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한나라당의 창당 14주년이었다. 창당기념식은 30분 만에 끝났다. 참석자 수가 유례없이 적었다. 분위기가 무겁고 착잡했다고 한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심 이반을 확인한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에 대한 짙은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이런 국면을 타개키 위해 한나라당은 당명 변경을 포함해 재창당 수준의 당 쇄신을 천명했다. 지난주 ‘일요서울’은 한나라당 재탄생 시나리오에 관한 극비문건을 단독 입수하여 공개했다. 한나라당의 기본은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큰 틀 속에서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시장을 중시하며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또 양극화 해소와 사회안전망 확보, 지역주의 극복 등의 과제가 있다. 10년 만에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법치를 오남용하지는 않았는지, 시장 자유 논리를 있는 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합리화 하지는 않았는지, 극복해야 할 지역주의에 더 매몰 당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들이 많다.

한나라당은 2004년에도 당명 개정을 추진한바 있다. 2002년 대선 자금 불법모금으로 ‘차떼기 당’이란 오명을 덮어 쓴데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치명상을 입어 창당 수준으로 당을 재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새 당명 공모까지 했지만 개명은 끝내 무산됐다. 한나라당 이름으로 치룬 2004년 17대 총선 민심은 탄핵 역풍 속에 그래도 거대여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 121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당명 변경은 지지율이 급락한 정당이 동원하는 마지막 방책이다. 동시에 당 강령을 바꿔 민심이반과 제3 정치세력에 대한 대중적 희구에 맞서는 것이다. 문제는 당명 개정 같은 묵은 레퍼토리만으로는 안된다는 점이다. 진정한 인적 쇄신이나 체질 변화가 없으면 무늬만 바꾼 ‘신장개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결국 ‘달라진 게 뭐냐’는 더 따가운 비판, 더 깊은 불신이 쏟아질 것이다.

2004년 한나라당은 포용적 대북관계를 천명한 당헌 개정을 했으나 곧 국가보안법 파동을 겪으며 ‘수구꼴통’이라는 이미지를 더 굳히고 말았다. 개혁 공천이 파괴력이 큰 것은 물갈이에 수반되는 조직의 아픔이 큰 만큼 유권자들이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비리 연루자는 공천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젊은 피를 수혈해서 소신 있게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다.

반성하기보다 서로가 ‘네 탓’이라고 삿대질을 해대는 모양이 ‘한나라당의 지리멸렬이 머잖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친이건 친박이건 환골탈태와는 멀어 보인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5년 단임 대통령에 당선된 직전 노무현 대통령까지 네 명 대통령 모두가 임기 중 탈당했다. 당과의 갈등 끝이었다.

이러한 헌정사가 말하듯 우리는 ‘탈당’과 ‘당명 변경’이라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했다. 새삼 한나라당의 쇄신 움직임을 예의 주시케 되는 것은 또 한 번 무늬만 바꾸는 ‘신장개업’으로 유권자 눈 가리는 것 아닌가 해서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얻을 수 있는 이치를 통감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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