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대한민국은 설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그 전 주말부터 4일 연휴가 끝나고도 며칠간은 어른을 찾는 세배객들이 눈에 띄었다. 명실상부한 임진년 설맞이였다. 올 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그러고 보니 얼마 남지도 않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고,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완전 국민 경선에 의한 ‘공천권 반환’을 천명한 터다.

여야가 전례 없는 공천경쟁에 몰입케 된 데는 기성 정치와 정당에 대한 국민들 불신이 극에 달해 새 정치 새 인물에 대한 열망이 거세다는 판단을 가져서다. 고승덕 의원에 의해 촉발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은 깨끗한 정치가 얼마나 요원하면서도 시급한 과제인지를 반증했다. 공천제도 개선은 물론이거니와 정당구조 전반에 대한 혁신이 나라 장래를 가를 판이다.

한명숙 대표가 완전국민경선제를 선언했고, 한나라당 비대위가 개방형 국민경선제를 실시키로 확정한 개혁공천의 공통분모는 일반 유권자들이 당내경선에 참여하는 상향식 공천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개방형 국민경선제가 합리적으로 시행되기 위한 여야 합의의 선거법 개정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국민경선제 도입은 정당의 기득권 포기를 의미하므로 예단하기가 어렵다.

우리 정당이 당리당략을 떠나서 제도 보완의 지혜를 모아 공정한 경쟁의 틀을 정하는 일이 국민신뢰를 회복하는 첫째 과제다. 그런 다음 지역대결 구도와 세대 및 계층 간 갈등, 빈부 격차, 권력구조 개편 등의 우리 정치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본질적 문제들이 있다. 지난 17, 18대 국회에서도 40%를 넘는 공천 물갈이를 단행했지만 구태 정치는 여전했다.

단순한 물갈이 폭의 확대로 새 정치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당원 중심으로 경선을 치를 경우 기득권 세력의 온존 가능성이 높다. 전략공천이든 경선이든 간에 구태 정치인을 사전에 걸러낼 합리적 배제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사람과 제도가 함께하지 않는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또 여야가 모두 추진하는 완전국민참여 경선은 상대당 후보 선출을 교란하는 역선택 방지책이 꼭 마련돼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여야가 같은 날 경선을 실시토록 선거법을 개정하는 등의 방안이 있을 줄 안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이제 분노와 불만이라는 부정적 정서만으로 표를 찍지 않을 준비가 됐다. 누가 더 나라를 잘 이끌 수 있느냐는 이성적 판단으로 한 표 행사를 하겠다는 의지가 확실해 보인다. 따라서 당명 변경을 포함한 일체의 쇄신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한나라당 비대위가 특정 정파나 인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나라의 미래를 밝히고 국민의 삶을 위한다는 자세로 국민 앞에 다가가야 한다. 쇄신은 없고 갈등만 키운 한나라당 현상이다.

민주당 또한 바라는 바를 이루려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에만 기대지 말고 책임 있는 행보를 취해야 할 것이다. 공천 물갈이랍시고 선거 때마다 이 당 저 당 기웃거리는 정치 철새들이 제철 만난 듯 설쳐대서는 안 된다. 여야는 공천 혁명을 위해서 같은 날짜의 국민경선을 합의하는 방식으로 큰 틀에서는 손을 맞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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