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무소속 편대 뜬다

▲ 민주통합당 박지원 최고위원이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명숙 대표에게 귀엣말을 하고 있다.<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민주통합당이 지난 5일 호남지역 공천심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 지역 현역의원 6명을 낙천했다. 당초 쇄신의 칼날이 호남을 향했던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예견됐던 바지만 지역정가에는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다’며 지도부의 공천결과에 불복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무소속 출마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낙천인사를 중심으로 ‘친DJ 무소속 연대’가 거론되는 등 박지원 최고위원을 주축으로 구민주계 인사들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한명숙 지도부로부터 홀대를 받고 있는 손학규 전 대표와 정동영 상임고문의 움직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당내 유력 대권잠룡으로 분류됐던 손 전 대표와 정 상임고문의 최측근들이 이번 공천에서 대거 탈락, 당 안팎에서 ‘공천명단에 손학규-정동영계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주류인 ‘친노-486’에 맞서는 비주류 ‘구민주계-손학규계-정동영계’의 행보에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호남물갈이 현실화… “구민주계 숙청이다”

민주통합당이 보여준 공천결과에서 알 수 있듯 ‘한명숙 쇄신안’의 정점은 호남을 위시한 구민주계에 맞춰져 있다. 수도권 및 타 지역에 대한 공천심사는 물론 호남지역 공천심사 결과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5일 발표한 제4차 공천심사 결과 강봉균(3선, 전북 군산), 김영진(5선, 광주 서구을), 김재균(초선, 광주 북구을), 조영택(초선, 광주 서구갑), 최인기(재선, 전남 나주·화순), 신건(초선, 전북 전주시 완산구 갑) 등 6명의 호남지역 현역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했으며, 박지원(재선, 전남 목포) 최고위원과 주승용(재선, 전남 여수을) 의원이 단수 공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우윤근(재선, 전남 광양), 이용섭(초선, 광주 광산을) 의원이 단수후보가 된 점을 감안하면 호남권에서 불과 4명만이 공천이 확정된 것이다. 친노진영과 486그룹 대부분이 단수후보로 공천을 받거나 경선후보로 컷오프를 통과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민주계는 ‘학살’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구민주계의 수장격인 박지원 최고위원은 “현역 의원의 개혁 공천, 소위 물갈이에 대해 ‘왜 호남출신 의원만 해당되고 다른 지역 의원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가’라는 불평이 호남지역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수족 잘린 ‘손학규-정동영계’

민주통합당 공천결과 구민주계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지면서 일각에서는 4·11공천을 두고 ‘친분위주의 공천’ 또는 ‘구민주계에 대한 학살’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명숙 지도부의 쇄신 공천에 구민주계만 피해를 본 것은 아니다.

당내 빅3로 불리며 유력 대권잠룡으로 분류됐던 손학규 전 대표와 정동영 상임고문의 최측근들 역시 이번 공천에서 대거 배제됐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친노 지도부가 대선을 앞두고 두 사람의 수족을 쳐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당권을 장악한 친노진영은 이미 문재인 상임고문과 김두관 경남지사라는 유력 대권후보가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손 전 대표와 정 상임고문은 굳이 필요 없는 카드이거나 그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홀대론도 이러한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다는 지적이 많다.

4·11총선 공천에서 손학규계와 정동영계 사람들이 대거 낙천하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총·대선을 앞두고 비주류인 ‘구민주계-손학규계-정동영계’가 전략적 행보를 함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정동영 상임고문의 경우 그간 동교동계와 만남을 지속해 왔고, 열린우리당 시절 그가 구민주계를 이끌었던 점을 상기할 때 이러한 주장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또한 ‘물과 기름’이라 표현되어온 손학규-정동영은 지난해 통합과정에서 공동 연합전선을 구축함으로써 통합을 이끌어왔다. 안철수 원장의 등장과 친노(혁신과 통합) 중심의 통합논의가 이들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불러왔고, 결국 두 사람은 ‘통합정당’을 둘러싸고 정치적 동맹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8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당내 주류와 비주류가 대립관계에 놓이면서 486그룹을 포함한 친노진영과 이를 제외한 비주류들이 정치적 대립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면서 “만약 그렇다면 총선 이후에 이러한 관계가 더욱 두드러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한 “민주계와 손학규계 그리고 정동영계 모두가 친노 지도부로부터 홀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이들이 서로 연대함으로써 주류인 친노와 당내 균형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명숙 대표, 무소속 연대에 ‘화들짝’

호남권 현역의원을 비롯해 구민주계 예비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하면서 이들의 ‘무소속 연대’ 가능성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3차 공천발표에서 탈락한 한광옥(서울 관악갑) 상임고문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통해 탈당을 선언하고 무소속 출마의사를 밝혔다. 한 상임고문은 특히 구민주계 낙천후보를 잇따라 접촉하는 등 이들을 중심으로 ‘민주동우회’를 결성, ‘무소속 벨트’를 구성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덕규(서울 중랑을) 전 국회부의장 역시 “당신네들의 함량미달 심사로 60년 민주당의 역사가 풍전등화에 있다”며 무소속 출마를 예고했다.

공천 후유증이 극에 달하고 ‘무소속 연대’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면서 지도부 내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와 각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박영선 최고위원은 “‘공천은 늘 시끄럽다’고 덮기에는 상황이 달라 보인다”고 말했으며, 이인영 최고위원은 “당의 운명이 절체절명의 고비에 접어들었다”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이러 가운데 지난 5일 호남지역 공천결과는 ‘무소속 연대’에 대한 한명숙 지도부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관료출신의 비교적 비(非) 강성 의원들을 낙천함으로써 ‘무소속 벨트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낙천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6명 가운데 5명이 고위직 관료출신으로 비교적 원만한 성격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 의원은 손학규계와 정동영계에 각각 속해있지만 이를 제외한 모두가 뚜렷한 정치적 계파를 형성하고 있지 않는 등 비교적 비 강성 의원으로 분류되고 있다.

현재 최인기 의원이 탈당,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상태지만 최 의원 개인 판단에 의한 것으로 무소속 연대의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호남지역 현역의원의 핵심관계자는 지난 7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호남권에서 공천에 탈락한 의원들을 보면 지도부가 무소속 연대를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며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낙천해야 할 사람을 공천에서 배제한 부분도 있겠지만 무소속 출마도 함께 염두에 두고 공천에서 탈락시킨 것 같다”고 전했다.

민주통합당 공천에 탈락한 모 예비후보 측 관계자도 “호남지역 낙천인사들의 면면에서 지도부가 얼마나 ‘무소속 연대’를 우려하고 고민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지도부의 걱정이 이번 호남공천 결과에서 나타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비리전력자 공천, 무소속 출마 명분 주나

비리혐의자에 대한 공천을 두고 도덕성 기준논란은 물론 공정성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당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치자금 수수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받고도 서울 성동을 지역구 단수후보로 공천을 받은 임종석 사무총장은 그간 당 안팎에서 끊임없는 사퇴압력을 받아왔으며, 지난 9일 국회 기자회견을 갖고 결국 사무총장과 총선 후보직에서 물러 나겠나는 입장을 밝혔다.

공천을 둘러싼 국민적 비판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그의 사퇴는 지도부의 부담을 덜어주고 또한 낙천인사들의 무소속 출마 명분을 차단하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공천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임 사무총장 이외에도 공천을 받은 비리전력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화영(강원 동해·삼척) 전 의원은 현대자동차그룹으로부터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486의 맏형’ 신계륜(서울 성북을) 전 의원역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지난 18대 공천에서 탈락됐던 인물이다. 이들 모두 단수후보로 공천이 확정 됐다.

또한 경선후보로 선정된 이부영(서울 강동갑)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경우 주수도 전 제이유그룹 회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받았지만 그 역시 경선후보로 컷오프를 통과하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비슷한 비리혐의에도 유독 친노 후보나 지도부와 친분이 있는 경우만 공천을 받고, 구민주계 인사는 공천에서 탈락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낙천인사를 중심으로 공천기준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명숙 대표가 ‘결단’을 내려 비리전력자나 비리 연루자 그리고 선거법 위반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는 후보들에 대해 메스를 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구민주계나 반한명숙 진영에서 ‘무소속 출마’ 움직임도 급속히 사그러 들 수 있다.

한편, 한광옥 상임고문의 핵심 인사는 7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같은 혐의를 지닌 사람이라도 구민주계는 일단 숙청대상”이라고 꼬집은 뒤 “현재 무소속 연대를 위해 여러 사람과 접촉하고 있으며, 다각적인 방법을 구상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칫 자기 밥그릇 챙기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소속 출마에 조심스런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공천이 잘못됐다는 명분을 현재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비리혐의자에 대한 거취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e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