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건설업체 대표 한모씨는 20일 "한 전 총리에게 어떤 정치자금도 준 적 없다"고 밝혔다.

한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우진)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 "한 전 총리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계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씨는 특히 "검찰 조사에서 수십번 정치자금을 줬다고 진술한 것은 맞다"면서도 "이는 수사 초기 제보자 남모씨가 찾아와 서울시장 이야기를 거론하며 협조하지 않으면 불리할 수 있다고 겁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수감 후 억울하게 빼앗긴 회사자금을 되찾을 욕심도 들어 허위 진술을 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하지 않았었지만, 남씨의 제보사실 등을 안 뒤 수사가 확대돼 남씨의 잘못이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에 허위진술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왜 수사 때와 진술이 다르냐'는 검찰의 추궁에는 "애초 진술 자체가 허위"라며 "더 이상은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 때) 잘 대해줘 감사하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아울러 "검찰의 강압수사는 없었고, 그냥 내가 지어내서 한 말"이라고 덧붙였다.

한 전 총리 측 변호인이 뒤늦게 진실을 밝히게 된 이유를 묻자 "시장 낙선, 검찰 기소 등을 겪는 것을 보고 심한 죄책감에 자살도 생각했다"며 "의혹을 벗겨야 겠다고 생각해 폭로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수사단계에서 말을 바꾸면 무마될 수 있다는 생각에 법정에서 밝혀야 겠다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씨에게 3억원을 준 것은 맞다"며 "하지만 이는 '대여'로, 돈을 빌려 달라기에 어디에 쓸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현금 2억원, 수표 1억원을 준비한 것 같은데 (검찰 주장대로) 달러가 섞여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한씨의 진술이 이어지자 한씨로부터 돈을 받아 자신이 쓰거나 일부는 한 전 총리에게 전달한 의혹 등을 사고 있는 김씨는 갑자기 쓰러져 119구급차에 실려갔다.

나머지 6억원의 행방에 대해서는 "입찰 중개업자인 박모씨와 김모씨에게 (수수료조로) 줬다"고 진술했다. 이에 검찰이 "증인들이 법정에 있으니 대질신문을 하자"고 나섰고, 한 전 총리측 변호인이 반발하면서 잠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씨의 진술이 수사 때와 다르게 나오고 있지만, 한씨 진술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재판도 유동적이니 일단 오늘 공판을 잘 지켜보는게 순서"라며 애써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공소유지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한씨가 일부 부인하는 진술이 거짓말인 것이 금방 드러날 것이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3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한씨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현금과 미화, 자기앞수표 등 총 9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7월 불구속 기소됐다.

김씨는 2007년 2월부터 같은해 11월까지 한씨로부터 사무실 운영 및 대통령 후보 경선 지원 명목으로 9500만원을 받고 버스와 승용차, 신용카드 등도 무상제공 받아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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