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인기 떨어진 한국 정당들의 일반적인 해결책”

▲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쇄신파 의원들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당명 개정과 관련, "조만간 의원총회에서 자연스럽게 모여 의원들의 의견을 묻고 여론조사를 하는 절차를 지금이라고 거치는 것이 좋지 않겠냐" 며 의총 소집을 공개 요구했다. 왼쪽부터 구상찬, 임해규, 남경필, 홍일표, 권영진 의원.<서울=뉴시스>
옛 한나라당에서 새로 개명한 새누리당이 당 안팎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당내 쇄신파 일각에서는 반발 차원을 넘어 아예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독선적 일방통행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당 상임전국위와 전국위원회에서 당명 개정을 최종 확정하기도 전에 당 비대위 황영철 대변인은 전날 “오늘부터 '새누리당'을 공식 사용하기로 했다”며 “앞으로 당 명칭을 쓸 때 '새누리당'으로 써 달라”고 요청했다.

새 당명 사용 요청은 엄격히 따지면 박 위원장의 결정 사항이기 때문에 상임위와 전국위에서 개명된 당명이 당연히 통과될 것이라는 자신감의 발로다. 비대위는 지금 당 최고결정기구이고, 의결사항은 ‘묻지도 따지지도 마라’는 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공직자후보추천위원에 포함됐던 ‘패트롤맘 대표 진영아 씨가 경력․학력 거짓말 파문으로 자진사퇴한 뒤 박 위원장이 기자들과 만나 자리에서 “일단락이 됐으니 자꾸 토 달지 마라”고 밝힌 대목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다.  

당내 분위기 정체성 혼돈 속 막연한 혁신 기대 

당내 의원들 사이에선 당명 개명을 놓고 막연한 긍정과 자조섞인 부정이 엇갈린다. 발언대를 얻지 못한 의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트위터에 너나 할 것 없이 글을 올리고 각기 한마디씩 거들었다.

긍정 쪽은 “심기일전의 의미” 또는 “새누리당의 이름으로 내용까지 혁신해서 희망을 드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찬양했다.

반면 “가치와 정체성이 묻어나지 않는다”부터 “무슨 새 세상인지, 새 세상이 명분도 철학도 고민도 없는 이름”, 심지어 “답답해서 속이 터진다”는 소리도 나왔다.  

급기야 친박계 유승민 최고위원이 나서 “기존 한나라당 보다 못하다”며 “의원총회를 열어 의원들에게 의사를 물어 당명을 결정해야 한다”고 박 위원장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야당은 야당대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이 된다고 부정비리정당이 달라질 리 만무하다”며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의 내용을 그대로 두고 포장지를 바꾼다고 변질된 물건이 새 물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공격했다.

통합진보당은 “정말 사람이 바뀌었는지, 생각이 바뀌었는지 국민들은 의아스럽다”며 “당명을 바꾼다고 태생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자기반성 없는 혁신은 기만”이라고 퍼부었다.

자유선진당은 “돈세탁도 아니고 웬 이름세탁인가”라며 “줏대도, 돛대도 없는 정당으로 추락했다”고 비꼬았다.

새누리당 당명 개정을 두고 외국 언론까지 가세해 한국정치를 통째로 비하했다. 미국 일간월스트리트저널은 3일 “(한나라당의) 당명개정은 인기가 떨어진 한국 주요 정당들의 일반적인 해결책이 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예전에는 주요 정치인이 당명 개정이 주요 정치인의 장악을 알리는 신호였으나 최근 10년동안은 쇠약해진 정당이 과거와의 단절을 표하는 흔한 전략이 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네티즌 "친박계 새로운 권력 '누리'겠다는 의미"

포털 게시판과 트위터에 올라온 반응은 참혹스럽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다. 트위터에선 ‘본래 누리라는 뜻은 좋은 의미이지만, 딴나라당의 당명으로 해석하면 시대와 민심에 따른 새로운 변화와 개혁은 묵살하고, 친박계가 새로운 권력을 '누리'겠다는 의미로 새누리 같군(@ant****)’이라거나 ‘누리게 안 놔둘거야!! 실패!"(@yura****)’, ‘한나라당 새 당명은 새누리당으로 확정. 뭘 또 새롭게 누릴려고(@jazz****)’라는 말들을 쏟아졌다.

공지영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congjee)에 “새누리당…이상해, 후져!”라고 했고,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인 조갑제닷컴(chogabje.com)에 “유치원 이름으로는 괜찮다”고 했다.

‘새’라는 앞 단어를 따서 ‘새둥지당’, 스마트폰 게임 앱인 ‘앵그리버드’를 옛 한나라당 로고에 붙여 넣은 그림도 등장했다. 당명에 대한 조롱은 그야말로 각양각색, 천차만별이 따로 없을 만큼 ‘누리’라는 뒷 단어가 옛말에 ‘메뚜기’를 뜻하는 것이라며 ‘나는 새메뚜기당’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돌고 있다.

이처럼 하루 새 동네북이 된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 확산에도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은 “유치원이면 어떠냐, 유치원생은 국민 아니냐. 국민의 친구가 되고, 국민의 종이 되겠다는 것인데 당명이 애완견 이름이 된다고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 네티즌들이 옛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개명한 것을 스마트폰 게임앱인 '앵그리버드'를 옛 당 로고에 붙여 넣은 그림.<사진출처=온라인커뮤니티>

이런 여론을 대변하듯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3일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보수 세력들 내에서 ‘왜 이런 이름을 써야 되냐’고 하는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며 “어제 반응으로 봤을 땐 실패작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결국 남경필 등 쇄신판 의원들이 나서 “비대위의 당명 변경 결정에 절차상 문제점이 있었다”며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했고, 7일 의총이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황 대변인은 “(당명 변경은) 의총에서의 의결사항이 아니다”며 “절차상 문제 제기 등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게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새 당명 폐기 여부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최고 의결기구고 고심 끝에 결정한 사항이기 때문에 다시 바꾸거나 폐기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새누리당이란 새 당명 그대로 갈 것”이라고 못박았다.

<고동석 기자>kd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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