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性 문제 사회적 이슈로 부각

▲ <사진=영화 '죽어도 좋아'>
지난 2002년, ‘죽어도 좋아’란 영화가 상영되자 사회 전체적으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주인공 모두가 노인이었고, 그들이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노인들의 성(性)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당시만 해도 노인층의 성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영화라는 것에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졌지만 내용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자신들의 아버지, 어머니의 얘기였기 때문이다.
노인의 성문제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들도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따른 것일 뿐이라는 여론이 잠깐 일었다.
10년이 지난 올해 보건복지부는 전국의 65세 이상 남녀 노인 500명을 대상으로 성생활 실태 조사를 해 노인 3명 중 2명이 성생활을 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노인들에게 성생활은 일상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임이 재확인 된 것이다. 결국 정부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성병 등과 같은 문제점에 대한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성생활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층 성생활 실태조사’에서 응답자 전체 500명 중 66.2%인 331명이 ‘현재 성생활을 한다’고 응답했다. 3명 중 2명가량이 성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성생활을 하고 있다는 응답자 중 177명(53.5%)이 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밝혀 노인 성매매가 발생하고 있음도 확인됐다.

 

또한 성매매 경험자 중 80명은 성관계 시 콘돔을 쓰지 않는다고 밝혀 성병 노출의 위험성이 드러났다.

실제로 성생활을 하는 노인 중 36.9%(122명)는 성병에 감염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감염된 성병은 ▲임질 61명(50%) ▲요도염(질염) 21명(17.2%) ▲사면발 7명(5.7%) ▲매독 2명(1.6%) 순이었으며 어떤 성병에 감염되었는지 알지 못한 경우도 19명(15.6%)나 됐다.

 

이렇게 성병에 노출되는 것은 그만큼 사전 예방조치가 미흡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성매매 경험이 있는 노인 중 성매매 시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80명(44.7%)에 이른다. ‘가끔 사용’ 또는 ‘항상 사용’이라고 응답한 경우는 각각 50명(27.9%), 49명(27.4%)로 나타났다.

 

이는 곧 노인층에게 있어 성문제도 중요하지만 성병을 사전에 예방토록 하는 문제 또한 시급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성생활을 하고 있는 노인층에서는 성생활 유지를 위해 약품이나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발기부전제(50.8%), 성인용품(19.6%), 성기능 보조의료기기(13.6%)등을 구입해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나 이 중 많은 수가 부작용도 경험했다고 답했다.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


서울에서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 종묘공원에는 추운 날씨에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는 탑골공원에 많은 노인들이 모였지만 성역화 작업 이후 의자 수가 크게 줄어들어 이들은 종묘공원 앞으로 옮긴 지 벌써 몇 년이 됐다.

 

종묘공원에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는 바둑이나 장기판이 벌어졌고, 해가 중천임에도 술을 마시는 노인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고 노인 성문제에 관해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시선뿐이었다. 몇 번이나 자리를 옮겨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바둑을 두던 노인도, 옆에서 훈수를 두던 노인도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참을 서성이던 중 두툼한 점퍼에 솜바지를 입은 노인이 다가와서는 “뭘 알고 싶은데?”라고 물으며 관심을 가졌고 이 노인과 잠시 동안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중소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한 후 정년퇴직을 하고 5년 정도 건물 경비를 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이마저도 그만두었다는 황모씨(71)는 노인 성문제에 대한 질문에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답했다.

 

황씨는 “그나마 부부가 함께 살아있다면 다행이지만 부인이 없는 경우에는 성적 욕구를 해결할 길이 없어”라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황씨는 한 살 어린 부인이 3년 전 죽고 나서는 가끔씩 생기는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없어 욕구가 심한 날은 다른 노인들과 술을 마시곤 한다고 했다.

 

황씨는 “애들에게 말하기도 남세스럽고 그렇다고 모르는 여자와 (성관계를) 하는 것도 싫어 참 곤란해”라며 “이곳에 오는 대부분의 노인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황씨는 “여기에 나오다보면 친해지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인데 걔 중에는 돈 주고 아줌마들과 관계를 맺은 사람도 있는데 간혹 성병에 걸렸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고 말해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를 뒷받침했다.

 


‘박카스 아줌마’의 등장은 필연?


황씨가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정황상 ‘여자’라고 지칭한 이들은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로 불리는 성매매 여성으로 짐작됐다.

 

‘박카스 아줌마’는 종묘공원 인근에 모이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는 여자들을 통칭하는 말로 40~50대가 대부분이지만 60을 넘긴 이들도 있다. 이들은 노인들을 상대로 자양강장제를 판매하며 성매매를 하는데 보통 5000원~5, 6만 원을 받는다. 성매매를 하는 장소는 지하철 주변 또는 동대문 인근으로 알려져 있다. 성매매 가격은 정해져 있지 않고 호주머니 사정에 따라 가격도 그때그때 달라진다.

 

일부 노인 중에서는 성적 욕구를 달래기 위해 일부러 ‘박카스 아줌마’를 찾는다고 한다. 주머니가 얄팍한 그들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박카스 아줌마’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얘기를 나누는 것은 무척 어렵다.

 

일단 이들은 젊은 사람이 다가가는 것을 무척이나 경계했다. 경찰일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도 있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결코 떳떳한 일이 아니기 때문으로 보였다.

 

몇몇에게 다가가 취재요청을 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종로3가역 주변에서 ‘박카스 아줌마’로 보이는 50대 중반 여성의 꽁무니를 따라가며 여러 가지를 물었지만 일언반구도 없었다.

 

30분 넘게 따라다니자 공원 옆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서는 주위를 살핀 후 조심스럽게 답했다.

 

성이 ‘최’라고만 밝히 이 여인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왔다. 처음부터 이런 일을 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겨울이라 공원에 나오는 노인이 많지 않아 돈 벌기 힘들다. 우리가 하는 일이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 아니면 저 양반들 누가 책임지냐?”고 오히려 따져 물었다.

 

최씨에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 영업하는 ‘박카스 아줌마’ 중에는 자신처럼 가정형편이 어려워 나온 여성도 있고, 직업여성으로 일하다가 이곳까지 나온 여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들 모두는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니 이해해달라고 했다.

 

‘박카스 아줌마’가 성매매로 불법을 행하고 있지만 이밖에 또 다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최씨에 따르면 일부 ‘박카스 아줌마’는 성매매 시 짝퉁 발기부전제를 값싸게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기부전제의 경우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음에도 짝퉁 발기부전제가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자칫 인명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카스 아줌마’의 문제가 노인의 욕구 해소 차원으로만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바로 이 때문이다.


노인의 성문제, 양지로 끌어올려야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1년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전체의 11.3%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오는 2030년에는 전체 인구 중 1181만 명까지 늘 것으로 전망했다. 예상치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2030년에는 노인인구가 24.3%까지 늘어나게 된다. 4명 중 1명은 노인이다.

 

전체 인구 중 노인인구의 비율이 7% 이상일 경우 ‘고령사회’라고 칭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이는 노인의 성문제가 이번 조사결과보다 갈수록 심각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노력은 구체적이지 못한 상태다.

 

복지부 관계자는 “노인 성문제는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올해 인구보건복지협회를 통해 황혼미팅, 노인시설종사자 등을 위한 ‘노인의 성 이해’ 가이드 북 제작, 노인밀집지역의 ‘순회 성교육·성상담’을 실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과연 근본적인 대책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황혼미팅과 성상담과 같은 활동이 직접적인 노인 성문제 해결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갈수록 커져갈 수밖에 없는 노인 성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에서 조심스럽게 얘기할 것이 아니라 양지로 드러내놓고 공론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이와 함께 현재 성병에 노출되어 있는 노인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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