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 공천학살’설 솔솔… 집단 탈당 임박

▲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이 지난 2일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새로운 당명으로 ‘새누리당'을 채택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한나라당이 ‘경제 민주화’를 담은 새 정강정책을 발표한 데 이어 당명도 ‘새누리당’으로 전격 개정하는 등 대변화를 꾀하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이 밝혔듯이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을 위해서다.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 준비를 위해 박 위원장과 비대위원, 친박(친박근혜)계가 당 쇄신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반면 친이(친이명박)계 등 非박·反박계는 좌불안석이다. 박근혜 비대위가 이미 ‘인적쇄신’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지난달 말 구성된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공천위) 역시 내부위원들이 친박계 인사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친이계 의원들 사이에선 공식적인 공천위 활동 전에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 한나라당 탈당파들과 ‘국민생각’(13일 창당·가칭), 자유선진당까지의 합당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전·현직 장차관들 및 청와대 비서관들이 비밀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反박 신당’ 출범으로 본격적인 보수의 분열이 찾아오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급습하고 있는 이유다.

친이계, ‘나 떨고 있니’

한나라당 공천위가 지난 2일 공식 일정을 시작하면서 현역 의원들, 특히 일부 비대위원들에게서 용퇴 요구를 받고 있는 MB 정권 실세 등 친이계의 불안과 반발이 특히 거세다. 50% 이상의 현역 의원 교체가 기정사실화돼가고 있는 상황이다.

공천위원인 권영세 사무총장은 현역 교체 비율에 대해 “하위 25% 강제 탈락에다 전략지역과 용퇴한 분들까지 고려하면 어느 지역이든 절반 가까이 탈락될 가능성이 있다”며 “예년의 교체율이 40% 수준인데 예년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사무총장은 “서울 강남을 포함해 한나라당 강세지역도 최소한 50%의 변화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중구 출마를 선언, 김종인·이상돈 비대위원으로부터 연타 당한 나경원 전 최고위원의 공천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김종인 비대위원은 지난 1일 라디오방송에 나와 “(나경원 전 최고위원이) 서울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한다는 건 정치적으로 어리석은 행위”라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나서 시민들에게 거부당했기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앞서 이상돈 비대위원은 지난달 30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 공약을 그대로 이어받았던 나 전 최고위원이 총선에 또 출마해선 안 된다. 그때 선거에 관여한 인사들도 (총선에) 나와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나 전 최고위원의 선대위에는 당내 유력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권 사무총장을 비롯해 원희룡·박진·이종구 의원이 공동선대위원장을, 신지호·안형환·이두아 의원이 대변인을 맡았다. 이들 중 권 총장과 불출마를 선언한 원·박 의원을 제외하고 이종구·신지호·안형환·이두아 의원은 친이계로 분류돼 공천이 불안한 상태다.

일각에서 ‘친이계 공천학살’, 즉 ‘친박계의 공천 보복’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친이계 의원은 “(공천위에) 우리 입장이 전혀 반영 안 됐다. 이대로 가면 친이계 핵심들이 전멸할 것”이라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과 당 대표를 지낸 안상수·홍준표 의원 등이 ‘낙천 대상자’로 거론되면서 이들과 가까운 인사들까지 떨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현역 의원에 대한 여론조사를 담당하는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에 친박계 핵심 전략가인 신동철 씨가 임명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친이계의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탈당설, ‘솔솔’

외부 비대위원이 아닌 내부 비대위원에 의해 재점화된 ‘MB정부 실세 용퇴론’은 친이계 집단 탈당 사태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세연 비대위원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당이 이토록 국민적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게 만든 근본원인을 제공한 분들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 있는 결단을 내려줄 때”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다음날 김종인 비대위원은 “가장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얘기인데 책임을 지는 정치인이 아무도 없다”고 힘을 보탰다.

‘용퇴론’ 재점화는 현 정권 핵심인사들의 측근비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비대위의 쇄신활동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비리가 더 많이 나올수록 용퇴론은 더 강해질 전망이다.
‘정부 실세 용퇴론’이 재론되자, 친이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장제원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을 거론하며 “가장 민감한 시점에 당의 분열에 불을 지르는 ‘물러가라’ 타령”이라며 “누구 ‘물러가라’ 할 만큼 당 기여도가 있느냐”고 치받았다.

이 가운데 친이 일각에선 탈당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다만 이들에게는 현재 ‘탈당의 명분이 없다’는 것이 최대 고민이다. 또 공천위가 내달 10일까지 공천 작업을 마무리 짓는다고 밝힌 상태라 자신들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다. 공천에서 탈락한 뒤엔 더더욱 탈당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 여권인사는 “친이 일부는 탈당명분만 찾고 있다”며 “박근혜 비대위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데 이어 공천위가 삐끗하면 바로 탈당명분으로 삼아 (탈당을) 결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다른 친이계 의원 역시 “이대로 앉아서만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정계파 쳐내기식 공천이 감지된다면 결국 우리도 탈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이계 의원실 한 관계자는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공천위 구성이 발표되면서 의원이 지역 활동을 멈추고 중앙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기 시작했다”면서 “무엇인가 큰 변화가 올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창권 한길리서치 대표는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박근혜 비대위가 ‘MB정권 실세 용퇴론’에 이어 나경원 전 의원에게 ‘출마는 어리석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은 사실상 이들에게 공천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이들이) 당에 남아서 낙천을 기다리느니 탈당 등의 집단행동을 감행해 다른 길을 모색하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MB 측근 전현직 장차관-靑 수석 회동

한나라당이 공공연하게 내분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의 전현직 장차관들과 청와대 비서관들이 회동을 가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10일 서울 광화문 모처에서 만나 향후 총선과 대선 전망 등 정국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박근혜 비대위 출범 이후 비대위원들이 지속적으로 MB정부와의 차별화, MB탈당 등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데 대한 대응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주도적으로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국민생각’(가칭)과 이후 한나라당 추가 탈당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흘러나온 것으로 알려져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회동에 참여한 한 인사는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신년 인사를 겸해서 함께 가볍게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면서도 “정국이 정국이니만큼 선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참석인사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친분이 있는 분들과 자주 모임을 갖는 편”이라며 “반박 기류 형성 등의 큰 의미를 부여할 모임의 소지가 아니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탈당파들, 국민생각-선진당과 연대 가능성

이런 와중에 중도신당을 표방한 ‘국민생각’이 창당 일정을 앞당긴 것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목이다. 총선 전 자유선진당과의 당대당 통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국민생각 공동대표인 박세일 이사장은 “4·11 총선까지 선거 준비 기간을 감안해 창당 시점을 2월 말~3월 초에서 이달 13일로 앞당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생각은 이번 총선에서 200곳 이상 후보를 출마시켜 비례대표를 포함, 80석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세일 신당 자체는 파괴력이 전혀 없다. 선진당과 한나라당 탈당파와 힘을 합칠 것”이라면서 “이렇게 된다면 총선에서 국민생각이 제2당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제3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충격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

김경재 국민생각 홍보위원장은 “선진당과의 합당을 위해 박세일 대표가 접촉중이며 현재 진척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생각 핵심 관계자도 “신생 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기반을 가진 자유선진당 등과 선거연대를 모색하고 한나라당 등의 현역 의원 영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표 국민생각 공동대표는 “현역 의원 30명 정도가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밝히고 있는 상태다.
특히, 국민생각과 선진당이 최근 한나라당 정강정책 변화에 대해 한 목소리로 비판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박세일 이사장은 “스스로 보수의 가치를 부끄럽게 여기고 진보를 흉내 내는데,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위시해서 현재와 과거의 당 지도부가 국민 앞에 석고대죄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도 “느닷없이 정강정책에서 북한 인권과 개방을 빼겠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라며 “한나라당 간판을 내리고 일본 기생 같은 분칠을 연일 얼굴에 쳐 바른다 해도 이런 식의 발상과 정신머리로는 국민의 불같은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등 한나라당이 보수대연합 의지를 거듭 피력하고 있는 데 반해, 양당은 한나라당과의 연합에 대해 선긋기를 확실히 한 셈이다.

한나라당 내 친이계 의원들 역시 정강정책 변화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전여옥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성도 갈고 이름도 바꾸는 것, 그래 전권 잡았으니 다 좋다. 그런데 정강정책에서 북한 인권과 개방 삭제한다? 진짜 미쳤는가?”라며 “한나라당이 이렇게 된 데는 박 위원장도 책임도 있다. 정당이 왜 존재하는가.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데 사익을 위한 당이 돼 버려 안타깝다”고 맹비난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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