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배 ‘폭력·갈취 피라미드’

서울 강남구·서초구 등 강남 일대 학교 후배들을 상대로 수년간 금품을 갈취하고 폭력을 휘두른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 조직은 약육강식 법칙이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과도 같았다. 이 조직은 마치 정글의 먹이사슬처럼 두목에서 조직원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식 갈취 구조로 이뤄졌다. 일당은 자퇴학생이나 중·고교 재학생으로 폭력조직을 구성했으며, 학교 수십 곳에 상납금을 정해놓고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점차 조직을 키워나갔다. 특히 이 조직에게 당한 피해학생만 700여 명이 넘고, 피해 액수도 수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일대 피해학생 700여 명, 피해액수 수억 원

서울시 전역, 피라미드식 학교 폭력 조직 존재 ‘충격’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유도 사범으로 일했던 이모(21·무직)씨는 강남 일대 학생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상납 목표액 못 채우면 가혹행위


그는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강남 일대에서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싸움꾼으로 유명했다. 강남 중·고등학생 사이에서는 “이씨의 팔뚝은 소화기만 하다”, “한번 폭행하면 피투성이가 될때까지 폭행한다”, “강남 일대에서 싸움을 제일 잘한다” 등의 소문이 난무했다. 180cm의 키에 몸무게 90kg의 건장한 이씨의 체격은 이 같은 소문을 더 부채질했다. 이처럼 이씨는 싸움을 잘하기로 소문 나 조폭으로부터 수차례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강남권 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한 이씨는 2009년부터 금품 갈취를 빌미로 한 폭력을 본격적으로 일삼았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동네 후배인 김모(18·무직)군에게 금품을 주기적으로 상납할 것을 요구했다. 이씨의 지시는 이씨의 동네 후배인 구모(20·무직)씨를 통해 김군에게 전달됐다.


이씨는 자신이 요구하는 상납 목표액을 채워오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그는 김군에게 유도복을 입힌 뒤 대리석 바닥에 업어치기 기술로 김군을 수십 차례 내리 꽂았다. 이씨는 또 김군에게 헤드기어를 착용시킨 뒤 맨주먹과 발로 온몸이 피범벅이 될 때까지 때리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이뿐 아니었다. 이씨는 “예전 어떤 놈처럼 신고하면 병신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걸리면 차로 확 밀어버리겠다”는 등의 섬뜩한 협박을 일삼았다.


이 같은 폭행과 협박에 김군은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이씨를 둘러싼 소문에 김군이 겁을 먹은 상태인데다, 이미 위계질서를 갖추고 마치 성인 폭력조직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후배에 대물림된 폭력과 갈취


폭력과 갈취는 먹이사슬처럼 위에서 아래로 이어졌다. 이씨의 지시를 받은 김군은 동네후배, 학교 후배들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폭력 피해자인 김군이 후배들에게는 가해자로 변한 것.


김군은 지난해 서울 모 고교 2학년을 중퇴한 뒤 자퇴학생이나 중·고교생들로 이뤄진 대규모 학교폭력 조직을 만들어 폭력을 휘두르고 금품 상납을 강요했다. 김군은 또 서울을 구 단위로 나눈 뒤 황모(17·무직)군, 안모(17·무직)군, 신모(16·중3)군, 박모(17·무직)양 등에게 맡겼다. 황군 등은 일명 ‘행동책’으로 활동하며 수십여 명의 중·고등학생 조직원을 거느렸다.


김군은 이씨의 상납금은 물론 자신의 생활비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후배들에게 주기적으로 상납을 요구하며 서초구에 위치한 자신의 오피스텔로 불러들여 폭행했다. 김군은 후배가 말을 듣지 않으면 양 손을 결박하고 쇠파이프로 전신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김군은 또 후배들에게 설거지나 방청소 등의 집안일을 시키고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밖으로 불러내 학교 수업을 받지 못하게 했다.


김군 역시 182cm 키에 90kg이 넘는 우람한 체구로 후배들에게 위압감을 줬다. 김군의 둘러싼 소문도 흉흉했다. 황군 등은 “김군에게 보복 당하고 싶지 않으면 돈을 내놔라”라고 협박하며 학생들에게 돈을 뜯어냈다. 강남 일대 학생들 사이에서는 김군의 악명이 높아 학생들은 김군의 이름을 대는 것만으로도 겁에 질려 금품 등을 순순히 내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군은 황군 등에게 지시해 학생들에게 명품의류, 전자기기, 알바비 등을 뺏도록 했다. 김군은 자신의 수첩에 할당량, 마감일 등을 적어 행동책 등을 관리했는데 이 수첩에 명품 브랜드 제품명을 적어놓고 이를 상납할 것을 강요했다. 김군은 특히 미국 캐주얼 브랜드인 ‘아베크롬비’ 티셔츠를 색깔과 디자인 별로 요구해 50벌(400여만 원 상당)을 가로챘다. 


김군 등은 갈취한 옷이나 전자기기들을 직접 사용하거나 인터넷 거래로 되팔아 현금으로 바꿔 유흥비로 사용했다. 김군은 상납금으로 주식에 투자할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군의 지시를 받은 행동책들이 한 번에 20만 원씩 상납했고, 김군이 이씨에게 3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상납한 것으로 확인했다. 경찰이 확인한 피해 액수는 5000만 원이나 피해 액수는 억대에 달할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금보다는 고가 점퍼나 전자기기 상납을 선호했는데 학생이 부모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 의심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에서 피해학생들은 “지속적인 학교폭력으로 자살 충동을 수차례 느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피해학생들의 진술을 토대로 가해학생들이 각자 3~4개의 구(區)를 관리하면서 패권을 쥐고 서울시 전역에 걸쳐 학교 폭력을 배후 조종하고 있는 피라미드식 학교 폭력 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피해학생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서울 전역으로 수사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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