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빅뱅’ 후폭풍 분다

지난해 12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선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정부의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 방송채널사업자(PP) 선정을 두고 정치권에서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청와대가 특정 언론사에 결과를 사전 통보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되는가 하면, 방송통신위원회 내부에서 조차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급기야 이번 종편 및 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일부 언론사들은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서 정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상태다. 정치권에서도 각 진영마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미디어 빅뱅’논란을 따져본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지난 해 12월 31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 4개 신문사를 종편사업자로, 연합뉴스를 보도전문채널사업자로 각각 선정했다. 언론시장의 대 변혁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이를 ‘미디어 빅뱅’이라 부른다.

‘미디어 빅뱅’을 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과 극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종편·보도전문채널 선정 결과를 두고 ‘새로운 미디어산업을 이끌고 일자리 창출의 효과가 있는 차세대 미래 성장동력 산업’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민주당은 ‘미디어법을 근거로 한 보수언론의 특혜’로 규정하면서 강력 반발하고 있다. 보수성향의 자유선진당 역시 “사전 각본에 따른 결과가 분명하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민주당 등 진보성향의 정당들이 제기하는 이번 종편·보도전문채널사업자 선정의 문제점은 언론의 권언 유착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압축할 수 있다. 보수성향의 메이저 신문사 ‘빅3’를 의미하는 조·중·동 3개 신문사가 ‘보은’의 성격으로 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앞으로의 총선과 대선의 여론을 끌고 갈 수도 있기 때문에 민감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종편 규탄 목소리 이어져

지난 1월 5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민주당과 미디어행동이 주최한 ‘종편 규탄 토론회’에서는 이번 사업자 선정과정에 대한 강성 발언이 이어졌다.

“종편은 1개 정도가 적당한데 너무 많은 사업자가 선정됐다. 똑같은 광고비를 많은 사업자들이 나눠가질 수 밖에 없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사업자들은 끝없는 특혜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이효성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종편은 이 나라의 언론 생태계, 특히 광고시장 같은 비좁은 수족관에 풀어놓은 네 마리 식인상어다. 지방이나 종교 방송 뿐 아니라 종편 4개사를 뺀 모든 신문, 방송 언론, 인터넷 언론까지 생존 위기에 몰렸다.”(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

“(미국 ‘폭스뉴스’ 사례를 들며)방송을 시장 경쟁에 내몬 미국에선 6~7개 거대 미디어그룹이 전체 방송시장 90%를 장악하고 보수화시켰다. 보수 성향 종편 허가로 인해 한국에서도 친정부 성향의 거대 언론사 그룹 중심으로 재편돼 전체 여론 시장의 독과점을 가져올 것이다.”(최진봉 텍사스주립대 신문방송학 교수)

이들 미디어전문가들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대형 언론사들의 시장 독점으로 인해 군소 언론사들이 생존경쟁에서 밀려날 것이고, 친정부 성향의 대형언론사들이 여론을 독점해 ‘권언유착’이 생긴다는 것이다. 초기 광고시장 또한 불안해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언론 ‘권언유착’ 가능성 높아

언론의 ‘권언유착’에 대한 우려는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2009년 ‘뉴스통신진흥법 개정안(일명 연합뉴스 법)’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번 보도전문채널 사업자에 유일하게 선정된 연합뉴스는 2003년 6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뉴스통신진흥법에 따라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 지정됐고, 2009년 4월 6년 한시조항을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매년 309억 원에 달하는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경쟁사인 민영뉴스통신사 뉴시스는 개정안이 통과되기에 앞서 청와대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연합뉴스의 해외 특파원이 보도하는 기사의 77%가 해외 현지 언론 베끼기임에도 불구하고 퍼주기식 지원을 하고 있다. 공정경쟁을 흐트러뜨리고 있다”고 강력 반발한 바 있다. 이 때 언론계 안팎에서는 연합뉴스가 4대강 사업에 노골적으로 찬성하는 기획기사를 보도하는 등 친정부성향의 보도를 일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뉴시스 내부 CMS(기사컨텐츠관리시스템) 게시판에는 “연합뉴스 기자들이 개정안 통과를 위해 전 방위적으로 정치권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광고시장에도 ‘쓰나미’가 닥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종편이 절대평가 방식으로 기준점을 넘은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 4개 사업자나 선정됐기 때문이다. 광고시장 규모 즉, 밥그릇은 한정 돼 있지만 숟가락이 늘어난 형국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종편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우선 광고시장이 정부의 기대수준에 맞게 불어날 수 있을지 조차도 불투명하다.

방통위는 내년도 업무보고에서 지난해 전체 GDP의 0.68%인 광고시장을 2014년 GDP의 1%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금액으로는 같은 기간 7조5000억 원에서 13조8000억 원으로 광고시장을 불리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광고시장 확대의지에도 불구하고 광고주인 대기업들은 광고를 단기간에 늘리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언론계를 비롯한 기업가에서는 “기업의 광고 예산이 늘어날 수 없다면, 군소 언론사에 책정한 광고예산을 종편 쪽으로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광고주들은 종편들이 추후 광고수주를 놓고 과열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자극적인 컨텐츠가 양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방통위 상임위원간 의견 대립도

한편 종편·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선정 결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언론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되자 선정 주체인 방통위 내부마찰로 까지 번지고 있다. CBS 등 종편 및 보도전문 채널 선정에서 탈락한 사업자들이 방통위에 정보 공개를 청구한 것이 불씨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방통위 내부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방통위 전체회의가 열렸던 지난 1월 6일 예정된 의결과 보고안건 처리가 끝난 후 형태근, 양문석 상임위원 간에는 설전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양 위원이 김대희 기획조정실장에게 정보공개 절차와 결정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양 위원은 “정보공개 청구가 있는데 이제는 그 부분에 대해서 허풍이 아니라 증명해줘야 하는 시점이 왔다”며 “어떤 절차를 통해 정보공개를 할 것인지 정보공개 여부를 누가 결정하는 지 말해달라”고 물었다. 이에 김 실장은 “정보 공개 청구가 들어오면 1차적으로 실국에서 검토하게 되고 이의가 제기되면 정보공개심의위원회 절차를 거치게 돼있다”며 “이에 대한 것은 백서를 통해 공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양 위원은 “심사에서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인데 깔끔하게 다 공개해서 이 문제를 처리하는 게 정면돌파, 정공법이 아닌가”라며 “정보공개 절차를 담당 국장이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부분에서 상임위원이 어떻게 의견을 넣을 수 있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형 위원이 양 위원 말을 끊으며 이날 전체회의에서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며 제지에 나섰다. 형 위원은 “위원회 운영 상 의결 보고사항 외에는 안건에 대해 추가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인데 (양 위원이 말하는 것은) 공개, 비공개도 정하지 않은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격분한 양 위원과, 이를 제지하려는 형 위원이 말을 주고받으며 한 동안 고성이 이어지기도 했다. 방통위의 마찰사태는 최시중 위원장이 중재에 나서면서 진정됐다.


최시중 “성숙하게 노력 다 할 것”

최 위원장은 정보공개 절차에 대해 “자유롭게 문제제기 하고 여과된 것으로 간담회에서 양해, 합의를 하며 정식 안건이 된 후 위원회 논의로 조율할 수 있다”며 “백서 발간하기 전이라도 긴급한 요청이 있을 때는 간담회를 거쳐 위원회에 물어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숨길 것도 뺄 것도 없다”며 “단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좀 더 좋은 모양으로 명쾌하게 들어갈 것인지, 그런 과정에서 상임위원 들은 질문하고 답변하고 성숙하고 차질 없게 노력을 다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CBS 등 탈락 사업체는 방통위가 정보공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행정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라 종편·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선정에 따른 후폭풍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종편 결과 ‘언시생’들도 알고 있었다?

종편·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결과가 특정 언론사에 사전에 통보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다. 청와대가 사업자 선정 결과 발표 당일인 지난 해 12월 31일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합격 여부를 특정 언론사에 ‘됐다’고 미리 알려줬다는 것. 방통위는 이날 오전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 선정을 의결하기 위해 열린 전체회의에 종편과 보도채널 사업자를 선정해 발표했다.

하지만 양문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출근하자마자 불쾌한 소식에 가슴이 먹먹하다”면서 청와대 사전통보설에 대해 폭로했다.

양 위원은 “청와대가 어떤 언론사에게 합격통보를 해줬다는, 구체적으로 ‘됐다’고 했다는 소식을 그 언론사로부터 들었을 때 기분은 완전히 머 같았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 “방송통신위원회가 심의 의결하는 영역에 왜 청와대가 등장하고 그들이 결정하는 듯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괴물’이 이 한국사회에 등장하는 오늘,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고 최소한의 공정성은 있어야 한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양 위원은 이날 종편 사업자 선정을 위해 열린 전체회의에 불참했으며, 현재 그가 남긴 글은 블라인드 처리돼 내용을 볼 수 없는 상태다. 양 위원의 폭로 외에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다음 까페 ‘아랑’에도 종편·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선정 결과가 사전 통보됐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아이디 ‘ㄱㄴㄷㄹㅁ’은 지난 12월 30일 등록된 ‘종편이나 보도채널 선정에 관심이 많으실텐데요’라는 글에 ‘보도는.. 연합이라고 들었어요.. 이번에 입사한 친구한테’라고 댓글을 남겼다.

또 다른 아이디 ‘손석해의 시선분산’은 ‘조선분들은 조선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중앙분들은 중앙이 된다고 하고... 동아 분들은 동아는 반드시 될거라고 하고...이건 진짜 확실한건데... 매경은... 하하하 될거예여...’라고 댓글을 남겼다.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은 청와대의 ‘사전 통보설’과 관련 “잡음에 대해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