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위 전례 없는 성명 “이명박 역적패당과 상종 않겠다”

▲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영결식이 열린 28일 북한 주민들이 김 전 위원장의 운구차량을 가로 막고 서 있다.<평양=AP/뉴시스>

북한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국방위원회가 30일 전례 없이 성명을 내고 “리명박 역적패당과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애도기간이 끝나고 하루 대남 공세의 수위를 높이면서 2012년 남북 관계가 이전보다 냉랭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남북 대화시기에 활발했던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역할도 축소되고, 군부 중심의 선군정치로 김정일 유훈통치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한반도 정세가 대결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김정은 체제의 기본 정책 방향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 북한의 새해 1월1일 신년 공동사설 발표를 앞두고 대남 강경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김정일의 업적으로 핵 보유와 위성(미사일 개발)을 내세우고 군부 강경 세력들이 전진 배치됐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은 전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북 전문가 사이에서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북한이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추도대회를 마쳤을 때에도 일체 조문을 불허했던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대남 비방을 쏟아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충분히 예상된 수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다르게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하는 전문가 그룹 쪽에선 대남 성명의 주체가 국방위이고, 일반적으로 ‘대변인 성명’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이날 ‘민족의 대국상 앞에 저지른 이명박 역적패당의 만고대죄를 끝까지 결산할 것이다’라는 제하의 성명에서 “(이명박 정부는) 온 민족이 겪고 있는 이번 대국상 앞에 유독 남조선괴뢰들만은 천추만대를 두고도 씻지 못할 대역죄를 저질렀다”고 맹비판했다.

이와 함께 “우리의 중대보도가 나가기 바쁘게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와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해외대표부들까지 비상근무태세로 이전시키면서 마치 바라던 긴급사태가 도래한 것처럼, 우리의 체제변화를 유도할 호기라도 온 것처럼 분주탕을 피웠다”며 “바로 이러한 악행의 앞장에 만고역적 리명박 역도가 서 있었다”고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거듭 “우리 수뇌부와 인민대중을 이간시키려고 어리석게 책동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제한된 답례조문단파견조치로 민족의 어버이 품으로 오고파하는 각계각층의 북행길을 전면 차단하는 대역죄를 저질렀다”고 언급했다.

이어 “민족의 대국상 앞에 저지른 역적패당의 만고대죄는 끝까지 따라가며 계산할 것”이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이 흘리는 피눈물의 바다는 그것이 그대로 역적패당을 끝까지 따라가 씨도 없이 태워버리는 복수의 불바다가 될 것이며 터치는 곡성은 괴뢰들의 아성을 짓부시는 복수의 포성으로 될 것”이라고 서슬 퍼런 위협을 퍼부었다.

국방위는 말미에 “우리가 바라는 북남관계 개선은 리명박 역적패당이 떠드는 강경과 유연성, 그것을 뒤섞은 교활한 술수에 기초한 개선이 아니다”며 “자주, 평화, 통일의 기치 따라 역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을 통한 대업”이라고 강조했다.

또 미국을 향해서도 “우리는 이 기회에 남조선 괴뢰들을 포함한 세계의 어리석은 정치가들에게 우리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고 자신감을 가지고 엄숙히 선포한다”며 외부 세계의 인식과 달리 김정은 체제가 굳건할 것임을 재차 천명했다.

김정은 주변 둘러싼 무력 도발 기획자들

이러한 국방위의 성명을 두고 일각에선 북한이 남한과는 대화를 단절하고 미국 쪽으로는 뉴욕채널을 통해 접촉하는 이른바 ‘통미봉남’을 구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선 “복수의 불바다” 또는 “괴뢰의 아성을 짓부시는 복수의 포성”이라는 대목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여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 김정은 후계체제 예상 주요인물.<서울=뉴시스>

김정일 사망 이전부터 ‘수령의 후계자’로서 사실상 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당권과 군권을 장악한 것으로 보이는 김정은의 최측근들이 대부분 군부 내 강경파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그중 주목되는 김정은 시대 파워엘리트 중 군부 강경파로 꼽히는 11특수군단장 최경성 상장이다. 그는 이른바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11특수군단을 이끌고 있다. 이 군단은 최대 20만 이상에 달하는 북한 특수전 부대 중 특수전 사령부로 4~8만명의 최정예들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임무는 유사시 남한 후방 요인 암살, 주요시설 파괴 등 특수전의 선봉에서 남한 주요 군기지를 타격하거나 수도 서울을 혼란에 빠뜨리는데 모든 전력이 집중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지난해 연평도 도발을 실질적으로 수행했던 서해 4군단장 김격식이 김정은의 군사보좌관으로 급부상했다는 사실을 <일요서울>이 최근 복수의 대북소식통의 전언을 통해 확인했다.  

여기에다 미사일지도국장을 맡고 있는 또 다른 군부 강경파인 최상려 상장까지 당 중앙군사위에 전진, 포진돼 그야말로 ‘대남 군사도발 기획자’들이 김정은을 둘러싸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국방위의 대남 불바다 경고가 여느 때와 다른 신호를 함축하고 있다는 불길한 분석이 흘러나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동석 기자>kd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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