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0여년 동안이나 김대중(DJ) 전대통령과 영욕을 함께 했던 ‘동교동’ 사람들이 정계에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얼마전 임동원·신건 전국정원장이 동시에 구속됐고, 최근에는 DJ정부 시절 국정원 차장을 지낸 이수일씨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DJ 정권시절 핵심 실세들이 잇달아 사법처리되는 등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또 이들의 기구한(?) 운명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권의 냉혹한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을 더해주고 있다. 지난 16일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동교동계는 지금 종자도 안 남았다”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DJ측 인사들의 암울한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소통령 박지원 ‘화려한 날은 가고’

국민의 정부시절 ‘소통령’이라 불릴만큼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던 박지원 전청와대 비서실장. 그는 야당시절부터 DJ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며 DJ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인물로 꼽혔다. 박 전 실장은 2001년 3월 당 쇄신파동 과정에서 정책기획수석직을 내놓고 청와대를 떠난지 80여일 만에 정치특보로 청와대에 컴백할 만큼 DJ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DJ정권하에서 각종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이니셜 ‘P’로만 거론, 위기를 모면하는 듯했던 그는 2003년 6월 17일 현대로부터 비자금 15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운명에 처한다. 대법원이 지난 11월 무죄취지 파기환송으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 보냈지만, 고법은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재판을 진행중이다. 2003년 7월4일 첫 재판을 받은 박 전실장은 그해 9월3일 뇌물죄로 추가기소되는 등 이중고를 겪었다. 그는 지난 3월12일 보석으로 석방됐지만, 그간 재판에 27회나 출석하는 등 한때 DJ 정권의 2인자로서 톡톡히 곤욕을 치렀다.

‘DJ의 40년 그림자’ 권노갑의 추락

동교동계의 맏형이라 불리던 권노갑(75) 전 민주당 고문도 혹독한 시련기를 보내고 있다. DJ의 고향 후배이자 목포상고 후배인 그는 63년 DJ의 비서관을 시작으로 각계각층의 호남인맥을 총괄하며 무려 40여년동안 DJ의 그림자로 살아왔다.그러나 97년 한보사건을 시작으로 정치자금과 관련된 의혹에 연루되면서 그의 행보에도 먹구름이 끼이기 시작한다. 특히 2004년 10월8일 현대비자금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권씨는 정치인으로서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는 입장에 처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올 9월15일 당뇨 및 우울증 악화를 이유로 풀려난 권씨는 1년전 법원으로부터 선고받은 150억원의 추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또다시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동교동 사람들, 잇단 수난

동교동계 인사들은 2002년 총선을 전후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김옥두 최재승 윤철상 박상천 안동선 이협 이윤수 정균환 전의원 등 속칭 ‘DJ맨’들이 지난 4·15 총선에서 줄줄이 낙선하는 수모를 겪었다.특히 ‘동교동 3인방’으로 30여년간 DJ를 보좌한 핵심인사이자 16대 총선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낸 김옥두 전의원은 2004년 5월13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다.

또 최재승 전의원은 석탄 수입업자로부터 납품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 올 6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뿐만 아니라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 역시 나라종금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7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6월이 확정됐다. DJ정부 국정원장 100% 수난DJ정권당시 국정원장을 거쳐간 인물은 이종찬씨를 시작으로 총 4명이다. 그러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국정원장의 자리를 거친 이들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처절하기까지하다.초대 국정원장인 이종찬씨는 99년 10월 국민회의 부총재 재직시절, 언론장악 시나리오를 담은 언론대책문건 유출파문으로 회생불능의 사향길을 걷는 운명에 처했다.

23대 천용택씨는 99년 12월 ‘삼성그룹의 DJ대선자금 지원’발언으로 취임 7개월만에 단명했다. 그는 ‘안기부,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에도 연루, 미림팀의 도청테이프와 녹취록을 보관하면서 이를 활용한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기도 했다.특히 얼마전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이 검찰에 구속됨에 따라 국민의 정부시절 당시 역대 국정원장은 100% ‘궤멸’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게 됐다.

아들도 나란히 감옥 간 운명

DJ의 측근에게 불어닥친 ‘가혹한 운명’은 DJ 아들도 벗어날 수 없었다. DJ는 재임 중 아들 둘을 감옥에 보냈다. DJ의 장남 김홍일 민주당 의원은 안상태 나라종금 전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0월 25일 1심과 같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억5,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 의원은 이번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차남 홍업씨는 2002년 7월 아태평화재단 부이사장으로 근무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아들이라는 점을 이용, 각종 이권청탁을 받고 대가를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3남 홍걸씨는 2002년 5월 ‘최규선게이트’에 연루돼 구속 수감됐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