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권심판론’ 대신 ‘前 정권심판론’으로

▲ ⓒ 일요서울 정대웅 기자
4·11 총선은 이명박 대통령 집권 마지막 해에 치러지는 선거로 MB 실정 등에 대한 ‘정권 심판론’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선거를 20여일 앞둔 현 시점에서 야권이 낙관적일 수만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이 대통령이 밀월 관계를 형성하면서 야권에 대한 총공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제주해군기지 건설 문제 등을 이슈로 부각시켜 ‘新안보 정국’을 형성하면서 야권을 압박하는 동시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지난 15일 공식 발효시키면서 야권연대의 고리를 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을 끌어안고 MB 정권보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부각,총선을 치르기로 결정한 박근혜 위원장의 선택이 선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MB, 제주해군기지-핵안보정상회의로 안보정국 만들다
새누리, 한미FTA로 野와 차별화

여권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파문에 이어 전대 돈봉투 살포 사건, 쏟아져 나오는 MB 측근 비리 등으로 인해 4.11 총선 전망이 깜깜할 정도로 어두웠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부 경제실정에 따른 ‘정권심판론’이 대두되면서 수세구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지난해 12월 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출범과 함께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 비대위원까지 영입, 대대적인 ‘정책쇄신’을 도모해 ‘MB 노믹스’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 일환으로 새누리당은 앞서 당명을 바꾸면서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도입, 현재 총선을 앞두고 길거리에 내걸린 새누리당 홍보 현수막에는 ‘복지, 일자리, 경제민주화’가 대표 정책으로 적시돼 있다.
경제 민주화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안정과 적정한 소득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제119조2항에 기초한 것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통해 최근 심화하고 있는 경제·사회 양극화를 해소코자 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근혜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달성을 위해 전향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야당들의 공세를 사전에 차단해 이른바 ‘정권심판구도’를 물타기해 야권의 대대적인 ‘복지 공세’, ‘재벌개혁 공세’를 비껴나가겠다는 전략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박 위원장은 MB실정에 대한 책임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복지확대를 당의 정강정책으로 수용하며 이명박 정부의 반복지노선과 차별화에 나선 모양새다.
그리고 양극화의 책임자로 지목되는 재벌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분위기 연출에도 나선 상황이다.또, 새누리당은 총선 정책공약에서 복지정책을 대폭 강화했다.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약속했다. 여기에 다양한 대기업 규제정책도 내놓을 태세이다. 이는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공약과 비교한다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국민들이 신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박근혜, 한미FTA 찬성 vs 반대 구도 구축

또한, 새누리당은 야권연대전략의 핵심축인 한미 FTA 전선을 최대한 부각시켜 개방경제의 중심세력임을 분명히 해 총선에서의 정책 전선구도를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로 재편성코자 사력을 다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최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한미FTA 폐기발언을 시발점으로 총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애초 이 전선은 지난해 FTA 국회 비준으로 ‘발효 찬성 vs 재협상’ 전선으로 굳어지면서 FTA에 찬성하지만 국익을 위해 재협상해야 한다는 중간층을 민주당 쪽으로 견인해내면서 민주당 우위의 전선구도였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한 대표의 폐기발언을 빌미로 ‘찬반전선’ 국면으로 전환,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박 위원장은 한미FTA가 발효되던 지난 15일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고 공언하는 이들이 있다”며 “(한·미 FTA를 놓고)정치권의 분열과 갈등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대립각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이 재협상론에 무게를 둔 폐기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이를 신뢰하기 어려운 지점까지 가 버린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복지’, ‘양극화’, ‘재벌개혁’과 같은 ‘MB경제정책 심판구도’를 이끌어야 할 민주당이 ‘FTA 전선’에 발목을 잡혔다는 점이다. 박 위원장의 전략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MB-박근혜 협력 하에 안보 정국 조성

이와 함께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구럼비바위 해안 발파 강행에 따른 현지주민과 제주도, 도의회, 그리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권의 ‘공사 반대’ 요구와 관련해 이를 ‘안보이슈’로 끌고 가며 전방위적인 정치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새누리당의 정치공세의 목표는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을 해군기지 건설 자체를 반대하며 ‘안보’를 팽개치는 정당으로 규정짓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안보 민감 계층인 보수와 중도 쪽의 유권자들을 결속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통진당의 김지윤 청년 비례대표 후보의 ‘해적기지’ 표현 자체를 부각시켜 이러한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세력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라며  “안보위기 때 생명을 지켜준 군인이 북한군인지, 중국군인지 아니면 당신들이 해적이라고 조롱하는 대한민국 해군인지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며 국민의 안보심리를 자극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야권에서는 여권의 이 같은 움직임이 다분히 의도된 것이라는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박영선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제주 구럼비 바위의 급작스런 폭파, 그리고 오바마의 방한과 DMZ에 대북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는 이런 보도들, 이런 것들이 MB정권과 새누리당이 총선을 앞두고 MB정권 심판론에서 쟁점을 옮겨보려는 술수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총선을 보름 앞둔 시점에 열릴 ‘핵안보정상회의’를 홍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정상회의 의제가 핵테러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북한이나 이란의 핵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던 정부의 당초 설명과 달리 최근에는 북핵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잇따라 나오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북한에 핵물질 포기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고 말한데 이어 이 대통령 역시 “의제는 아니지만 몇몇 나라들이 개별적으로 성명을 내거나 할 수는 있다”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북한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4일 “얼마 전까지 ‘북핵문제’를 정식으로 논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발뺌해오던 자들이 드디어 정체를 드러내고 ‘북핵문제’니 ‘핵포기’니 하고 떠들고 있다”면서 “우리를 모해하기 위한 마당으로 만들려 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노무현 정권 심판’ 부각 노력

이렇듯 박근혜 위원장은 이번 총선에서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 등 참여정부 시절 추진했던 사업들을 집중 부각시키는 한편, 보수층 결집을 위한 안보 정국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총선 이슈가 ‘MB정권 심판’이 아닌 ‘노무현 정권 심판’으로 흐르게 되는, 즉 ‘前 정권 심판론’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특히,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지난 전대 과정에서부터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전면에 친노 세력이 재배치됨에 따라 이같은 ‘전 정권 심판론’이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문재인 상임고문과 문성근 최고위원 등 친노 세력을 앞세워 부산·경남(PK)에서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는 민주당을 꺾기 위해 ‘전 정권 심판론’ 카드를 꺼내든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딸인 노정연 씨에 대한 수사를 재개한 것도 ‘노무현 정권 심판’의 연장선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최근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권 심판론’을 언급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박근혜 위원장은 “폐족을 자처했던 친노의 (한미 FTA에 대한) 말 바꾸기가 심판 대상”이라면서 친노 세력과 각을 세웠고, 이 대통령도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한명숙 대표와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이해찬 전 총리 등 친노 인사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말 바꾸기’ 행태를 비판했다.
하지만 밀월 관계를 형성한 박 위원장과 이 대통령의 바람대로 ‘전 정권 심판론’이 국민들에게 통할 지는 미지수다.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개시와 고리 원전 사고 등 잇따라 터져 나오는 악재로 인해 ‘MB정권 심판론’은 선거 과정에서 언제든 핫이슈로 부각될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