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공천안’에 구민주계 ‘무소속 벨트’ 예고

▲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좌)와 박지원 최고위원(우)<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4·11총선 공천을 둘러싸고 민주통합당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공천쇄신’을 하겠다던 한명숙 대표의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부분 친노(노무현) 일색이거나 현역의원 다수가 생환하면서 ‘감동 없는 공천결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천결과를 두고 일각에서는 ‘영남=친노’, ‘수도권=친분관계’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며, 급기야 ‘공천 살생부’ 명단까지 나돌면서 당내 공천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호남에 대한 공천 작업이 미뤄지면서 이 지역에 불어 닥칠 ‘쇄신의 칼바람’을 예고하고 있지만, 3차 공천결과가 진행되는 동안 ‘한명숙 쇄신안’이 명분을 잃으면서 구민주계 소속 예비후보들의 집단반발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에 따라서는 대규모 탈당이나 친DJ 무소속연대가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특히 구민주계의 중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박지원 최고위원이 모종의 결단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마저 대두되고 있다.

‘한명숙 지도부’, 공천쇄신 한다더니

한명숙 대표는 당 쇄신을 누차 강조해왔다. 당 안팎에서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민주통합당의 쇄신을 예고했다. 그러나 한명숙 지도부가 보여준 공천결과를 보면 이러한 의지가 실제 반영됐는지 의구심이 든다. 일각에서는 한 대표의 리더십 부재와 일부 유력인사들의 ‘내 사람 챙기기’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민주통합당은 서울·인천·경기·강원·충청지역 등에 대한 3차 공천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24일 진행된 수도권 및 강원·충청 등 일부 공천지역 발표와 22일 확정한 부산 및 영남지역 컷오프 결과에 이어서다.

하지만 1, 2차와 마찬가지로 3차 발표에서도 ‘감동’은 없었다. 먼저 김덕규(서울 중랑을), 한광옥(서울 관악갑) 등 호남 중진들의 공천 탈락은 눈에 띄었지만, 제이유 그룹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받은 이부영(서울 강동갑)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경선을 통과하면서 도덕성을 강조한 공천기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품수수 혐의로 실형을 받은 한광옥 상임고문은 탈락이고 비슷한 혐의로 실형을 받은 이 전 의장은 괜찮으냐는 것이다.

이 전 의장의 후보자 자격을 놓고 공심위에서 표결까지 벌이는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공심위 간사인 백원우 의원은 이 전 의장의 정치자금법 위반과 관련해 “개인 착복이 아니라 장준하 기념사업회 이사직을 맡으면서 생긴 일”이라고 설명했다.

2차 발표에서 현역의원 다수가 단수후보로 확정되면서 국민적 비판을 받은 바 있는 민주통합당은 3차 공천심사 결과에서도 현역 강세현상이 두드러졌다. 대신 전·현직 의원 대부분을 경선에 붙도록 한 점은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백원우 의원은 ‘현역 프리미엄’ 지적에 대해 “18대에서 경쟁력 있는 현역이었기에 살아남지 않았겠냐”며 “신진인사 등용과 본선 경쟁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친노·486’ 득세 다수가 ‘단수공천’

한명숙 지도부의 출범과 함께 줄곧 제기되어 온 ‘친노의 득세’는 이번 공천심사 과정에서 확연히 나타났다. 특히 1, 2차 공천심사 결과에서 친노 후보와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 생) 정치인 대부분이 단수후보로 확정되거나 경선후보로 선정됐다.

부산의 경우 문재인(사상) 상임고문과 문성근(북·강서을) 최고위원 등 12명의 후보자가 단수후보로 결정되면서 영남권에 친노그룹이 전진 배치됐으며, 노 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경기 의정부갑) 의원을 비롯해 유인태(서울 도봉을) 전 의원, 박범계(대전 서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인사들도 공천대열에 합류했다.

486 정치인들도 대거 부활했다. 18대 총선 당시 고배를 마셨던 이인영(서울 구로갑)·오영식(서울 강북갑)·우상호(서울 서대문갑) 전 의원 등이 공천을 받았으며, 특히 정치자금 수수혐의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임종석 사무총장은 도덕성 기준에도 불구하고 서울 성동구을 단수후보로 확정됐다.

민주통합당 이미경 총선기획단장은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공천심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임 사무총장의 공천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조국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최종판결 전까지는 무죄추정이라고? 그건 법정에서나 할 말이지 공천에서 할 말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공천 살생부’ 확인… 지도부의 입김작용?

지난달 29일 [일요서울]이 입수한 민주통합당 공천 살생부 명단에 따르면 영남지역을 제외한 전국 81곳, 271명의 예비후보에 대한 각각의 평가가 담겨져 있다. 이 문건은 공심위 심사에 앞서 공심위원들에게 각각 전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의견종합보고서(참고자료)’라는 명칭을 가진 A4용지 7장 분량의 ‘살생부 명단’은 ‘○’, ‘△’, ‘×’, ‘공란’으로 후보들을 구분하고 있으며, 특히 세부사항에는 “통합반대 주도” “반통합파” “지지기반 취약” “정체성 불명” “○○○최고위원 지원” 등의 구체적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

또한 “젊은 인재” “인지·지지도 높음” “유력후보” “조직력 좋음” 등의 긍정적 평가를 받은 후보의 경우 ‘○’ 또는 ‘△’의 점수를 받았으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컷오프를 통과하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의 모 지역구의 경우 예비후보 중 유일하게 ‘○’를 받은 C후보가 단수후보로 확정됐으며, 전략공천지역으로 선정된 경기도 모 지역구에서도 ‘○’를 받은 B후보만이 공천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 지역구에서는 ‘×’를 받은 예비후보가 공천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경우도 있었다.

아직까지 누가 작성했는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당 안팎에서는 내부 공심위원 또는 당 지도부 선에서 작성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지도부의 입김이 공천심사에 직접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향후 상당한 후폭풍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강철규 공심위원장의 기자회견이 돌연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3차 공천심사 결과를 놓고 당 지도부가 반발하면서 무산된 것이다. 이로 인해 공천심사까지 거부했던 강 공심위원장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도부가 초심을 잃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당은 집권하기 어렵고 집권해도 좋은 정치를 할 수 없다”며 “지도부는 공천개혁에 대해 국민의 염원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강 공심위원장은 그러나 ‘공천심사에 지도부의 입김이 작용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대해 “힘 있는 사람의 수신호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원칙과 기준에 따라서 15명의 공심위원이 채점하고 합산해서 후보자를 선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지원의 길, 낙천 구민주계 구명운동 나서나

지금까지 민주통합당이 보여준 공천결과에서 알 수 있듯 개혁공천의 칼끝은 이미 호남을 향하고 있다.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박지원 최고위원과 한명숙 대표의 ‘결별’까지도 불러올 수 있다.

박 최고위원은 통합과정에서부터 사사건건 친노와 부딪혔다. DJ의 상징이자 구민주계 수장격인 박 최고위원은 통합이후 친노의 핵심인 한 대표와 공천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해 왔으며, 공식석상에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박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천 결과를 놓고 ‘호남 물갈이’, ‘민주계 공천학살’, ‘친노 부활’, ‘특정학교 인맥탄생’ 등의 평가가 있는 것은 총선과 정권교체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며 한 대표를 직접 겨냥했다. 이어 호남지역 공천심사가 아직 남은 점을 감안한 듯 “이제라도 이런 오해가 없도록 재심과 남은 공천 과정에서 철저한 배려와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명숙 대표의 쇄신안이 친노 위주의 공천과 구민주계 공천배제로 끝날 경우 박 최고위원이 ‘DJ연대’ 결성을 하는데 있어 모종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18대 총선 당시 영남을 중심으로 ‘무소속 친박연대’가 결성된 점을 반면교사 삼아 호남지역 공천 탈락인사들이 ‘무소속 DJ연대’를 만들 수 있으며, 박 최고위원은 ‘무소속 연대’에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구민주계 좌장으로서 구심점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공천반발” 구민주계 ‘무소속 벨트’ 논의

이런 가운데 구민주계 일부 예비후보들이 공천결과에 반발, ‘민주동우회’라는 이름으로 무소속 벨트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9일 3차 공천 발표에서 탈락한 다선 원로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면서 향후 호남공천 결과에 따라 무소속 연대가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친이(이명박)계의 공천학살을 언급하며, 서청원·홍사덕 등 일부 친박(박근혜)계 중진들이 공천결과에 불복하며 탈당, 친박연대라는 이름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사례를 떠올리며 민주통합당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과거 18대 총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등에 업은 서청원 전 대표가 당시 한나라당 낙천인사를 중심으로 ‘친박연대’를 결성한 것을 ‘롤모델’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광옥 상임고문은 서울 관악갑에서 고배를 마신 뒤 “무소속 출마를 불사하겠다”며 옛 민주계인사들과 접촉에 나섰다. 한 고문측은 아직 발표가 유보됐지만 이미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것으로 전해진 정균환(송파병) 전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와 2차 발표에서 탈락한 지용호(동대문갑) 예비후보 등과 잇단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덕규(서울 중랑을) 전 국회 부의장도 “당신네들의 함량 미달 심사로 60년 민주당의 역사가 풍전등화에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내 정치 역정과 양심, 신념이 과연 옳았는지 지역구민과 함께 고민하고 평가받을 것”이라며 무소속 출마의사를 피력했다.

호남지역 공천이 임박하면서 이 지역 예비후보들도 크게 술렁이고 있다. 특히 일부 후보자 가운데 공천에서 탈락할 시 무소속 출마를 염두하고 있는 후보 또한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미 선거인단 모집과정에서 투신자잘 사건이 발생한 광주 동구의 경우 당 지도부가 무공천 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지역 현역인 박주선 전 최고위원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박 전 최고위원은 “이번 사건을 옛 민주계 죽이기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서 “무소속 출마, 무소속 벨트를 만들어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호남세력의 좌장격인 박지원 최고위원은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동우회 결성 제의를 받은 게 사실”이라며 ‘무소속 벨트’가 가시화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권통합으로 정권교체를 하라 하셨지 분열로 패배하라 하시지 않았다”면서 “그런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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