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통과 D-day 12월13일” 여야 다 속아

한나라당이 민생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해 ‘날치기’로 통과시켜 후폭풍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지난 17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영등포 쪽방촌을 방문했다. 하지만 좁은 이동 통로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맹철영 기자] photo@dailypot.co.kr

여야는 지난 12월 8일 통과된 2011년 예산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야권은 ‘형님 예산’이라며 장외투쟁까지 벌이고 있고 한나라당은 ‘쪽지예산’으로 민주당도 다 챙겼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특히 친이계 실세 몇몇 의원들 및 야권 실세 의원의 지역구 챙기기가 드러나면서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예산을 둘러싼 위화감마저 조성되고 있다. 연말연초를 맞이해 지역구 방문이 잦은 시점에 지역구 예산을 챙기지 못한 의원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셈이다. 예산안 통과를 둘러싸고 과연 국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집중 취재해 봤다.


#장면 하나
11월 말 이재오 장관 방

이재오 특임장관은 자신의 방으로 친이재오계 의원들을 조용히 불렀다. 새해 예산안 통과를 두고 여야간 치열한 신경전이 한창인 시점이었다. 이 의원은 찾아온 의원들에게 “12월 9일전까지 예산안이 통과된다”, “이번 예산 통과를 도와주면 2012년 공천은 책임지겠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이 장관을 만난 친이재오계 한 의원실에선 “갑자기 의원이 12월9일까지 행사를 마무리하라고 했다”며 “예산안 통과가 그 이전에 끝나서 국회가 텅텅 빌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모습이었다”고 귀뜸했다.

당시 여야 의원들 대다수는 새해 예산안 통과를 12월 13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통상 정부안이 넘어오면 예산안을 가지고 예산결산특위내 계수조정위에서 감세 및 증세 과정을 거쳐 본회의장에 상정되는 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200여 명이 넘는 지역구 여야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예산을 추가로 확보하기위해 물밑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주로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예결위원장이나 예결위원 그리고 예결위내 계수조정위원들에게 ‘쪽지 예산’(지역구 민원)을 전달해 증세하는 과정에 자신의 지역구 숙원사업비를 배정받는다.


예산 ‘주적3인방’, ‘병인5적’ 분위기 ‘험악’

하지만 이번 2011년 새해 예산안에서는 예결위 감세 작업 중 민주당이 보이콧을 하면서 이같은 과정이 중단됐고 이후 증세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날치기 통과’되면서 문제가 불거지게 됐다. 보통 감세가 4000억 원 정도 이뤄질 경우 총액 309조 원을 맞추기 위해 증세 역시 4천억 원 정도가 이뤄지게 된다. 이 과정에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쪽지 예산’을 통해 지역구 사업비를 챙기게 된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200여 명이 넘는데다 항목도 복잡해 이를 조종하기위해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거에 여야 원내대표는 각 국회의원들에게 문서를 통해 3~4개 지역 사업명과 우선순위를 매기도록 한 후 이를 제출받아 예산안에 반영해 통과시키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초 예상했던 것 보다 5일 정도 이른 12월 8일 집권여당과 정부가 갑작스레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다수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데 실패했거나 반영됐는지 여부도 확인할 없는 상황을 맞았다. 단지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 이주영 예결위위원장, 권선동, 김광림, 신상진 예결위원을 비롯해 박희태 국회의장, 박순자, 백성운, 여상규, 안경률, 이군현 의원 등 친이재오계 의원들이 최소 50억 원대 이상을 지역 관련 예산으로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영 위원장의 경우에는 지역구인 마산 관련 사업 6건을 직접 요청해 187억 원의 증액을 이끌어냈다. 이로 인해 여권 일각에선 이 위원장이 차기 지방선거에서 통합된 마창진 광역단체장 선거에 나서기위해 무리하게 예산을 확보한 게 아니냐는 시각마저 대두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야권에선 ‘주적 3인방’(이재오, 이상득, 이주영), ‘병인5적’(3인방과 정의화, 박희태) 등의 냉소적인 반응마저 나왔다. 특히 같은 집권 여당 내 일부 친이 의원 및 친박 의원들마저 ‘물’을 먹은 경우도 속출해 지역구 예산을 많이 딴 의원들조차 자랑을 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대표적으로 안상수 당 대표의 경우 지역구 예산을 땄다고 지역구에 홍보를 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안 대표는 경기도 의왕시 왕림천 정비사업 20억 원, 국립과천과학관관련 30억 원 등 지역구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집권 여당과 정부가 발빠른 보조로 예산안 날치기를 통과시킨 지난 8일 늦은 저녁 한나라당 의원 50여 명이 여의도 모 식당에 모였다.


# 장면 둘
12월 8일 늦은 저녁 여의도

이 자리는 ‘날치기’ 통과를 자축하는 자리였다. 김무성 원내대표가 건배사를 하고 소주폭탄주가 오고간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안 통과의 주역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술값만 계산하고 불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부 술 취한 의원들은 거동을 하지 못할 정도였고 ‘두주불사형’인 일부 의원들은 근처 호텔내 바에서 2차를 더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이 자축연이 청와대에 보고되면서다. 예산안 통과 배후로 청와대가 지목되고 있는데다 ‘형님 예산’으로 곤혹스런 처지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서민복지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친서민 공정사회를 외치고 있는 MB 정권에게 흠집이 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선 3800여억 원의 서민·복지예산이 삭감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템플스테이 지원 예산, 춘천-속초간 고속화철도 예산이 삭감되거나 반영되지 않음으로써 불교계와 강원도 민심이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불교계의 템플 스테이 지원, 무상보육 확대 예산, 춘천-속초간 고속화철도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약속했던 예산이다.


서민·불교·청년·강원도 예산삭감에 ‘부글부글’

안 대표의 경우 과거 불교계와 갈등을 빚어 집권여당 및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만든 바 있다. 특히 MB 정권이 기독교 편향적이라는 불교계의 시각이 높은 가운데 예산마저 삭감되면서 불교계는 집권 여당과 청와대와 재차 각을 세우고 있다. 또한 안 대표는 지난 연평도 포격 사건 때에는 ‘보온병’을 폭탄으로 오인해 구설수에 올랐고 ‘군 면제자’ 꼬리표까지 겹쳐 당 대표로 위상에 흠집이 간 바 있다.

설상가상으로 예산안을 보면 청년실업과 관련 고용노동부가 추진한 글로벌 취업지원 18억 원, 청년취업아카데미운영지원 71억 원, 청년녹색일자리확산 홍보 2억 원 등 총 100여억 원이 정부안보다 축소돼 20~30대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또한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서 추진한 행복도시-오송역 연결도로 170억 원이 감액돼 충청도 민심마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자축연’까지 벌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집권여당 일부 인사들 사이에선 “지금이 술판을 벌일 때인가. 이대로 가면 2012년 총선 다 망한다”며 ‘안상수 대표 교체론’이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임기가 1년을 넘지 못해 당헌·당규상 당 대표를 전당대회를 통해 뽑아야한다는 점이 부담이다. 안 대표가 물러날 경우 이재오 특임장관이 당 대표로 당선될 공산이 높은데 이럴 경우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 진영이 들고 일어나 당내 분란이 일게 뻔하기 때문이다. 안 대표 역시 자진 사퇴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해법 찾기가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