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순자 대구시여성단체협의회 회장

[일요서울Ⅰ서원호 취재국장] ‘봉사의 여왕, 또순이 아지매’ 차순자 대구광역시여성단체협의회 회장.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 서문시장 직물가게 말단 여사원으로 입사해 판매영업 인생을 시작, 지금은 연매출 240억 원대의 회사 사장님이 됐지만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을 아낌없이 주변에 나눠주는 차 회장에게는 ‘대구시 시민(봉사)상’이란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다. 앞으로도 남아 있는 인생의 여백공간에 “우리 이웃의 불우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회봉사활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차 회장, 사람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차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에 어머니를 잃고, 고등학교 졸업 때 아버지마저 하늘나라로 보낸 그해 1974년 외삼촌이 운영하던 대구서문시장 1지구 내 대지직물에 입사했다. 1978년 4월 결혼과 동시에 남편(손정길)과 의논해 혼수감 대신으로 직물도소매업인 ‘민영상사’를 창업, ㈜길보직물을 거쳐 오늘의 ㈜보광직물의 CEO(대표)로서 새벽 3시에 기상해 밤 12시까지 일하는 커리어우먼으로서 “아플 시간마저 없다”는 그의 고백은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특히 1992년 사회봉사단체인 아이코리아(당시 새세대육영회)에 회원으로 참여한 뒤 오늘의 대구여협 회장의 책임을 맡기까지 한편으론 스스로의 가난을 극복하고, 다른 한편으론 ‘이웃은 나의 힘’이란 신조 아래 ‘사회봉사와 이웃 나눔’을  묵묵히 실천해 왔다. 그래서인지 차 회장에게는 ‘60~70년대 판 또순이’를 연상시키는 ‘한국의 어머니상’이란 가슴 뭉클한 감동이 흐른다.

[일요서울]은 대통령에서부터 미육군성, 기획재정부장관에서부터 대구광역시장에 이르기까지 대구시민상(2002)과 석탑산업훈장(2010), 대구스타기업(2011), 미육군성 시민봉사훈장(2009)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훈장과 표창을 수상한 차 회장을 만나 ‘아름다운 동행-이웃사랑 실천’에 대해 인터뷰했다.

21세기 여성시대 새로운 ‘롤 모델’로 우뚝 … “아플 시간마저 없다”

‘또순이 아지매’서 여성리더로 

‘밑바닥서 성공한 여주인공 또순이’는 가진 것이 없고, 배움도 높지 않고, 그렇다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착한 심성과 건강한 몸, 그리고 억척스러운 생활력이 강점이다. 한국의 보통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주 같은 외모와 그럴듯한 배경을 가진 것도 아니다. 한결같이 유복하다고 할 수 없는 가정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온갖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내고야 마는 한국형 케리어우먼의 상징이다.

차 회장은 한참 감수성이 커져갈 무렵인 초등학교 시절에 엄마를 여의였다. 새엄마 밑에서 남동생 둘과 함께 대학진학을 꿈꾸던 그는 아버지의 돌연한 임종으로 가장의 역할을 맡아야 했다.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 197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판매여사원으로 취업해야 했다. 외삼촌이 대구서문시장에서 대지직물이란 포목상을 하고 계신 것이 다행이었다. 귀염둥이 딸로 응석한번 제대로 부리지 못한 채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그는 새엄마와 두 남동생을 책임져야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밤늦은 시간까지 포목점을 찾는 손님들을 응대하다보면 목소리는 쇠고, 몸은 녹초가 되기 일쑤였지만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보낸 4년은 지금의 남편인 손정길 회장을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이했다. 1978년 4월 결혼을 하면서 외삼촌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 것. 혼수비용으로 서문시장에 가게를 얻어 ‘민영상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직물 도소매를 시작했다. 그는 4년 동안 외삼촌 밑에서 배운 장사 경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때는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다 돈을 버는 재미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도움의 손길을 재기의 발판으로

일취월장 승승장구하던 공장에도 시련이 닥쳐왔다. 2002년 절친한 친구의 사업을 돕는다며 26억 원짜리 수표에 이서한 것이 잘못된 것.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당시 주유소와 공장 6개를 팔았지만 역부족, 결국 꿈엔들 모르던 길보직물이 부도를 맞고 말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차 회장에게 도움의 손길은 뜻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왔다. 하루는 통도사 방장스님이었던 초우스님이 불러 친견했더니 “차 회장, 이거 얼마 안 돼. 차 회장은 반드시 재기할 수 있어”라며 2억 원을 내 주었고, 또 울산 친구가 용기를 잃지 말라며 2억 원을 지원해 줘 그때 잃었던 공장 중 1개를 찾아 2003년 4월 ‘보광직물’로 새로운 도전의 발판을 삼았다.

부처님이 도와서일까. 보광직물은 다시 활기를 찾았고, 직원 100명이 수고의 땀을 하나로 모은 결과, 2006년 노인일자리박람회 대구광역시장 표창, 2008년 미래산업상공인대회 경영대상 수상, 2009년 기획재정부 장관상과 중소기업청장상을 수상한데 이어 2010년 5월 14일 대망의 석탑산업훈장 수훈의 영예를 안았다. 이듬해인 2011년 7월에는 대구시 스타기업에 선정됐다.  

 

 

▲ 2010. 5. 4 중소기업인의 날 석탑산업 훈장 수훈 (청와대 녹지원)


차 회장은 특히 석탑산업훈장 수훈과 관련해 “석탑산업훈장을 받으려면 최소 연매출 1000억 원 이상은 돼야 하는데, 당시 매출액 160억 원하는 중소기업이 대구에서 유일하게 석탑훈장을 받은 것은 기적”이라며 “여성 중소기업인으로서 윤리경영에다 봉사를 생활화 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차 회장은 1978년부터 33년 동안 섬유, 패션업계 전문회사를 운영하면서 면직물, 봉제 침구류, 의류를 생산하고, 180여 건의 산업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조달청과 정부기관, 병원 등에 군수물자와 의료복을 납품하고 있다. 전체 종업원의 50%를 노인, 장애인 등 소외계층과 여성을 채용해 100세 인생시대, 시니어일자리 창출의 모범 사례가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차 회장은 또 “대구의 대표적인 침구류 전문 업체로서 2011년 대구시 스타기업에 선정된 것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구광역시(시장 김범일)가 대구의 미래를 견인할 기업을 매년 스타기업으로 선정해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데, 보광직물은 2003년도에 창업돼 침구류와 피복류 등을 주력 생산해 국내외 시장에 보급, 2010년말 현재 238억 원을 실현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 분야 선도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호평을 받았다.

보광직물은 우리나라 육해공군은 물론 재해대책본부에 이불과 담요를,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 대학병원과 서울삼성병원 등 30여 곳에 납품하고 있다. 차 회장이 보광직물의 일감 수주를 위해 “아침에는 서울, 저녁에는 제주에서 입찰을 본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봉사는 이웃사랑의 배려심”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돈을 벌어서 이웃 봉사로 나누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으로 한 사회봉사활동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앞으로 우리 불우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아직 남아 있는 인생의 여백 공간에 삶의 도전을 담아 국가와 지역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1974년 뜻밖에 ‘청소년 가장’이 되어 외삼촌 운영의 포목점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 이제 공장과 점포까지 두루 갖춘 여성 중소기업인이자 여성 사업가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때론 승승장구도 하고, 때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사업과 함께 시작한 ‘이웃에 대한 봉사’를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할 생각이다.

이 밖에도 1992년 아이코리아(당시 새세대육영회) 수성구지회에 회원으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시설아동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몸 봉사를 지금껏 쉬지 않고 있다. 차 회장은 아이코리아에서 1995년 수성구지회장(현), 2001년 대구대표지회장(현)을 맡아 매년 4월이면 1500만 원을 들여 수목원을 찾아 야생화 심기 행사를 8년째 주관해 오고 있다.

차 회장은 아이코리아 대구대표지회장의 경험을 인정받아 ‘대구 여성단체협의회’에서 2005년 부회장을 거쳐, 2009년에는 수석부회장으로, 2011년 2월에는 단일 후보로 제16대 회장에 추대됐다. 대구여협이 단일후보를 회장으로 추대한 것은 1대 전경화, 2대 최동원, 15대 남성희 회장에 이어 네 번째다. 당시 지역언론들은 ‘대구 여협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던 선거로 인한 회원들 간의 분열 없이 화합하는 분위기에서 회장이 선출됐다’고 호평했다. 대구여협은 현재 42개 단체 13만여 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차 회장은 2년 단임제인 대구여협를 맡아 ‘소통하는 여협’을 위해 지난해 치러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국제적인 행사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대구시 - 중국 닝보시(2011년), 칭따오시(2012년 2월) 간의 교류를 위한 MOU 체결도 이뤄냈다.

차 회장은 ‘여협의 재정자립’의 길도 개척했다. 우선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로부터 ‘지정기부금품단체’로 인정받아 대구여협에 기부하는 법인은 법인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대구 소재 은행들과 백화점들의 여협에 대한 기부가 한껏 활발해졌다.

특히 올해 2월에 정관 개정을 통해 ‘단합하는 여협’의 길을 열었다. ‘후배를 양성하고, 인재의 성장을 견인하는 여협’을 위해서다. 첫째는 전직회장이 새로운 단체를 구성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없도록 했다. 둘째는 여협 회원은 6년 이상 활동할 수 없도록 했다. 대구여협 산하 회원단체들로 하여금 불편한 정관에 대한 수정의견을 받는 절차를 거침으로써 회원 모두가 환영하는 축제가 됐다.

대구 수성구 ‘효녀’

차 회장은 매년 10월이면 대구 수성구내 각 동사무소로부터 추천 받은 50명의 어른신께 ‘큰 상차림’을 올린다. ‘홀몸 어르신 칠순잔치’가 그것이다. 의탁할 자녀가 없는 홀몸 노인들을 따듯하게 돌보길 10여 년, 이제 ‘수성구 효녀’는 별명이 아닌 애칭이 됐다.

차 회장은 “칠순이 지나가신 분들이 끼워달라고 애원하기도 하고, 참석 못하신 분들이 섭섭해 하기도 하는 것”이 제일 마음이 아프다며 “언젠가는 팔순 잔치도 열어 드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같은 차 회장의 심성(心誠)은 대구시 제26회 ‘자랑스런 시민상’ 사회봉사부문의 수상으로 돌아왔다. 차 회장은 사업가이자 사회단체 대표로 불우이웃과 소년소녀가장, 결식아동 지원 등 이웃사랑을 적극 실천하고, 경로당 노인에게 음식접대와 난방비 지원, 독거노인에게 반찬제공 등 불우노인들에게도 생활을 지원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4代가 한집살림, 친구 같은 남편
 
차 회장은 시부모와 친정엄마, 아들과 며느리, 사위와 딸, 친·외손자까지 ‘4대 한집살림’을 살고 있다. 며느리와 딸에게 요리를 가르쳐 외부인을 초청해 ‘가정파티’를 열면 모든 음식을 집에서 손수장만한다. 지난해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는 우즈베키스탄 선수단을, 대구시-중국닝보시 국제교류 MOU 체결에 따라 한국을 방문한 중국 닝보시 예술단 120명을 비롯해 중국 칭따오 부시장을 초청해 ‘가정파티’를 열어 주었다.

게다가 차 회장은 ‘금슬좋은 부부’로 주위에 소문나 있다. 남편과 함께 출근해 함께 퇴근하는데다 사업에서 ‘남편은 재무회계 관리’를 위주로 하고 자신은 ‘입찰 등 영업과 디자인 개발’을 위주로 역할을 분담했다. 내조와 외조가 따로 없다 보니 차 회장은 “친구 같은 남편, 동지 같은 남편”이라고 말했다. 이로부터 차 회장은 2005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건강한 가정’으로 선정돼 대구광역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 미8군 19지원단 사령관 메이슨 장군 미육군성 훈장 수훈

민간 외교관, 미8군 교류 20년

차 회장은 민간 외교관으로 미육군성 시민봉사훈장(2009년 6월)과 미육군성 장군·미육군참모총장 표창(2010년 2월)을 받았다. 미 8군의 군인들을 초청, 한미친선관계 증진과 한미동맹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차 회장이 미군과 교류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2년, 남편인 손정길 회장이 미8군과 인연을 맺은 뒤 2007년 미8군 19지원단 문화대사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됐다. 미8군 19지원단 사령관이었던 메이슨 장군을 초청해 한국의 가정을 보여주고, 사찰(절)과 공장을 견학시켜 주었다.

특히 한미양국의 군사작전인 팀스피리트와 키졸리브 훈련을 하면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훈련을 마친 뒤 훈련에 참여한 장성들과 영관급 지휘관들을 초청해 파티를 열어주기도 하고, 미군병사 1000여 명에게 한국의 정서를 듬뿍 담은 선물을 증정했다.

이러한 공로로 차 회장은 미육군성도 방문해 ‘시민봉사훈장’을 받았고, 하와이 사령부에도 초청돼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지하벙커’를 참관하는 영예도 누렸다. 특히 메이슨 장군은 자신의 집에 3박4일의 일정으로 초청해 환대함은 물론 하와이사령부 지하벙커에서 자신의 사령관복을 벗어서 입혀주며, 전쟁발생 시 작전상황도 설명해 주었다. 그런 인연으로 차 회장은 “지금까지 메이슨 장군이 한국에 나오면 ‘집에 와서 교류’한다”고 말했다.

21세기형 여성지도자상 제시

차 회장이 ‘소통과 단합의 대구여협’을 위해 정관개정을 이루고, 재정자립의 초석을 다지는 ‘기부금품 모집단체’ 자격을 획득한 것, 기업CEO로서 직원들을 위해 시장에 나가 직접 장을 봐 부식거리를 공급하는 것, 친정엄마와 시부모를 함께 모셔 봉양하는 것, 며느리는 물론 사위까지 한집살림을 사는 것, 미8군의 군인들과 한미친선 관계를 도모하고 지역사회와의 유대강화를 위해 저명인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 음식을 접대하며 파티를 열어 주는 것들은 21세기형 여성지도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란 평가다.

차 회장은 가정과 사업, 그리고 사회활동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지 않고, ‘가정+사업+사회봉사’를 삼위일체적인 조화와 통일로 일체화시켰다. 차 회장은 이로써 21세기 여성의 역할에 대한 ‘롤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계명대 이은지씨가 차 회장이 대표로 있는 보광직물에서 현장 연수 후 자신의 미래 ‘롤 모델’로 차순자 회장을 선정한 것이 좋은 사례다. 이씨는 대구경북지방중소기업청이 지난해 여름방학 동안 지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생 단기 취업 프로그램에서 ‘보광직물’ 연수 후 “대기업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것을 중소기업의 현장을 돌아보고서 알게 됐다. 가족 같은 근무 환경은 대기업 만큼 우수한 것 같다”면서 “나의 롤 모델은 차순자 대표”라고 밝혔다.

차 회장은 이와 관련 “고학력이란 학력 인플레시대의 폐단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때에 여고(女高)만 졸업하고도 유망기업의 CEO가 될 수 있고, 여성계 리더로 꿈을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우리의 젊은 미래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싶다”며 “워킹 맘의 육아와 교육에 대한 고민들을 해소하고 여성의 유연하고 섬세한 본질적 능력이 사회발전의 동인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나름의 역량을 발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경영의 CEO, 사회봉사자, 민간외교가, 늦깎이 만학도, 대구상공회의소 상의의원, 정치인,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1인 10역을 마다하지 않는 차 회장은 이 시대의 진정한 ‘여성 멘토이자 리더’임에 틀림없다.

<대담·정리=서원호 취재국장> 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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