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파문 실체적 진실은?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에 시달려 온 중학생 권모(14)군이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집 베란다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권군이 투신 직전 자신의 집에 남기고 간 A4 용지 4장 분량의 유서 내용에는 같은 반 친구 두 명의 가혹행위가 구체적으로 묘사돼 세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권군이 다니던 학교에서 5개월 전에도 한 여학생이 투신자살한 것으로 드러나 ‘늑장대응’이라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 친구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해왔다는 한 중학생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2월 20일 오전 9시께 대구시 수성구 한 아파트 7층에서 권모(14)군이 유서를 남기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숨져 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 A(67)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사진은 권군이 남긴 유서. <뉴시스>

 

“계속 물에 처넣자” 물고문 …사전모의 등 각종 가혹행위
D양 숨진 뒤 학교 측 안이한 대처가 권군 사건 초래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무차별적으로 구타했어요. 또 몸에 칼등을 새기려고 했을 때 실패하자 오른쪽 팔에 불을 붙이려고 했어요”, “라디오 선을 뽑아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 했어요” 권군이 남긴 유서 속에는 지옥과도 같았던 지난 9개월간의 고통이 생생히 적혀 있다.

이 유서에는 자신을 괴롭힌 친구 2명의 실명과 함께 가혹행위의 구체적 내용이 담겨 있다. 권군의 휴대전화기의 문자메시지 속에도 가해 학생들의 압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자 메시지 일부를 살펴보면 “(새벽)2시까지 계속 (게임을)해라” “똥파리보다 못한 놈. 니 내일부터 애들한테 똥파리라고 불리게 될 거다” 등 위협을 가하는 가해 학생들의 협박문자는 지난 9월부터 권군이 숨지기 전날인 지난 12월 19일까지 이어졌다.

게임 때문에 시작된 가혹행위

권군은 중학교 2학년 때 A군, B군과 같은 반이 되면서 친해졌다. 권군의 악몽은 이들과 인터넷 게임인 ‘메이플 스토리’를 함께하면서 시작됐다.

이 게임은 게임 아이템을 사고팔며 게임 케릭터의 레벨을 높여가는 게임이다. 게임을 잘하던 권군에게 A군이 게임캐릭터 레벨을 높여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A군 아이디로 권군이 게임을 하던 중 A군의 게임아이템이 해킹되면서 이들의 사이는 틀어졌다.

권군의 부모가 모두 교사여서 낮 시간에 없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권군의 집으로 찾아가 폭력을 휘두르며 게임을 하라고 요구했다. A군은 10월 중순부터 두 달여 간 권군을 39차례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으며 B군은 19차례에 걸쳐 권군에게 폭행을 휘둘렀다.

또 이들은 자신들의 숙제를 대신하게 하고 교과서를 찢거나 빼앗았으며 각종 잔심부름을 시키는 등 노예처럼 권군을 부렸다.

경찰에 따르면 권군이 이들에게 당한 폭행은 유서에 드러난 가혹행위보다 더 심각했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권군 유서에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동급생 C군도 권군의 집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들은 지난 12월 14일 권군을 한차례 물고문한데 이어 16일에도 “내일, 모레 계속 물에 처넣자”며 문자메시지로 물고문을 사전모의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한 학생은 “친구가 세면대에 물을 받아 놓고 김군의 머리를 눌렀다”고 진술했다. 이들이 권군의 집에 있던 목검과 단소, 격투기용 글러브 등 각종 도구를 이용해 권군의 엉덩이와 허벅지 부위 등을 상습 폭행했다.

문자메시지도 권군을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이들은 분 단위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사사건간 간섭하고 권군을 조정했다. 이들은 ‘답 늦을 때마다 2대 추가’ ‘돈 벌어라’ ‘요즘 안 맞아서 영 맛이 갔네’ 등의 문자를 보내며 시시각각 권군을 압박했다.

권군이 숨지기 전날에도 ‘게임 빨리 안하냐’ ‘야, 대답 안하냐’ 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여러 차례 자살을 결심했던 권군은 가족들 생각으로 번번이 마음을 다잡았지만 결국 가해학생들의 폭행과 협박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7개월 전에도 여학생 투신자살

권군 사건 직후, 지난해 7월 11일 저녁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서 중학교 2학년인 D양이 스스로 목숨을 던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D양도 김군이 다니던 학교 학생으로 권군이 목숨을 끊은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D양은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다른 학생들로부터 왕따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담임교사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담임교사는 반 학생 전체를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게 한 뒤 훈계했다.

이후 반 급우들 사이에는 D양이 담임교사에게 편지를 보내 왕따 사실을 알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몇몇 급우는 직접 D양에게 “네가 선생님한테 고자질했냐”며 직접적으로 따져 물었다. D양은 점점 친구들 사이에서 ‘밀고자’로 내몰리며 소외되기 시작했다.

D양은 괴롭힘을 당하던 친구를 도와주려 했다가 오히려 ‘고자질쟁이’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결국 심리적 압박과 소외를 견디다 못한 D양은 부모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난 후 인근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권군이 지난 9개월간 같은 반 친구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면서도 주변에 알리지 않은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에는 D양 사건이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권군은 D양 사건을 겪은 뒤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친구들이 가혹행위를 한다’는 사실을 알린다고 해도 상황이 해결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털어놓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10대 학생 집단은 ‘왕따’나 ‘괴롭힘’사실을 선생님이나 부모님한테 알릴 경우 학교 폭력이 중단되기 보다는 ‘고자질쟁이’로 낙인찍혀 왕따에 더 많은 학생들이 동조하면서 피해 학생은 더 심각한 따돌림을 받게 되기도 한다.

D양이 자살한 지난해 7월은 권군이 심각한 폭력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때문에 D양이 숨진 뒤 학교 측의 안이한 대처가 권군 사건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D양 사건 직후 심리치료와 심층면접, 예방 교육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 같은 비극을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와 함께 보복이나 불이익 걱정 없이 학교나 경찰에 ‘SOS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질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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