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비례대표 후보들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 188명 가운데 최근 5년간 세금을 체납한 적이 있는 후보가 26명이나 됐다. 특히 새누리당 후보가 8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 5년간 세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은 후보도 적지 않았다. 남성 비례대표 후보 108명 가운데는 군대 안 갔다 온 후보가 24명이었다.

미필 비율이 22.9%로 지역구 후보의 군 미필 비율 17.5%를 크게 앞질렀다. 전과 있는 후보들은 상당수가 시국관련 사범이었지만 그 외 사기, 특수절도, 장물운반, 횡령 등 파렴치범들도 있었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공직자들에 대해 엄격한 도덕성을 외쳐왔다. 그런데 납세와 병역 같은 국민의 기본적 의무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국민을 대표하겠다고 나서 있다.

선거 심판은 유권자 몫이 확실하지만 비례대표에 관한한 유권자 직접 수단이 없다. 투표를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심란해 하는 국민이 많아 보인다. 하자니 심사가 뒤틀리고 기권하자니 마음이 개운찮을 모양이다. 후보자들의 면면을 접하고 든 소회일 것이다.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은 사람들이 복지,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고,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들이 법을 고치고, 새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와중이다.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도덕성 있는 새 인물을 공천하겠다고 한 공당의 약속은 또 한 번 유권자를 우롱했다. 어느 정치컨설턴트는 선거에서는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고 했다. 이 말처럼 ‘옳지 않은 강한’ 후보가 선거에 이기면 국회는 난장판 되기 십상이다. 19대 국회의 진한 그림자를 본다. 좋아하는 정당도 없고, 찍고 싶은 후보도 없고, 다 그 나물이고 그 밥이다라는 냉소가 온누리를 휘젓는다.

이번 공천과정에 ‘돌려막기 공천’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대구에서 출마준비를 해온 사람이 돌고 돌아 아무 연고 없는 경기 모 지역에 공천 받는 사례는 지역 자존심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용산의 딸’로 자처하던 새누리당 배은희 의원은 갑자기 ‘수원의 딸’이 됐다. 민주통합당은 이쪽 경선에서 떨어진 사람을 저쪽 지역에 공천했다.

새누리당 공천자 절반이 친박 성향이라는 성토가 있었고 민주통합당에선 ‘보이지 않는 손’이 공천을 좌지우지 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이처럼 비난 속에 ‘캠프 공천’을 밀어붙여야 하는 이유는 물론 총선 이후 전개될 대선 후보 경선 레이스를 의식해서이다. 여야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자파 세력이 많이 포진해야 대세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캠프 공천은 대선 레이스에서 뛸 전위대를 만드는 준비 작업이었다. 계보 정치가 점령한 한국 정치는 여야 없이 자신에게 자리를 준 사람을 위해 죽기 살기로 뛰기 마련이다. 국회 폭력도 불사할 것이다. ‘시스템 공천’이 반드시 이뤄져야할 이유다.

하향식 공천은 대표성이 없는 소수가 예비대표를 사전에 결정해 주권자인 주민들에게 후보 선택을 강제하는 행위로서 위헌적 요소마저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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