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이 여당 임시 지도부를 이끌 당의장에 추대된 이후 정치권에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다. 쌍용그룹 상무 출신인 그가 집권여당 원내대표를 거쳐 당의장을 꿰차게 됐다는 사실이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이른 바 ‘CEO 대망론’이다. 90년대 정치지도의 일반적인 조건이 민주화 운동을 통해 형성된 강력한 카리스마라는 점에서, 현 여권에 기업인 출신 정치인은 드물게 마련이다. 게다가 이들 어느 누구도 기존 정당에 소속돼 당권을 장악한 사례가 없다는 데서, 정 의장의 위상강화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비록 최고경영자 출신은 아니지만 2007 대선지도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CEO 대통령’ 후보에 접근하고 있다는 얘기다. ‘CEO’는 ‘Chief Executive Officer’의 첫머리 글자를 딴 약자다.

풀이하자면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일컫는 말이다. 대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 통하지만,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오너(owner)와는 또 다른 개념으로서 실무자로서의 역할에도 무게가 실린다. 이러한 ‘CEO형 지도자’가 한국 정치무대에 등장한 때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업가 출신 인사들이 정치무대에 편입하면서 ‘기업 경영’이라는 경력을 나름대로의 ‘경쟁력’으로 내세웠고, 언제부터인가 리더십의 한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정치(행정)에 기업경영을 접목시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제는 국가까지도 경영개념을 도입해 경쟁력을 확보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벌써 몇몇의 CEO 출신 인사들이 ‘대망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또한 세계화, 지식·정보화가 됐든, 경기침체가 됐든 ‘변화’라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기업가적 경영마인드를 갖춘 거물 정치인의 출현에 누구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장수 정보통신 사령탑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참여정부 최장수를 기록하고 있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다. 출범과 동시에 발탁, 노무현 대통령의 신뢰를 바탕으로 벌써 2년5개월간 정보통신 사령탑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삼성본부 사장을 역임한 그는 이미 40대부터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시킨 ‘진대제식 CEO’ 풀이도 유명하다. ‘Clarify(명확화)’, ‘Energize(활기부여)’, ‘Organize(조직 강화)’이다. 한편, 그의 향후 거취에 대한 무수한 하마평은 CEO 출신 정치인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도를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차기 서울시장 출마설부터 시작해, 대선 도전 가능성도 회자되곤 한다.

CEO 출신 정치인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조직력 부재’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도 제시됐다. 바로 지난 1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당의장 출마설이다.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도 빼놓을 수 없는 CEO 출신 정치인이다. 그는 1971~91년까지 미국 뉴욕에서 혁무역(주)이라는 회사를 경영했으며, 이를 계기로 뉴욕한인경제인협회 회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의 ‘CEO 대망론’도 알려진 바다. 이는 민선 1.2.3기 경남도지사를 거친 PK(부산·경남)지역의 거물급인 그가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 당적을 버리고 과감히 열린우리당에 합류할 무렵부터 시작됐다. 차기 총리를 건 ‘빅딜설’이 그것이다. 예측대로 그는 고건 전 국무총리 후임자로 내정됐으나 한나라당은 물론 여당 일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아직까지 대권을 향한 김 의원의 항로가 순탄치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주목할 것은 어찌 보면 ‘CEO형 리더십’이란 개념을 행정에 도입한 첫 주자가 김 의원이라는 사실이다. 그 역시 우리나라 최초로 경영행정을 도입했다고 서슴없이 드러낼 정도다. 1993년 경남도지사 취임 일성도 이러했다. “저는 경상남도 도지사로 취임한 것이 아니라 ‘경상남도 주식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경상남도를 도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회사라 생각하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최대의 이익을 가져오는 곳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이후 그는 부산-경남 공동경마장 유치, 거가대교 건설, 농수산물 수출 8억달러 시대 오픈, IMF 시절 4조원 국내외 투자유치 건을 진두지휘했다. 이를 입증하듯 그는 노 대통령의 유일한 ‘경제특보’로 활동하고 있다.

MJ CEO 대통령 물꼬 터

‘CEO형 리더십’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인사는 이명박 서울시장이다. 그는 정치권 입문 후 ‘선거법 위반’ 등 고난을 겪은 후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현대건설 사장으로 재직중에 보여준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하며, 청계천 완공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1977년 당시 만 35세의 나이에 현대건설 CEO 자리에 오른 이 시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사장 취임 이후 그는 추진력을 발휘하며 당돌하면서도 당찬 경영을 펼쳤다. 계열사인 한국도시개발의 법적 해체를 막았으며, 중동시장도 개척했다. 그러나 이 시장의 추진력 뒤에는 자기 논리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아집과 독선이 심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뒤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박근혜 대표를 위협할 정도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청계천 공사 역시 찬사와 질타가 공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장은 대권주자로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엇갈린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는 지난달 13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불도저 리더십’이라는 부정적 시각에 대해 “그런 이야기 들을 수 있는 상당한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젊은 나이에 기업 최고경영자(CEO) 하면서 경청하고 듣는 습관이 돼 있다. 청계천 복원과 관련 많은 견해가 있었지만 결국 견해를 하나로 만들어 냈다. 효과적으로 일하는 것을 보고 독단적이라고 평가하는 것 같다. 5년, 7년 끌었다면 중간에 공사 다 엎으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명확한 자기해명과 같이 그는 2007 대권 도전 앞에서도 머뭇거리지 않는 유일한 주자다. 또 한 사람이 있다. ‘CEO 출신 대통령’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정몽준 의원.

월드컵 4강 신화의 기적을 만들기까지 대한축국협회 ‘정몽준 회장’의 리더십은 2002년 한 해를 장식했다. 재벌가의 왕자, 최고경영자, 정치가, 체육인으로 활약하면서도 대선 전 가장 멋진 이벤트를 연출하는 데 성공한 그의 인기는 ‘독자신당’을 추진, 대선 후보로 나설 때까지도 지속됐다. 노무현 후보와의 후보단일화와 이에 대한 번복으로 참여정부 출범 이후 운신의 폭이 눈에 띄게 좁아졌으나, 그의 동선은 여전히 정치권의 관심사다. 실제로, 최근 이해찬 총리의 유임이 알려지기 전까지 정치권 주변에선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사가 정 의원에게 총리직을 제안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렇다면 후보단일화 공조 파기의 장본인인 그가 여전히 참여정부의 파트너로서 거론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노 대통령이 ‘경제’에 ‘올인’하고 있음에도 언론이 이를 실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청와대 비서실 표정에서도 감지되는 대목이다.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과 이를 받아들이는 기업인들 사이에선 여전히 ‘삐걱’ 소리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치권이 CEO 대망론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이 정치인 후보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이들에 대한 재계의 거부감이 덜 작용할 것이란 얘기다. ‘정몽준 후보’는 CEO 출신 대선 후보로서 그 가능성을 보여준 첫 사례인 것이다.

“탁월한 조정력 발휘한다”

최근 들어 ‘CEO 대망론’이 솔솔 피어오르는 곳은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주변에서다. 1996년 15대 총선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정 의장은 10년 만에 집권여당의 수장이 됐다. 쌍용그룹 상무를 거친 그는 정치권에서 기업인 출신의 ‘정책통’으로 입지를 확보해왔다. ‘정세균’이라는 이름 뒤에는 정책위의장이 자연스레 따라올 정도로 ‘조정자’로서의 이미지도 강하다. 한편 여권 내부에서 그의 지도력에 주목하기 시작한 때는 연초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후부터다. 민주당, 열린우리당에서 정책위의장을 역임한 그는 “탁월한 조정력을 발휘한다”는 호평을 받고 있었으나, 지도력은 검증받지 못했었던 게 사실이다.

그의 지역구가 전북(진안·무주·장수·임실)이라는 점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 라인으로 분류하는 인사들도 있다. 그러나 이번 검증무대를 거치면 그 역시 ‘CEO 형 지도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그가 의장에 추대된 이후엔 차기 경제부총리 설도 등장했다. 물론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대선을 앞둔 시점, 여당에선 벌써부터 계파별 암투가 심상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당·청 갈등에다 연말연초 당 복귀를 서두르고 있는 입각한 대권 주자들 관리, 내년 예산안과 사립학교, 부동산 관계법, 국가보안법 등을 둘러싼 정기국회 마무리까지. 어쨌든, 할 일은 많은데 시간도 없는 ‘정세균호(號)’가 순항할 수 있을 것인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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