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공략하는 진보 ‘문·성·길’…광주 흔드는 보수 ‘이·정’

▲ (좌)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우)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한국 정치사에서 영·호남의 지역구도는 결코 깨지지 않는 법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완고한 지역구도의 기반 아래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호남 일당독점 구도는 쉽사리 깨지지 않는 불문율이었다.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지역주의 극복과 전국정당 실현을 노래했지만 오히려 지역구도가 더욱 견고해지거나 새로운 지역 구도를 낳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4.11 총선을 3개월여 앞두고 최근 영·호남에 불어 닥친 진보와 보수의 바람이 심상치 않다. 부산에서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그리고 김대중 정권 시절 초대 행자부장관을 역임했던 김정길 전 장관 등이 ‘적지’인 부산을 중심으로 민주통합당의 깃발 꽂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호남의 중심’ 광주에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대변인격으로 활동했던 이정현 의원과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한 정용화 전 청와대 비서관이 한나라당과 보수라는 색채를 띠고 19대 총선을 노리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출범과 PK의 가능성

민주당과 ‘혁신과통합’(혁통) 그리고 노동 및 시민사회진영의 오랜 산고 끝에 지난달 민주통합당이 새롭게 출범했다.

일대일 구도의 선거 전략을 통해 내년 총선과 대선승리를 다짐하고 있는 민주통합당은 민주당과 통합시민당이 합당했다는 점에서 거대야당의 출범을 현실화시켰다. 비록 당초 계획에서 선회한 민주당과 혁통 중심의 ‘중통합’이 되었지만 이 또한 괄목할 만한 성과라 평가받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출범은 곧바로 민주진보 진영의 부산·경남(PK)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 친노(노무현) 중심의 새로운 바람이 예고되면서 민주통합당은 그 어느 때보다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일요서울]이 신년특집으로 만난 7인의 정치전문가 역시 민주통합당의 PK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었다.(본지 922호 ‘정치전문가 7인이 바라본 정국전망’ 참조)

고성국 정치평론가, 김창권 한길리서치 대표, 백왕순 디오피니언 부소장,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윤희웅 KSOI 조사분석실장 등 이들 모두가 부산·경남에서 민주통합당의 약진을 예상했다.

아울러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문성길 ‘국민의 명령’ 대표 등이 출마하는 부산지역에서의 승리가 높게 점쳐지면서 한나라당 텃밭인 영남지방이 흔들리고 있다고 전망했다.

‘문성길’, 적진 한가운데 뛰어들다

민주통합당의 상당한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친노진영은 PK에서 돌풍을 예고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문성길’(문재인·문성근·김정길)이 있다. 문재인 이사장과 문성근 대표 그리고 김정길 전 장관으로 대변되는 이들 영남지역의 대표주자들은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에서 민주진보 진영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권의 유력대권 후보로 떠오른 문재인 이사장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문성근 대표가 부산승리의 선봉에서 영남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되면서 민주통합당 후보들의 영남 당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19대 총선에서 부산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이들 세 사람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선전이 아닌 승리’를 장담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이사장은 공단 밀집지역인 사상구에, 문성근 대표는 북·강서구(을)에, 김정길 전 장관은 부산 진구(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역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들의 당선 또한 유력시되고 있다.

야권후보, ‘영남 출사표’ 줄을 잇다

디도스 사태, 돈봉투 살포, 안철수 바람 등 다양한 정치적 변수와 함께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인해 지역대표 정당만으로 당선을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며, 특히 지난해 불어 닥친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등으로 지역민심 이반이 심각한데다, 그간 지역을 독점해온 한나라당에 대한 반(反) 한나라당 정서가 이번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면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야권의 돌풍이 기대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그간 후보조차 내기 힘들었던 야권진영의 영남 출사표가 줄을 잇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 출신인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이 김해(을)에,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김성진 씨가 경남 마산(갑)에, 송인배 전 청와대 행정관 역시 경남 양산에 출마할 예정이다.

조경태 민주통합당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하(을)에서 3선에 도전하고, 김영춘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부산 진구(갑)에, 최인호 부산시당위원장은 부산 사하(갑)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여기에 김부겸 의원과 장영달 전 의원도 자신의 지역구를 과감히 버리고 각각 대구와 경남 의령·함안·합천 출마를 선언해 표밭을 일구고 있다.

광주서 한나라당 후보가 지지율 1위 ‘이변’

영남에서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칠 수만은 없는 상황이듯, 호남역시 ‘민주당이면 된다’고 그저 자신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최근 광주지역 여론조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 지역 발행 신문인 ‘광남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 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광주광역시 서구(을)에서 한나라당 이정현(비례대표) 의원이 현 지역구 의원인 민주통합당 김영진 의원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19세 이상 지역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전화면접(ARS)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를 실시한 결과, 광주 서구(을) 지역구의 다자간 가상대결에서 이정현 의원은 21.9%의 지지를 받아 19.9%의 지지율을 얻은 민주통합당 김영진 의원을 2%p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민주통합당 이상갑 변호사가 11.2%, 김이강 국제청소년 교육문화진흥원 이사장 9.0%, 통합진보당 오병윤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6.9% 순으로 조사됐으며, 무응답층은 무려 24.6%나 됐다.

이에 앞서 지난 3일 ‘무등일보’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정책개발연구원에 의뢰해 지난달 26일부터 31일까지 광주지역 8개 지역구별로 각각 1000명씩 남녀 8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서구(을) 지역구의 경우 김영진 의원이 20.3%로 1위를 차지했지만, 이정현 의원이 17.8%로 오차범위 내에서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서구(갑)의 경우 현역인 민주통합당 조영택 의원이 24.1%를 기록해 단연 선두를 보였지만,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한 정용화 전 청와대 비서관이 13.1%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되면서 한나라당과 보수진영 후보를 바라보는 호남민심이 과거와 달라졌음을 말해줬다.

이밖에도 ‘전북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달 22일부터 25일까지 4일간에 걸쳐 전북지역 만19세 이상 성인남녀 8804명(선거구별 각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전주 완산(을) 지역구의 경우 한나라당 지지율이 11.3%를 기록, 도내평균 8.3%를 웃돌면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특히 ‘인물을 교체해야 한다’는 응답은 81.6%로 조사되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지역민의 목소리를 여실히 보여줬다.

전주 완산(을)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정운천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진 곳이며, 민주통합당 장세환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지역구이다.

지난해 6.2지방선거 당시 전북지사에 출마해 한나라당 후보로는 역대 최고인 18.2%의 지지율을 기록한 바 있는 정운천 전 최고위원은 지역 내에서도 저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나라당, ‘호남의 중심’ 광주를 공략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대변인 격으로 활동했던 이정현 의원이 광주 서구(을)에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이 의원에 대한 지역민심이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매우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7대 총선 당시 ‘낙선’이라는 당연한 결과를 줬던 곳이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이 의원에 대한 지역민의 반응은 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이 의원의 지역행사만 봐도 쉽사리 감지된다.

지난 9일 광주 서구 풍암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열린 이 의원의 ‘들꽃 의정보고회’는 300여명의 지역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이 의원은 이날 보고회에서 “26년 만에 국회의원에 당선돼 호남과 광주를 위한 일을 하다 보니 이젠 광주시민을 감동시킬 자신감이 붙었다”며 “일할 수 있는 열정과 용기를 서구민들이 만들어 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또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에는 광주 서구 빛고을체육관에서 이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가운데 5000여명의 지지자 및 지역인사들이 운집해 대호황을 이루었다. 당시 행사장에 참여한 몇몇 인사들은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정현 의원은 ‘진정성’이라는 무기를 앞세우며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의원의 핵심관계자는 지난 11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지역만을 바라보며 지금껏 의정활동을 펴왔다”고 강조한 뒤 “한나라당이나 보수라는 이미지보다는 지역을 위해 헌신한 이정현이라는 인물 자체에 많은 이들이 지지를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 서구(갑)에는 또 다른 한나라당 인사가 출마를 선언하며 ‘호남의 중심’ 광주를 공략하고 있다.

지난 9일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이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용화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의 자문위원과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을 지낸 호남의 대표적 한나라당 인사이다. 지난해 6.2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광주시장에 출마해 ‘적지’에서 15%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한 그는 한나라당의 불모지인 호남에서 당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해 왔다.

당선여부를 떠나 광주지역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지지율은 일당독점 민주당에게 또 다른 경종을 울리고 있다. 아울러 ‘적지의 중심’ 광주에서 한나라당 또는 보수진영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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