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 선거운동이 네거티브전으로 활화산처럼 달아올랐다. 갖가지 의혹 제기로 상대방 흠집내기에 혈안이 됐다. 유권자들을 짜증스럽게 만든 선거 기피 현상으로 낮은 투표율이 걱정된다. 특히 이번 4·11 총선은 12·19 대선 전초전이라는 성격을 지녀 선거전이 더 가열됐다. 소모적인 폭로와 정쟁이 난무하면서 정책대결은 사라졌다.

여야 모두의 뱉고 보자는 복지공약이 마구 쏟아졌다. 또 선거 코앞에 터진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이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민주통합당은 이 사건을 ‘한국판 워터게이트’로 규정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까지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맞선 새누리당이 민간인 불법사찰의 80%는 노무현 정권에서 이뤄졌다고 맞불을 놓았다. 서로 물어뜯는 양상이 점입가경이다.

지역 단위의 정책·인물 선거는 완전 실종 상태다.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선거법 위반으로 중앙선관위가 고발한 건수가 154건이다. 18대 선거 때에 비해 40%나 늘었다. 여러 곳에서 재선거를 실시해야 할지 모른다. 민주통합당은 ‘이명박근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박근혜 위원장도 총선에서 심판받아야 할 대상으로 몰았다.

새누리당은 과거 이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을 수정하려했을 때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투쟁한 사람이 박 위원장이란 점을 들어 “동반책임 운운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했다. 이 ‘소가 웃을 일’은 이번 선거전에 많이도 나타났다. 구속된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내가 몸통’이라고 주장했을 때 야권이 ‘소가 웃을 일’이라 했고, 청와대가 사찰문건 자료를 제시하며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어진 것이 2200여건이라고 했을 때 민주통합당 정동영 의원이 ‘소가 웃을 일’이라고 맞받았다.

해방 후 한국 정치사의 태반을 지배한 독재정권 탓에 ‘사찰’ 이라는 말만 들어도 모골이 송연하다는 기성 유권자들이다. 민주통합당과 일부 언론의 폭로 경쟁도 도를 넘었다. 함부로 공개해선 안 되는 수천 건의 공직 감찰 기록이 시중에 유출돼 떠돌아다녔다. 이미 공직을 떠난 사람의 공직윤리지원관실 보고서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돼 당사자에게 ‘인격살인’이 빚어졌다.

민간인 사찰이 불법인 것처럼 사찰 내용을 유출하는 행위 또한 불법임에 분명하다. 여야 정당엔 선거 승패가 중요한 것이나, 개인의 명예와 정보보호는 민주사회의 더 중요한 가치다. 의석수를 300석으로 늘리고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조정한 것 외에는 제대로 한 일이 없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19대 국회에서 어째 존속하는지 두고 볼일이다.

‘시민정치’에 대한 기대가 무산되는 바람에 선거 이틀 앞두고 30%가 넘는 많은 부동층이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이렇게 주권자와 대표간의 간극이 커져 근본적으로 대의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고 판단되면 유권자들이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혁명적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소통기술의 발달로 직접 민주주의 시대가 열릴 것이란 예상이 있다.

지금 국회의원이 갖는 200가지 특권에 목숨 건 그들을 국민이 차갑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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