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개입의혹 제기... “3.15 맞먹는 국기문란행위”

▲ 당 쇄신안 발표하는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중앙선관위에 대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사건이 파문을 일으키며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이버테러에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인 최구식 의원의 9급 비서관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민주당은 “3.15부정선거와 같은 국기문란 행위”라며 대여공세를 강화하는 한편, 한나라당은 유승민·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의 동반사퇴에 이어 홍준표 대표까지 사임하는 등 분열된 양상을 보이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더욱이 국정원이 이번 사건을 사전에 인지했음에도 이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다는 점과 사건의 성격, 규모, 막대한 소요자금 등을 감안할 때 비서관 단독범행이라 보기에는 정황상 무리가 따른다는 점에서 여러 의혹과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투표율 낮춰라”... ‘디도스 공격’ 감행

10.26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던 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마비되면서 출근길 투표장을 찾는 시민들이 상당한 불편을 겪었고, 투표장소를 모르는 유권자들은 결국 투표를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지난 서울시장 보선은 투표율이 막판 변수로 떠오면서 투표율이 높을 경우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유리하고, 반대로 투표율이 낮을 경우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이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았던 선거였다.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최구식 의원 비서관 공모씨는 지난 8일 경찰조사에서 “나경원 후보를 돕는 것이 최구식 의원을 돕는 길이라 생각했다. 젊은 층의 투표율이 선거에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투표소를 못 찾게 하면 투표율을 떨어뜨리지 않겠나 생각했다”며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그러나 배후세력은 없었고 자신의 단독범행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공씨는 재보선 하루 전인 지난 10월 25일 IT업체 대표 강모씨에게 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지시한 뒤 박희태 국회의장의 의전비서 김모씨와 서울 강남구 모 룸살롱에서 술자리를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디도스 공격’에 대한 사실을 김모씨에게 알렸다고 진술했다.

한편, 박 의장의 비서관 김모씨는 공씨를 만나기 앞서 공성진 전 의원 보좌관인 박모씨와 1차 술자리를 가졌고, 이 자리에는 정두언 의원의 비서인 또 다른 김모씨와 청와대 국내의전팀 박모 행정관이 동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정부여당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개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디도스 악재’에 한나라당 분열 가속화

‘디도스 범행’의 주변인물이 한나라당 주요 의원들의 비서관으로 밝혀지면서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윗선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디도스 악재’로 한나라당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더욱이 유승민 원희룡 남경필 최고위원이 “존망의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며 동반 사퇴하는 등 당이 분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여기에 당내 쇄신파 의원들의 탈당 가능성까지 점쳐지면서 한나라당이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친박(박근혜)계 유승민 최고위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절망과 분노 앞에 참담한 마음으로 저희의 잘못을 사죄한다”고 밝혔으며, 원희룡 최고위원은 “디도스 사건은 제2의 차떼기 사건이다. 지도부 총사퇴 후 당 해체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경필 최고위원은 “당 내부에서 혁신을 해보려 했지만 계파의 장벽과 홍준표 대표의 인식차이 등으로 그 공간을 도저히 열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며 사퇴를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일 홍준표 대표까지 전격 사퇴를 결정하면서 한나라당 지도부는 출범 5개월 만에 또 다시 표류하는 등 ‘디도스 사태’로 당이 그야말로 혼란의 소용돌이로 급속도로 빨려들고 있다.

홍 대표의 사퇴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당 안팎의 거친 사퇴요구에도 ‘정면 돌파’와 ‘버티기’로 응수하며 대표직을 지켜왔던 그였다. 지난달 쇄신연찬회에서 ‘재신임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도 그랬고, 지난 7일 의원총회에서 ‘재창당 카드’를 제시했을 때도 그랬다. 결국 쇄신파 의원들의 공세에도 대표직을 유임할 수 있었던 그는 끝내 현 상황을 통감한 듯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

‘재창당’ 수순 밟기... ‘박근혜 등판론’ 제기

지도부의 잇단 사퇴로 한나라당이 파국을 맞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의 조기 등판론이 힘을 얻고 있다. 당내 최대주주이자 유력 대권주자인 박 전 대표가 어려운 시기에 당을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설 경우 당내 권력변화는 물론 당·청 및 여야관계에 있어서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박 전 대표가 최근 발언한 “재창당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에서도 읽히듯 대대적인 당내 혁신 또한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 개혁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도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갖고 중도 보수신당 창당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창당과정에서 박 전 대표가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줄 것을 주문하고 나섰다. 아울러 당의 변화와 쇄신방향이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지 않을 시 비상한 결단을 내리겠다며 탈당을 예고하기도 했다.

‘민본21’의 간사인 김성태 의원은 “당이 한치 앞도 못 보는 위기 상황인데 우선 당을 살려야 되지 않겠느냐”며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당원들과 국민 앞에 나서서 당을 쇄신시키는 데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지금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당의 중진 지도자는 썩 많지 않다”며 “현재 가장 선두주자인 박 전 대표가 당을 쇄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박계 의원들은 그간 박 전 대표가 당 전면에 나서는 것이 시기상 맞지 않을뿐더러 추후 총선결과에 따라 내상을 입을 수 있는 만큼 이를 극구 반대했으나, ‘디도스 사태’로 당이 분열위기에 처하면서 ‘박근혜 등판론’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친박계 이한구 의원은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당 상황을 보면 박 전 대표의 등판을 늦출 만큼 그렇게 여유부릴 처지는 아닌 것 같다”며 “대부분의 의원들이 박 전 대표의 등판을 원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성헌 의원도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다. 국민들에게 새로운 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통합과 단결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면 이럴 때 일수록 박 전 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친이계, 친박과 온도차 보이며 ‘당해체론’ 주장

박근혜 전 대표의 조기 등판이 초읽기에 들어서면서 범여권의 또 다른 대권주자 정몽준 전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 전 의원 등 3인방은 수도권 친이계 모임인 ‘재창당모임’의 측근의원들을 통해 손을 잡은 모양새다. 이를 통해 박 전 대표를 적극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친이-친박 모두 ‘박 전 대표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당 쇄신에 있어 이들 진영은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현재 친박계는 박 전 대표 중심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주장하는 반면, 친이계에서는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되 쇄신의 전권을 쥐는 것은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 쇄신을 둘러싸고 향후 계파 간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친이계 진영에서는 당을 해체하는 수준의 재창당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계파는 물론 당 안팎의 인사를 두루 포함시키는 재창당추진위를 만들자고 제안해 놓은 상태다.

‘재창당모임’ 안형환 의원은 “재창당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의원총회와 연찬회를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김문수 지사의 측근인 차명진 의원은 “재창당 정신에 입각해 애국심 있는 인사를 모시자”며 외부인사의 영입을 강조했다.

차 의원은 또 “창당기구 구성에 김문수 지사가 참여할 뜻이 있다”고 밝혔으며, 나성린 의원도 “박 전 대표와 외부 인사가 공동위원장을 맡을 수도 있다”며 박 전 대표 이외의 대권주자들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런 가운데 친박계 이성헌 의원은 빠르면 1월경에 반(反)박근혜 의원들과 당내 쇄신파 의원들 중심으로 신당을 창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성헌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희룡 최고위원이 지난 12월 초 ‘빠르면 1월에 반박(반박근혜), 비박(비박근혜), 연찬회 쇄신파들이 모여 창당이 가능하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며 “그런 점에서 원 최고위원의 사퇴는 진정성 부분에서 다소 의구심이 간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원 최고위원이 ‘결혼은 시간이 걸리나 이혼은 금방 한다’는 말을 한 것을 기자들을 통해 들었다”며 “그가 실제 당을 개혁하기 위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고 재창당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당 창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 한나라당 유승민,남경필,원희룡 최고위원이 지난 7일 사퇴했다. 디도스 사건으로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당 쇄신문제를 두고 결단을 내린 모양새다. 홍준표 대표의 동반 사퇴까지 거론되며 처음 열린 이날 의원총회에서 사퇴의사를 밝인 최고위원들과 홍 대표의 반응을 취재하려는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몰려든 취재진이 신기했을까? 몇몇 의원들이 스마트폰으로 기자들의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분위기 파악이 안된 듯 보인다.<글/사진=정대웅 기자>

홍준표 전격 사퇴... 한나라당 표류

퇴진압박에도 불구하고 ‘버티기’로 응수하던 홍준표 대표가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지난 7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재창당 카드’를 제시한데 이어, 8일에는 ‘재창당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겠다며 당 쇄신안을 전격 발표했던 그였기에 홍 대표의 자진사퇴는 당내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집권여당의 수장으로 선출된 홍준표 대표는 10.26 서울시장 보선의 패배와 잇단 막말 파문 그리고 디도스 사건이 터지면서 사퇴압박이 거세졌고, 결국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불명예를 안은 채 자진사퇴를 결정했다.

홍 대표는 지난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집권 여당 대표로서 혼란을 막고자 당을 재창당 수준으로 쇄신하고 내부 정리를 한 후에 사퇴하고자 했던 내 뜻도 기득권 지키기로 매도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더 이상 당내 계파투쟁, 권력투쟁은 없어야 한다. 모두 힘을 합쳐야만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당의 단합을 주문했다.

‘디도스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홍 대표에게 동반 사퇴할 것을 요구했던 남경필 최고위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당 지도부의 전원사퇴로 이제 당 쇄신을 추진할 물꼬가 열렸다”고 밝혔다. 그는 “홍 대표의 충정을 높게 평가한다”고 전한 뒤 “당 쇄신 방법으로 많은 의견들이 나왔지만 추진할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문제였다”며 “모두가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 여론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혁신적 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공세 강화... 특검준비 ‘돌입’

디도스 사건이 한나라당 지도부 사퇴는 물론 당 해체를 불러올 정도로 정치적 파장이 커지면서 민주당은 연일 한나라당에 대한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비서관 단독범행이라고 하기에는 정황상 무리가 따른 만큼 사건의 기획자와 몸통을 밝히라는 것이다.

더욱이 국정원이 이번 사건을 사전에 인지했음에도 이를 제때 대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민주당이 선관위의 서버 로그파일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한 이번 사건에 대한 다양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특검을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세의 고삐를 더욱 바짝 죄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사이버테러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백원우 의원)는 9일 기자회견을 갖고 “경찰이 한나라당 윗선을 밝혀내지 못한데 대해 유감”이라며 “검찰 수사가 이달 말까지로 예상되는 만큼 특검 준비기간을 감안, 이에 대한 준비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요구대로 특검 법안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잇단 사퇴로 여권이 분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요구하는 특검 법안을 한나라당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국민적 관심과 정치권의 흐름이 한나라당 쇄신과 재창당 바람으로 급속도로 옮겨가면서 사건에 대한 본질은 사라진 채 ‘디도스 사건’ 자체가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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