 소유자”라고 설명한 바 있다. MBC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출연이 유력했다는 일화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이승열은 1994년 결성된 ‘유앤미블루’를 통해 국내가요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유앤미블루’는 단 두장의 앨범만을 내놓은 채 해체됐으나 (Nothing`s Good Enough, Cry… Our Wanna Be Nation)그 두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그의 지난 10년을 3집 앨범 활동과 관련지어 인터뷰 했다.


-‘Why We Fail’ 앨범은 몇 곡 정도를 만들어서 추려낸 건가. 
▶ 20곡 이상을 만들었고, 그 중 앨범 콘셉트에 맞는 곡들을 최종 수록했다.

-3년 가까이 작업을 진행하다가 앨범 콘셉트가 전면적으로 수정됐다고 들었다. 수정되지 않았었다면 컴백이 빨라졌을 텐데.
▶ 첫 번째 작업이 뜻대로 마무리 됐다면 그랬을지도. 그런데 중간에 ‘U&Me Blue’(유앤미블루)를 다시 시작했고 다른 작업도 했기 때문에 또 모르겠다.

-12곡이 담긴 정규앨범이 20곡 내외로 만들어졌다는 게 놀랍다. 어떤 싱어송라이터는 수십곡, 많게는 수백 곡을 만들어 놓고 또 만들면서 ‘베스트’를 뽑지 않나.
▶ 곡을 빨리 쓰지 않는다. 끝까지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곡도 많다. 그럴 때는 ‘못 쓰겠다’ 해서 치워버린다. 간혹 한 번에 해결되는 곡도 있지만.

-2003년 ‘이날, 이때 ,이즈음에…’, 2007년 ‘In Exchange’, 그리고 올해까지 4년 주기로 나타났다. 잊혀질 즈음도 아니고, 잊혀진 후의 등장이다. 오랜만에 마주하면 복합적인 감정이 들 것 같다.
▶ 내가 바라보는 팬들은, (나를 잊는)일반 팬들은 아니다. ‘팬’들과의 끈이 단절된 적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재정립도 필요 없다. 모든 활동을 놓은 것이 아니니까. 단지 수줍게, 자신 있게 툭 던져놓는 거다.

-8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모였던 ‘2010 지산 락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반가우면서도 의외였다. (작년 ‘지산락페’는 ‘MUSE’, ‘Pet Shop Boys’등의 라인업으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다)
▶ ‘지산락페’ 뿐만 아니라, 5~7월의 페스티벌, 소극장 공연에 참가했다. 정규앨범만 듣던 사람들의 생각처럼 계속 쉬다 나온 것은 아니었던 것이지.  
-가사나 멜로디의 진지함을 봤을 때, 밤에 모든 것들이 이뤄질 것 같다. 작업 스타일이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먼가.
▶ 둘 다 적응할 수 있다. 아침을 꺼려하지 않는다. 오전 중에 곡의 실마리가 잡힐 때도 있다. 심야에 영감이 더 자주 떠오르는 건 맞다.

-앨범 작업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가사에도 있는 것 같다. 일상에 밀접한 통찰력이 보인다고 할까. 외로움이나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좋다.
▶ 가사를 결코 쉽게 쓰지 못한다. 적어 놓지도 못한다. 메모는 하지만 그것을 바로 옮길 수는 없다. 한 페이지에서 한 단어만 건져내기도 하고, 메모 자체로 그칠 때도 많다.
몇 줄을 위해 하루 종일 스크린을 응시할 때도 있다.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나
▶ 고민하지 않고 나오는 단어들이 있지 않나. 영어단어가 될 수도 있고. 그 소재들이 뇌리에 남아있다. 그것들을 풀어나간다. 기억해두고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스크린 노트북과 맞장 뜨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니’ 물으며 나아간다.

-가사 작업이 곡 사운드 작업보다 어려운가.
▶ 그렇다.

-3장의 앨범으로 음악색깔은 확실히 보여줬다. 그런데 어떤 가수를 보면 추구하는 장르와 평소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도 하다.
▶ 내 경우 음악이 내 성격을 거의 보여준다고 보면 된다. 이미지 만드는 것이나 연출에 소질없다.

-‘Why We Fail’을 통해 ‘새로운 팬들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있었나.
▶ 그런 생각은 안했다. 나랑 비슷한 정서·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단순히 많은 팬을 바라는 것과 나와 비슷한 이들이 내 음악을 접하길 바라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앨범이 발매된 것 자체를 몰라 지나쳐버리면 물론 아쉽겠지만.

-‘패닉’의 리더에서 솔로로 전환한 이적은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겨 음악색깔이 변했다고 했다. 패닉 때는 강한 메시지가 담긴 도발적인 곡도 선보였는데 말이다. 공감되는 부분이 있나.
▶ 결혼 당시(2001년)에는 ‘음악이 변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지만 3집까지 오면서  그 영향력도 희미해졌다.

▲ 사진: 플럭서스 뮤직

-3집을 처음 들었을 때 ‘마지막 곡까지 완벽할 것 같다’라는 예감이 2~3초 만에 들었다. 첫 곡 ‘Why We Fail’ 도입부의 키보드 사운드의 매력 때문이었다.
▶나도 좋아하는 사운드다. 그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데 굉장히 오래 걸렸다. ‘Holy’한 사운드를 좋아하는 편인데, 내가 듣기 좋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소리를 만들어 놓으면 그에 맞춰 노래할 때 더 몰입이 된다.

-음악 홍수다. 접할 수 있는 양이 굉장히 늘었다. 실상 그렇지 않더라도 수많은 인터넷 음원차트에서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고. 때문에 요즘 가요는 참을성 없는 리스너들을 순식간에 사로잡으려 애쓴다. 
▶ 나 같은 경우는 곡을 구성할 때 서두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도직입적인 곡도 있지만  대부분 완전히 내 위주다. 주목받기 위한 강박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열번 지나치다가 열한번째에 ‘이게 여기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더 소중하다.

-2005년 개봉한 한국영화를 두고 모 평론가는, “완성도가 떨어지진 않으나 영화제 수상을 노린 의도가 짙다”라는 감상평을 올린 적이 있다. 유앤미블루 때부터 평론가들의 극찬이 따라다니지 않았나. 의식하게 되면, 그들 위주의 음악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앨범 출시가 다가올 때, 그런 평들이(걸작, 명반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평가) 거슬릴 때가 있다. 그래서 한 번은 ‘리뷰권을 아티스트가 지정할 수 있다면 상황이 어떨까’하는 상상에 웃기도 했다. 강압적으로 ‘당신만 평가해도 좋다’ 이렇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한다니, 민망한 짓이다. 평론가들의 리뷰는 나도 잘 이해 못하는 부분이 있다. 가끔은 ‘이런 방향으로서의 해석은 좋은데’하고 공감하기도 하지만. 

-음악은 음악으로부터 나오나.
▶ 머리가 아프고 답답할 때 음악으로 해결할 때가 있다. 기존에 듣던 것들 외에도 새로운 음악 듣는 것을 즐긴다.

-이번 앨범을 내놓을 때, 따라 부르기 좋은 곡, 흔히 말하는 노래방용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 대표적으로 한두 곡을 약간은 염두 한다. 노래방 수록곡이 먼저 정해지는 건 아니고, 익숙해질 요소가 있는 곡들이 알아서 선정 되겠지.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가사의 묘사가 마음에 든다. 어떤 대상이 있나.
▶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신 전달해주는 가사 속 인물을 묻는 건가. 개인적인 첫사랑, 옛사랑을 묻는 거라면 그런 대상은 없다. 솔직히 사랑이야기를 쓰는 게 제일 싫다. 실의에 시달릴 정도의 사랑을 해본 적 있는지도 모르겠고. 다른 가수의 가사를 보면서 누군가가 떠올린 적은 있지만 내가 써내려 가면서 얘기한 적은 없다고 본다.

-자신의 앨범을 작업하면서도 틈틈이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주는 이들도 있지 않나. 곡을 써주는 일이 생길 수 있을까. 
▶ 없다. 돈 받고 곡을 쓴다는 것은 나의 상품화이지 않나. 그런데 그쪽 계통에 익숙해지지 못할 듯하다. 내 기준에서 양쪽을 다 만족시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테고, 내키지 않는다. 서로 잘 알아야 가능한 일인데 그런 기술이 별로 없다. 만들어놓고서도 부끄러워 할 거다.

-올해 중반 MBC ‘나는 가수다’의 출연 제의에 관심을 표했다.
▶ 지난 5월로 기억하고 있다. 관심의 계기는 ‘앨범 홍보에 도움이 되겠구나’라는 생각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출연하게 된다면 부모님이 기뻐하실 것 같았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해보자라고 마음을 고쳤었다. ‘쟤 뭐야’ 이런 반응 등도 나름 재밌을 것 같고 궁금하더라. 지나고 났을 때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나가수’의 신정수 PD는 이승열을 섭외 1순위로 점찍었지만 프로그램 취지와 이견 조율에서 걸려 성사시키지 못했다)    

-현재 ‘나는 가수다’, ‘슈퍼스타 K’ 등에서 부르는 리메이크 곡들이 가요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원곡 제 2의 전성기를 넘어, 원곡을 부른 가수도 누리지 못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현상을 가요계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어떻게 보나.
▶ 리메이크는 아무리 잘해봐야 리메이크일 뿐이다. 창조적인 곡을 구경하기는 앞으로도 힘들 것 같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의 위치는 당장 보이는 그대로다.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뮤지션들을 받쳐 주는 여건이 조성돼 있는 것도 아니고, 방송사가 가져가는 상황인데, 오락뿐이지 않을까. 상업적인 유익함에는 동의한다.

-얼마 전에는 ‘나가수’에 출연한 조규찬이 2회 만에 탈락했다. 조규찬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보컬의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청중 평가단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반면 조규찬이 선곡, 편곡의 방식에서 고집을 부린 탓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고. 출연했다면 본래 색깔을 고집 했을 것 같나, ‘나가수’화 되어 불렀을 것 같나. 
▶나도 (조규찬과) 똑같이 선택을 거다.

-가수 적우의 호응도로 봤을 때, ‘나가수’ 섭외가 다시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시 제의가 들어온다면
▶안 한다. 어떤 이유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더라도, 내 음악에 감동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신경 끄게 되더라.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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